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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Sep 13. 2024

이제 그만 사 오시면 안 될까요...?

- 힘들어도 보람이 남으면 좋겠다. 

  2년 전 즈음이었나 보다. 60대의 남자 환자분이 내원하셨다. 복용 중인 약물도 워낙 많았지만 '치료 진행하기 힘들겠다, 심상치 않다'라고 느꼈던 것은 환자분의 불안한 눈빛 때문이었다. 의사가 눈빛으로 환자를 판단한다는 것은 안될 일이지만, 꽤나 오랫동안 개원의 생활을 하다 보니 환자분 얼굴과 눈빛을 보면 대충 어떤 성향일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치료를 시작해 보니 예상대로 까다롭고 힘든 분이었다. 현재 상태를 보고 치료 방향을 제시해도 본인의 의견이 강하고, 모든 치료에 예민하며, 화도 많고, 조금만 불편해지면 짜증도 잘 내는 분이었다. 치아나 입안이 아닌 다른 부분이 아파도 지금하고 있는 치료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 덕분에 우리 점빵의 직원들도,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를 심고, 상부 크라운 보철물까지 만들었다. 이제 끝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환자분은 보철물이 아래쪽 치아에 닿을 때 소리가 나는 것 같다는 말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더 문제는 심한 이갈이가 있어서 거기에 맞춰서 크라운을 제작했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환자분은 그 단단한 크라운을 깨뜨려서 오셨다. 치료 중에 뭔가 잘못되었을 때 우선은 나의 잘못일 것이라 생각하기에 정중히 사과하고 재료를 바꿔 다른 것으로 만들어 드린다고 했다. 더 신경 써서 잘 만들어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기공소장님과 여러 번 상의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다른 데서 치료할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여기서 치료하는 것만 그러냐'는 비아냥이었다. 심한 이갈이와 충치로 다른 치아가 깨져 나갔는데도, 전화를 해서는 '또 임플란트 크라운이 깨진 것 같다, 임플란트가 흔들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해서 이 환자분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동안 치료한 비용을 다 돌려드릴 테니 그만 오시면 좋겠다'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지금까지 애썼던 게 억울해서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었다. 고치고, 다듬고, 불편한 부위를 조정하고, 치료하는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생긴 문제를 확인하고, 설득하면서 겨우겨우 치료를 마쳤다. 부디 예약표에서 이 환자분 이름을 보지 않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이 환자분이 음료를 사 오기 시작하셨다. 어떤 날은 홍삼음료, 또 다른 날은 피로회복제, 또 어떤 날은 약국에서 파는 비싼 에너지 드링크, 빵, 호두과자, 마 음료, 식혜 등등... 보통 환자분들이 이렇게 무언가 사다주시면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이 분은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라는 마음이 더 컸다. 나중에 또 무슨 소리를 하시려고... 환자분께 '아무것도 안 사 오셔도 되고,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미안해하실 필요도 없으며, 내가 대단한 치과의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어떻게든 해결해 드릴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환자분이 '내가 원장님 덕분에 치료도 잘 받고, 회복도 잘되고 너무 좋아요. 덕분에 우울증도 다 나았어요. 기분 전환 삼아 고마워서 간식 사 오는 거니까 너무 마음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아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아이고... 머리가 쭈뼛, 눈물이 핑 돈다. 내 덕에 우울증이 낫지는 않았겠지만 환자의 이야기가 너무나 고맙다. 그동안에 쌓였던 환자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한 순간에 녹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래도 이 맛에 치과일 하는 거지... 그래도 간식은 이제 그만 사 오세요... 제가 부담스러워요...


  덤핑과 과잉진료가 판을 치고, 치과의사는 작정하고 환자에게 바가지 씌우는, 돈만 아는 도둑놈이라는 인식이 가득한 요즘이다. 유튜브나 네이버에서 다 보고 왔다며 치료계획과 비용도 다 결정해 놓고 오는 사람도 많고, 뭘 치료해야 한다고 말해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거나 왜 비싸냐는 말만 하는 사람도 많다.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SNS에 떠도는 말만 보고 치과는 몇 군데 가보고 정해야 한다는 말을 눈앞에서 하는 사람도 태반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그래도 선량하게, 양심적으로 치료하려고 애쓰고 있는데도 인터넷에 보이는 자극적인 말만 보고 나를 이상한 치과의사로 만드는 사람들에 지쳐 그만두고 싶은 날이 매일 이어진다. 


  힘들어도 보람이 좀 남으면 좋겠다. 좋은 진료를 하려고 내가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환자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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