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해야 삶이 좀 즐거워질까요?
(이미지는 구글에서 검색하여 넣은 이미지입니다. 문제가 있을 경우 알려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모교 치과대학 동문회에 나갔을 때,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형, 저는 요즘에 사는 낙이 없어요. 재미있는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먹고살만한 것 같기는 한데 딱히 열심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 선배의 답은 이랬다.
"야, 네가 빚이 별로 없나 보구나. 아무래도 대출을 크게 한 번 내야 될 때가 온 거 같다."
학생 때부터 참 어렵게 지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땐 그랬다. 무척 성실하지만 가난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내 용돈과 학비는 스스로 벌어서 해결했었다. 그래서 입학하기 전부터 한 학기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외를 했었고, 학기 중에도 과외, 방학 중에는 더 많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야 용돈과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군대에 갔다 와 늦은 나이에 치과대학에 들어가서도 과외 아르바이트는 계속 이어졌다. 훨씬 비싼 학비와 교재, 실습 재료비까지 충당하려면 아무리 시간이 없는 학기 중이라도 과외를 해야 했다. 그나마 치과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과외도 잘 구해지고, 과외비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차라리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으면 되지 않냐'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당연히 장학금도 받았었다. 공과대학에 다닐 때도, 치과대학에 다닐 때에도 늘 장학금을 받았지만 전액을 보조해 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머지 부분은 스스로 메꿔야만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아껴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 것인지, 그 시간에 내가 돈을 못 벌게 되면 기회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걱정했었다. 방학이 되면 다들 떠났던 배낭여행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공과대학에 다닐 때 선정되었었던 미국의 명문대학 교환학생 기회도 항공료, 체제비, 거기에서의 학비, 과외를 못하는 동안의 기회비용과 갔다 온 후 학기의 학비까지 고민하다 보니 포기했었고,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의 미국 인턴쉽에 동반해서 갈 기회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었다. 열심히 벌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기에 두 번 정도는 학자금 대출도 받았다. 그나마 치과대학 본과 3학년 때부터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 있어서 대출을 받기보다는 거기서 꺼내서 쓰고, 벌어서 갚는 방법으로 버텼던 것 같다.
치과병원 수련을 마치고 나서 그나마 치과의사라는 이름을 달고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결심했던 것은 지긋지긋한 학자금 대출을 갚는 것이었다. 수련의 시절에 결혼하고, 첫째 아이도 태어났던지라 여전히 생활은 어려웠고 마이너스 통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로컬 병원에 나와 취직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던 날은 뭔가 허무했지만 잠시나마 빚에서 해방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던 뿌듯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대출을 받아 개원을 하고 나서도 얼마 되지 않아 메르스가 터지는 등의 위태롭던 시절이 왔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추가 대출을 받고 또 갚는 것을 반복하며 살았다. 결혼 10년 차가 넘어서 우리 집을 사게 되었고, 확실히 예전보다 경제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늘 은행 빚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상당한 액수의 빚을 정리한 지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그와 함께 허무한 마음도 와 버렸다. 늘 돈과 시간에 쫓기고 평생을 가성비를 따지며 살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숨이 차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왔던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정작 여유로워진 지금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못 잡고 허무함과 싸우거나, 갈 곳을 못 찾아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 같다. 남들은 잘도 바꾼다는 자동차도 이제 8살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예쁘고 잘 달리는지라 바꾸고 싶지 않고, 부동산이나 투자는 간이 작아서 엄두도 내지 않는다. 갖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술자리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기껏 갖고 싶은 것을 사봤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아이 옷을 사는 정도인지라 딱히 돈을 쓸 곳도 없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점점 더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지는 기분이다.
선배의 말대로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다시 빚을 한 번 크게 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콧구멍만 한 점빵에서 조금 더 큰 점빵으로 이사를 가면 어떨까... 그걸 갚으려고 애쓰다 보면 또다시 뭔가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또다시 감당할 수 있는 멘털인가... 그저 고민만 계속 생기는 요즘이다. 정작 주머니에는 개뿔도 없고, 통장 잔고도 별 볼 일 없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