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놓은 책은 그대로지만, 읽는 책은 늘어났다
< 사진은 대만 여행 중 촬영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에 하나인 대만 베이터우 공공도서관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 집에는 책이 정말 많다. 몇 년 전 이사를 할 때 집에서 제일 큰 방을 서재로 만들고, 한쪽 벽면을 책장으로 꽉 채웠다. 이사하는 날 크고 무거운 가구나 가전이 없어서 쉬울 거라 생각하셨던 이삿짐 업체 사장님께서도 책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툴툴거리기도 하셨다. 아내가 알라딘 중고서적과 당근마켓으로 수시로 팔고 있지만, 사거나 구독하면서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서 지금도 책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쌓여있는 책들이 한가득이다. 부부가 둘 다 책 읽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은 읽고 싶은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사놓은 것 중에서 읽는 것'이라는 어떤 작가님 말씀처럼 책 사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전에는 제목이나 소개, 작가 이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언젠가는 읽을 것 같아서 구입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산 책들의 내용이 생각보다 실망스러웠거나 부실한 경우가 많아서 점점 더 구매를 망설이거나 아예 사지 않게 되었다. 전자책이 활성화되고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보기도 편해져서 속 터지는 크레마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한몫한 것 같다. 그러나 책 구매를 줄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근처 시립 도서관들의 시설이 너무나 좋아지고 신간도 다양하게 많이 들어와서 가볍게 한 번 읽을 책을 굳이 구입할 이유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도서관을 생각해 보면, 책을 펴면 마법사가 튀어나올 것 같은 낡고 오래된 책들이 빈 틈 없이 책장에 꽂혀있고, 습기가 찬 눅눅한 냄새가 가득하고, 사서 분 이외에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있으면 머리가 쭈뼛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 도서관은 눕거나 기댈 수 있는 소파가 있는 편안한 좌석뿐만 아니라 혼자서 앉을 수 있는 분리된 좌석, 밝고 환한 조명, 공기청정기로 쾌적한 환경으로 바뀌어 있다. 게다가 도서관 책 분류법에 따라 책이 배열되어 있던 예전과는 달리, 어린이 책들만 따로 분리해 놓은 서고와 신간이나 추천 도서, 화제의 도서가 배열된 섹션, 웹툰과 만화책이 구비된 섹션이 따로 있어 가족 모두가 시간을 보내기에 참 좋아졌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 도서관은 1인당 10권까지 책을 빌릴 수 있고, 가족 회원으로 묶는 것도 가능해서 우리 가족은 최대 40권까지 빌릴 수 있다. 그래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새로 들어온 책도 살펴보고, 여러 섹션을 돌아다니면서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찾아서 넘겨보고 읽을만한 것들을 추려 몇 권을 빌려온다. 보통 소설 한 두 권, 교양서적 한 권 정도로 읽기에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만 고르고, 가끔씩은 만화책을 시리즈로 다 빌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부담 없이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안 읽히면 그만두고, 만화책은 아이들도 같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 구매는 줄어들고 독서량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나는 티브이 채널을 넘기듯이 이 책, 저 책을 동시에 읽는다. 예전에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새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잘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느리게 읽다 보니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내용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독서량도 줄어들고, 어떤 시기는 아예 읽지 않게 되었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차라리 이 책, 저 책을 꺼내서 읽다가 흥미로우면 계속 보고, 좀 지루하면 내려놓고 다른 것을 보다가 다시 읽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이라도 진도를 나가다 보면 동시 다발적으로 읽기가 끝나는 책들이 생기면서, 결국에는 꽤 많은 양의 독서를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너무 재미가 없거나 진도가 안 나가면 중간에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책 사는 것을 줄이고 나니 책 읽는 양이 늘어났다. 서재의 책은 그대로 있는데 읽은 책을 기록하는 앱에 다 읽은 것으로 남는 책들은 늘어나고 있다. 머릿속에 남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읽어서 비어 있는 마음속을 채우고 있다는, 그래서 언젠가 글을 쓸 때 아주 조금이나마 바탕이 되어주리라는 기대가 커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