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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06. 2022

존재할 수 있는 능력

아이들의 삶과 존재의 위기를 넘어서


졸업식 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졸업장을 주며 꼭 안아줄 수 있는 건 교장이 되고 나서 가장 좋은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각자 한 마디씩 졸업에 즈음한 자신의 이야기를 짧게 말하고 무대를 내려가는데 아이들의 말과 표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아이는 1분동안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내려가거나 어떤 아이는 말썽만 피우던 자신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가장 의지가 되어주었던 친구의 이름을 불러주기도 한다. 모두 진심이다. 진짜 마음이다.


짧은 시간 그들의 지나온 시간의 역사를 떠올리고, 그동안 애써왔던 선생님들을 생각하고, 교정의 곳곳에 새겨진 아이들의 노력을 헤아리는 일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게도 한다.


몇 년전 졸업식 날 내게 이런 편지를 주고 간 아이가 있었다.



  제 눈물을 가장 많이 보여드린 선생님께  

   

 선생님, 늘 울고 싶을 때 핑계가 되어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제 저는 어디서 핑계를 찾아야 할까요.

아직도 고2 때 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쏟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아요.

교장실로 가는 내내 울음을 참았는데 선생님을 보니 애석하게도 눈물이 터졌어요.

울음을 그치기 전까지 왜 우냐고 묻지 않으셨던 것이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감사했어요.

그저 걷다 마주치면 절 그냥 보내지 않고 항상 말을 띄워주셔서 감사했어요.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제가 정말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감사했어요.

시창작 시간을 진심만 가득한 공기로 채워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우를 버리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선생님 눈에는 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있어요.

그 진실된 눈으로 저에게 작은 생명 하나까지 알려주셔서 감사했어요.

저는 이우를 졸업하고 그 많은 생명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려고 해요.

선생님을 비롯해 이우에서 만난 좋은 인연과의 배움을 밑바탕에 두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 날게요.

저 혼자 약속하면 지키기 어려워질까봐 이렇게 선생님과 약속해 두고 갈게요.      

                                                                                     2021. 1.27 잠들지 않은 제자 올림


 아이의 문장들에 하나씩 내 마음을 덧붙여 본다.


1. "늘 울고 싶을 때 핑계가 되어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제 저는 어디서 핑계를 찾아야 할까요."

아이들은 울고 싶을 때 어디로 가는가? 울음이 터져나올만큼 슬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곳이 있는가?

'핑계'가 되어줄 만한 사람들, 특히 어른들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 충분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이들에만 해당되는 질문은 아닐 것 같다. 슬픔을 이해하고 고통을 건너가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싶다.


2. "울음을 그치기 전까지 왜 우냐고 묻지 않으셨던 것이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감사했어요."

이것은 슬픔에 대한 태도이고 고통에 대한 윤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울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다행히 그날 나는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조언을 하지도 비판을 하지도 않았다. 아이의 울음의 무게만큼 받는 것,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아무 조건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고통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더 애써보고 싶다.


3.  "그저 걷다 마주치면 절 그냥 보내지 않고 항상 말을 띄워주셔서 감사했어요."

가끔 교정을 지나가다 아이들을 만날 때면 '안녕'이라는 말 이상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 아이에게 할 말이 '안녕'밖에 없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 그 때 친구들과 원반던지기 할 때 네 표정이 너무 밝아보이더라 그 때 어땠니?", " **아, 비 오는 날 우산도 안쓰고 장대비를 맞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던 거니?" 등등........


수업 시간에 어떤 설명을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친구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에게 꼭 묻는 말이 있다. "지금 기분은 어떠니?" 아이의 마음과 내면에 대해 묻고 환대하고 싶어진다.


4. "그 많은 생명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려고 해요."

아이는 지금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인생의 목적에 대해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아니 우리들에게도 어떤 갈망이 있지 않을까? 보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찾고 싶은 마음...

아이가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까지 아이에게 어떤 일들과 경험들이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 나는 그 길에서 만나게 될 아이의 수많은 기쁨과 슬픔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나에게 더 많은 지혜와 사랑이 있기를, 아이들과 우리가 한 인간 존재로서 서로 관계 맺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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