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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06. 2022

고통과 함께 하려는 마음

세월호 기억식에서

  2022년 4월 15일 학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세월호 기억식을 열었다.

부끄러운 글을 썼으나 함께 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추모의 글을 쓰고 읽으며 더 따뜻하고 더 강해지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고통과 함께 하려는 마음 안에 있기를......


  기억식이 끝나고 한 아이로부터 긴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글자들이 간절함의 눈동자를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용기 있고 슬프게 여기에 한 단락만 옮겨 적는다.


"선생님의 눈은 항상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의 눈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만이 배반당할 수 있고

배반당한 사람은 슬퍼한다는 것이

제가 감히 세계의 진리 중 하나라고 유추하는 내용이니까요"




1.

여덟 번째 봄이다.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하게 하는 것에 관하여 - 시 창작 수업 글쓰기 주제였다.  수업 시간에 나는 서둘러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천천히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가 무엇인지 묻지 말고 시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물어야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묻지 말고 나는 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가냘픈 사람들이기에 사랑하는데도 존재하는데도 공부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힘을 주고 싶었다.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힘을 주고 싶었다. 살아 있고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이 모든 것, 2014년 4월 16일 그날 밤 나의 다짐과 희망들이다.  나는 그날의 약속을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간절하게 지키고 싶다.      

 


2.  

  “왜 지금 시를 배워야 하는 건가요?”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는 이렇게 물었고 여덟 번째 봄, 나는 아직 답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날 이후,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한 일은  왜 시를 배워야 하느냐는 저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4월 16일 이후 가르치고 배우는 나의 삶, 그 정신과 마음 안에 세월호와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담으려 애썼던 것 같다. 나는 그날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분투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면 눈물겹기도 하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울어야 한다. 눈물은 계속 되어야 한다.  

 

2022 이우학교 세월호 기억식

 

3.  

그날 이후 눈물이 더 많아졌고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용감하게 싸우는 시간들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슬퍼하는 시간들도 있어야 세상은 더 맑고 투명해진다.  슬픔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러나 또한 슬픔의 옆에 나는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의 상처와 함께 살아가고 나아가겠다는 작은 마음을 놓는다.  우리는 기억과 사랑과 진실의 힘을 믿고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마지막까지 기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작가 김애란은 소설 <침묵의 미래>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까지 기억하기 위해  세월호의 상처를 끌어안고 함께 숨 쉬고 살아가기 위해 오늘 여기에 함께 있다.  눈물처럼 동그랗게 슬픔으로 허리가 꺾여 엎드려 우는 사람.

고통스러울지라도 상처받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   

그것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인간다움과 생명다움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간 아이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  선명하게 함께 있는 아이의 얼굴, 아이의 손가락, 아이의 눈동자, 아이의 붉은 가슴.   

 


4.  

“부모님들은 매일 이런 일 겪으셨을 거잖아요. 그래서 울어요” 세월호 추모행사에 참여한 아이는 거리에서 갑자기 자신을 향해 쏟아진 비난에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처음이었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은 매일 이런 일을 겪었을 거라며. 자신의 상처로 무너지고 부서져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사람들을 향해 열린 마음이었다.    

 

호영이는 2021년 7월 26일 광화문에 있었다. 그날 밤, 나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확성기를 단 차량 한 대가 길목을 버티고 서서 막말을 쏟아냈어요. 참을 수 없었어요. 눈물이 나더라구요. 왜 이렇게 잔인하지 사람들이? 왜 자식 잃은 부모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왜 피해자가 이런 수모까지 겪어야 하는 걸까? 경찰은 세 차례 경고 후 견인한다 했지만 열 번도 넘게 했어요. 그동안 그 말들은 그대로 공중에 흩어지고 유족분들이 그대로 들으셨고요. 그게 참을 수 없었어요 소리질렀어요 빨리 견인해 달라고 자식을 잃은 게 무슨 죄길래 이런 수모까지 겪어야 하냐고 왜 견인하지 않냐고 세 번 넘었다고 울부짖었어요 울었어요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선생님.”  

 

다원이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작년 4월 학교에 걸려있던 세월호 추모 현수막을 찍은 사진이다. 다원이는 부끄러워하며 얼마 전 내게 말없이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지나 다시 4월이 오는 동안 다원이는 핸드폰을 볼 때마다 세월호를 생각했다.  

 

그날 이후, 세월호를 비난하기만 했던 어떤 아이는 처음 세월호 준비위원회에 들어갔다. 자기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희생된 학생들과 살아남은 학생들, 그들의 가족들의 사연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바다처럼 울며 내게 말했다. 지난 모든 날들이 너무 후회되고 부끄럽다고.

 

아직도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로 그 바다 앞에 있다. 우리 가슴은 여전히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다. 고통과 함께 하려는 마음은 언제나 서로를 알아본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의 작고 씩씩하고 슬픈 발걸음은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봄꽃을 올려다보며 다짐한다. 슬픔과 희망의 4월, 다시 그리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봄이 꽃을 피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온 것이다.  꽃이 피었으니 이제 아이들이 올 것이다.  


저 초록의 나무가 벌써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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