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젠 나에게도 좋은 걸 사주기로 했다

- 왜 이제야 샀을까, 이 좋은 걸.

by 점빵 뿅원장

마우스는 컴퓨터를 살 때 받았거나 사은품으로 받은 게 많아서 문제가 생기면 건전지를 바꿔서 써보거나, 정 안되면 굴러다니는 다른 것을 찾아 쓰는지라 사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에 마우스는 돈을 주고 사기에는 뭔가 아까운 물건이었다. 몇 년 전에 손목이 아픈 사람은 버티컬 마우스를 쓰면 좀 편하다길래 3만 원 정도 하는 것을 사면서 비싼 마우스를 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며칠 전부터 그때 산 마우스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마우스 포인터가 뭔가 느리게 따라오는 것 같고, DPI 값을 바꿔봐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건전지를 바꿔보고, 마우스 바닥과 광센서도 닦아봤지만 여전히 이상하다. 기계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내가 유난히 예민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며칠 지켜보니 문제가 생긴 것은 맞는 것 같아서 새로 사야 할 것 같았다. 조금 비싼 마우스를 사서 그동안 잘 쓴 것 같아서 이번에는 좀 더 좋은 것을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팡을 열고 검색해서 가장 먼저 뜨고 비싼 L사의 무선 버티컬 마우스를 구입했다.


비슷하게 생겼고, 가격도 4분의 1밖에 안 되는 저렴한 제품도 많이 있었고, 그것들의 상품평도 괜찮아서 잠깐 고민했지만 어차피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건데 이번에는 좀 좋은 걸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마우스를 고르는 동안 아들 녀석이 와서 "아빠, 나도 마우스 새로 사줘"라고 하길래 "그래. 그런데 너 얼마 전에 새로 사지 않았냐? 그거 괜찮은 거였는데 고장 났어?"라고 물어봤더니 "좋긴 한데,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서 불편해"라는 말을 하는 거였다. 그 순간 '이 짜식은 딸깍 소리 난다는 이유로 새 거 사달라고 하는데 나는 지지리도 궁상맞게 맨날 싼 거, 짝퉁 같은 것만 사야 되나'라는 욱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들은 안 사주고 내 것만 구입했다.


'좋다고 하니까 샀지만 그래봤자 지금 쓰는 것보다 얼마나 좋겠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받아서 꺼내어 보니 내가 생각한 것이 우스워지게도 너무 좋다. 손에 잡히는 느낌도, 마우스 포인터의 움직임도, 휠 스크롤을 굴리는 것조차도 너무나 좋다. 예전 버티컬 마우스보다 크기도 작은데 손목의 각도도 편안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목에 가장 편하다는 57도로 기울어진 형태라는데 이건 뭐가 다른 건지 느낌이 훨씬 좋다. 이런 젠장... 그래봤자 얼마 안 비싼 건데 이렇게 좋은 것을 모르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써놓고 나서 보니 뭔가 부끄럽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을 써 본 사람이 좋은 게 뭔지 알아"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 같다. 이젠 경제적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아끼고 가성비를 따지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내가 쓸 것은 지나치게 엄격하게 두 번, 세 번 고민을 하게 된다. 가족들이 뭔가 필요하다고 할 때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가급적이면 가장 좋은 것을 사주려고 하면서 말이다.


최근에 읽은 김동식 작가님의 책에서 그랬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서 좋은 것은 갑자기 비가 올 때 편의점에 가서 우산을 하나 사는데 망설이지 않아도 되고, 집에 와서 보니 가방에 우산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도 웃어넘길 수 있게 된 것이란다.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이 돈을 쓴 자신을 책망했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한다. 결론은 늘 비슷하지만 나도 나에게 좀 너그럽게, 아끼지 말고, 좋은 것도 사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뭐 살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러나저러나 작심삼일이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