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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06. 2022

문장으로 생각하기

진실한 문장을 쓴다는 것

1.

고3 독서수업 시간에 '글쓰기에 대한 아주 작고 사소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쓰기 수업을 했다. '나의 읽기에 대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돼주고 싶었고,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글을 알고 있으면 좋을 것들을 한번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글쓰기 방법 중에 '문장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하며 두 편의 글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너는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거나 어디에선가 읽었거나 혹은 누군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몇몇 진실한 문장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문장을 쓴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면 정리가 되지 않고 굉장히 혼란스럽다. 그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 어떤 말을 쓸지 생각하는 게 좋다. 지금 이 문장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다음 문장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가, 하면서 단계별로 생각을 만들어가야 한다.                                                                                                                          - 황현산



나는 아이들에게 단어는 아직 생각이 아니다. 문장이 되어야 생각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문장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도 말해주었다.   

우리는 각자가 쓸 글에 담길 문장들에 대해 떠올려보고 이야기 나누어 보기도 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진실한 문장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린 다음 문장, 그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문장에 무엇인가가 함께 담기고 실려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문장을 쓰고 나면 문장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묻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이것은 모두 누군가의 문장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날 밤,  한 아이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선생님 주말 밤에 죄송해요. 입체조형에서 만든 작품 설명을 쓰는데 쓰고 싶은 문장 하나부터 시작하니까 더 잘 쓸 수 있었다고 선생님이 이야기해주셨던 팁을 써먹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보내드려요. ㅎㅎ.. 전시 시작하면 꼭 연락드릴게요 꼭 보러 오세요. 그리고 오늘 잔잔한 밤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이는 자신이 쓴 글도 보내주었는데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신에게. 안녕, 당신은 오늘 어떤 기억을 만들었나요?"  


2.

중학교 3학년 아이들과 작은 시 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에는 교장실에 모여 앉아 자신이 쓰고 싶은 글과 그 글에 담겼으면 좋을 문장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어떤 아이가 "아빠를 생각하면 언제나 짠하다."라고 말하면서 오래 울었다. 그 문장에는 아이가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교장실이 마법의 방이라고 말하면서 여기에만 오면 꼭 울게 된다고 했다. 맞다! 우리는 세 번째 모임이었고 아이들은 그때마다 울었다.


하지만, 교장실은 마법의 방이 아니다. 마법은 아이들의 마음과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말해지지 않았던 것,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가까이 가고 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언제나 실패하지만 또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은 실패이기도 하다.


언젠가 어떤 아이가 자신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고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엄마가 걸레질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엄마 손에는 평생 걸레가 있고, 죽어서 누워 있을 때도 걸레를 들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무너진다." 아이는 바다처럼 울었다.    


나는 그런 진실한 문장들을 하늘처럼 바다처럼 나무처럼 꽃잎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알고 있다. 오늘부터 하나씩 이야기해볼까? 하루에 하나씩. 가령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쓴 이런 문장들이다. "내 글은 따듯한 척하는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어젯밤의 고난과 꿈속에서의 찰나와 같은 기쁨 그리고 아침의 허무함을 살아 지금에 다다른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아. 나무가 춤을 추면서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    


3.

자신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그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가? 어린 시절과 10대의 시간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때로는 어색했고 불편했고 막막했다. 나만 잘못된 것 같았고 나만 유별난 것 같았고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내 안에 일어나는 많은 마음의 일렁임을 표현할 언어를 찾기도 너무 어려웠다. 나는 자주 멈췄고 주저했고 우물쭈물했다. 언제나 이방인 같았다. 그런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어른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지금 너희들의 슬픔과 자신 없음과 자주 쪼그라드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아직'은 늘 '언젠가'를 품고 있고, 너희들의 글은 '별거 아닌 게 아니라' 언제나 '특별'하다고 따뜻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4.

잠들기 전, 오늘 하루 나의 삶을 하나의 문장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오늘 어떤 문장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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