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새 미친 듯이 내린 비 때문에 계속해서 오는 안전 안내 문자에 잠이 깼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4시에 보안업체에서 온 문자가 있다. 폭우로 인해 우리 치과의 인터넷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다. 아마 CCTV가 끊어진 것 같다. 정전이 된 건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다. 비가 샜으면 어쩌나. 장비에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얼마 전 새로 구입한 CT가 정전으로 망가졌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번 달은 휴일이 많아 힘들었는데 오늘 또 닫아야 되나 싶다. 어쩔 수 없는 자영업자의 비애다.
아침에 상가 원장님들과 약사님이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건물이 정전되고 인터넷이 단선된 것 같단다. 이런 젠장... 욕지기가 터져 나온다. 위층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집에 가야겠다며 문을 닫는단다. 다른 원장님은 우선 병원으로 가봐야 될 것 같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단다. 나는 아침에 학원 보충을 가는 딸을 데리고 가느라 조금 늦게 집을 나섰다.
병원 상가 근처에 오니 밤새 쏟아진 폭우의 흔적이 눈에 보인다. 도로 위에 토사가 쌓여있고, 우리 치과가 있는 건물 1층은 약국을 비롯한 여러 점포들이 초토화된 것 같다. 물을 퍼내고 물청소를 하고 있다. 젠장. 몇 년 전에도 이런 난리였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시청에서는 배수 문제 때문에 하수도 공사를 했다는데 도대체 뭘 한 건지... 지하 주차장 입구에 토사가 가득하고 지하에도 물이 넘쳤었는지 엉망진창이다. 주차를 하고 치과로 올라왔다. 직원들도 당황했는지 장비 작동부터 확인하고 있다. 다행히 전기는 다 들어온다. 장비도 다 작동된다. 전화도 된다. 하지만 인터넷이 안된다.
요즘은 인터넷이 안되면 진료가 어렵다. 대부분 전자 차트를 사용하고 있고, 환자의 의료보험 자격 조회를 해야 하며,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이 그날 진료에 대한 의료보험 비용과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계산해 주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켜고, 엑스레이 장비를 확인하고, 엑스레이 서버와 청구프로그램 서버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내부 네트워크는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어서 기존 서버에 저장된 내용들은 다 잘 보인다. 청구 프로그램도 공단 확인만 안 될 뿐이지 나머지 기능들은 다 잘 작동된다. 카드 단말기도 전화선을 통해서 결제가 진행된다. 느리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장비와 내부 네트워크가 치과를 움직이기에는 충분하다.
이젠 오늘 예약한 환자가 몇 명이나 올까... 하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왔는데 환자가 오긴 올까 싶다. 예약 취소 전화도 몇 명 오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차라리 다 취소되면 빨리 집에 가겠건만... 이비인후과 원장님처럼 빨리 문 닫고 가는 게 상책이 아니었나 싶다. 문 열어둔 보람이 있는 건지 예약환자분들이 한 분씩 오신다. 완전히 놀다 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밖에 또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누구에게도 피해가 없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이번 달은 그만 힘들면 좋겠다. 마음이 힘든 9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