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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Aug 04. 2023

병원에 물이 터졌다. (추가이야기)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직원이 전화를 했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대부분 좋지 않은 소식인지라 잠깐 긴장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체어에서 물이 터졌어요."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우리 병원 안에서 생긴 문제라면 괜찮겠지만 물이 터지면 이웃한 다른 업장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부랴부랴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수도관에서 체어로 공급되는 물호스가 갈라져 터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흐른 물이 아래층에 위치한 가게 천장에도 흘렀다. 급한 대로 호스를 교체하고(개원의 십 년이면 어지간한 건 다 고친다.) 아래층 가게들에 들렀다. 세 군데가 가게가 피해를 입었다. 한 군데는 물이 심하게 많이 흘러서 사장님이 치우고 계시길래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급한 대로 우리 직원 한 사람을 보내서 같이 치우도록 했다. 옆 가게에도 들러 천정을 보니 많이 젖어있었다. 사과와 함께 수리를 약속하고 올라오는데 눈이 시큰거린다.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잘한 사고와 고쳐야 할 장비들, 짜증스러운 환자들, 뭔가 익숙해지지 않는 직원들, 쫓기는 듯이 채워야 하는 한 달의 경비,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생기는 비용들까지. 나름 착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계속해서 답답한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누구 하나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병원 호스의 갈라진 틈에서 물이 터지듯 눈물이 터져 나와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세수를 했다.


  호스를 교체하고, 아래층 가게에 사과를 한 것 말고는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오늘도 예약된 환자를 순서대로 끝까지 봐야 하고, 망가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호스들도 일이 끝난 후에 병원에 남아 순서대로 갈아야 한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이 다 내 몫이다. 


  날도 더운데 오늘은 가슴마저 정말 무거운 날이다. 




  진료가 끝나고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난 뒤에 혼자 호스 교체를 준비했다. 몇몇 부분은 작년에 교체를 해두었지만, 혹시라도 다른 부분에서 새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에 그냥 다 교체하기로 했다. 작년에 사둔 100m 길이의 호스와 낮에 사다 놓은 전선관을 꺼내고, 몇 가지 공구를 챙겨 교체를 시작했다. 사람을 사서 하면 되지 않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배관과 전기 관련 일을 맡겼다가 사람에게 너무 많이 데어서 간단한 것은 그냥 직접 하고 있는 중이다. 병원 전체로 들어오는 수도와 체어로 들어오는 배관의 중간 밸브를 잠그고, 각 체어로 들어오는 물 호스를 찾고, 이전 호스와 테이프로 감아 연결한 다음, 반대편 T 밸브까지 당겨서 꺼내주고, 적절한 길이로 자르고, T 밸브에 꽂아주면 끝이다. 작은 병원임에도 구석구석으로 연결되는 부위가 많아 시간이 좀 걸렸다. 교체하는 김에 수술방 쪽 호스도 갈고, 메인 수도관과 연결되는 오래된 호스들도 다 갈아버렸다. 컴프레셔에서 나오는 공기 호스까지 교체할까 고민도 했지만 덥기도 하고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은 포기했다(공기가 나오는 호스는 터지면 잠깐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컴프레셔를 끄고 간단하게 교체하면 된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켜고 하는데도 등에는 땀이 흘렀다. 다 교체하고 나니 오래된 호스가 한가득이다. 당분간은 좀 잊고 살겠지...라는 기대와 이렇게 했는데도 다시 새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교차한다. 


  불마저 다 꺼진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거니 가슴도 답답하고 머리도 아프다. 그동안 모아둔 돈에 병원을 정리하면 몇 년이나 쉴 수 있을까 고민도 잠깐 했다. 뭔가 슬픈데 우습다.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아내의 위로마저도 힘든 오늘이었다. 내일은 괜찮겠지. 점빵 사장은 그렇게 버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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