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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06. 2022

'고3 예술 수업'  종강을 앞두고

간절하고 아름답게 사랑하기

초록의 여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3 아이들과 1학기 동안 삶을 예술로 만들려고 애썼던 수업이 아이들의 최종 공유회만 남겨두고 있다.

종강을 앞둔 마지막 수업 조금 눈물을 글썽이며 여름 아침에 쓴 글을 읽어주었다.


여름의 구름은 언제나 다양하고 고유하고 개별적이다. 우리 가까이까지 내려온 저 구름의 모양처럼

아이들이 자기의 색깔과 모양과 존재의 결대로 피어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1.
 나의 첫 라디오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기술 실기평가로 만든 라디오는 인두로 납땜을 한 조악한 것이어서 고장이 잦았다. 그래도 그건 집에 있는 유일한 라디오였다. 신기하게 그 라디오는 방구석에 서서 손을 높이 올려야 전파가 잡혔다. 적당한 곳에 못을 박고 걸어두면 될 것을. 바보처럼, 나는 늘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을 한껏 높이 올리고 라디오를 들었다. 손을 높이 올리는 간절함이 있어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처럼. 그 후, 난 무엇이든 간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 간절함을 가지고 온몸으로 자기의 생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을 알고 있고, 그들 곁에 그 간절함으로 언제나 함께 있어 주고 싶다.  


2.
  할머니는 치매로 돌아가셨다. 지금, 서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꽝꽝나무 곁에 잠들어 계신다. 수의를 입고 누워 있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던 날, 그 때, 한 번 안아드리지 못한 건 여전히 슬픈 일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평생 몸을 움직여 고단한 노동을 했다. 내 생각에 그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나온 당신의 삶이 어이없고 서글프며, 앞으로의 삶이 대책 없이 아득하고 막막해서였던 것 같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화분을 옮기고, 찌개를 만들고, 빨래를 널고, 걸레로 마루를 훔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일은 점점 서툴러지고, 문제가 되거나 위험한 상황이 되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서도 할머니는 늘 무언가를 하셨다. 할머니가 삶의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간절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3.
  ‘시 창작’ 수업 첫 시간, 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칠판에 적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질문은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고 거기에서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던 2014년 4월 이후로 ‘문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유가족들과 노란리본이 거리에서 모욕을 당할 때, 그리고 나조차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잠 못 이루는 나날이 많아질 때  ‘문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로 한 번 더 바뀌었다. 삶이 막막하고 모욕적일수록, 질문은 더 간절해졌다.      


4.  

    필로소피암 프로피테리philosophiam profiteri . 그것은 철학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철학자임을, 적절한 방식으로 철학을 실천하고 가르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는 공적 약속의 형태로, 철학에 헌신하고 전념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며, 철학을 입증하는 것, 즉 철학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나갈 것임을 공적으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 자크 데리다, <조건 없는 대학>

                                                            

  나는 교사다. 교사는 어떤 존재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에 대해 ‘헌신’하고 ‘전념’할 것이라는 ‘약속’이 없을 때,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입증’하는 ‘필사적인 싸움’이 없을 때, 교사는 학생들에게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없고, 누구와도 대체가능한 존재가 되며 교사로서의 삶 또한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알 것 같다. 가르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부단한 자기검토와 그것이 세상과 사회, 아이들과 교사인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절실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생활’을 넘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할 때, 교사 자신의 생각에 빠져 삶과의 괴리가 커질 때, 무엇보다 그러고 있는 자신의 맨얼굴을 보지 못할 때 가르치는 일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 된다. 지금도 나로 인해 일어났던 수많은 불행의 순간들을 부끄럽게 기억하고 있다.  
  
5.
 그 간절함으로 무엇이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동료 선생님과 함께 이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것들의 너머를 꿈꾸고, 또 다른 삶에 대한 희망을 품으며, 우리가 아름다움을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단단하게 간직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우리가 불행과 싸울 수 있고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더 당당하게.    
 
6.

  

시창작 수업 글쓰기 노트에서


  시 창작 수업을 마치고 학생의 노트에서 발견한 글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어 감히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 글에는 고통을 직면하는 사람의 용기와 자신의 부끄러움과 마주한 사람이 결국에 도달하는 어떤 세계가 있다. ‘그 순간을 마주해야 그 순간에서 건너갈 수 있다’고 믿는 학생은 오랫동안 해석할 수 없었던 아빠의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아빠의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유로워진다. ‘친구들의 눈물’, ‘사랑의 불가피함’,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운 날’, ‘밤공기의 침울함을 이해하게 된 날’들을 통과하며 그는 이 세계를 건너 다른 세계로 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부끄러움과 타인에 대한 미움을 넘어 그 건너편의 세상을 만나고 싶은 사람의 간절한 희망과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그 소망은 ‘슬퍼서 울음조차 멈춘 이들’로부터 출발했다. 세상에는 슬픔으로 허리가 꺾이고 눈물조차 멈춘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으로 자기도 타인도 세상도 미워하면서 슬픔과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고 더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모든 마음은 예술의 마음이다.


7.  
  문장론 수업에 초대되었던 삶의 예술가는 예전에 내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었다. ‘이제 슬픈 일 좀 그만하세요.’ 이 모든 슬픔 속에서도 끈질기고 힘들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해야 하는 당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봄에 꽃이 피는 소리와 여름 밤 별의 반짝임을 따라, 때로 초라하고 때로 부끄러운 영혼을 하고서도 당신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불렀기 때문에 나도 당신 옆에 가만히 있어 보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바람이 분다. 우리는 결국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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