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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an 30. 2024

새끼손가락과 튤립 속에 있는 사랑

1.

  아이들이 오지 않는 학교의 복도는 유난히 길고 춥다. 창쪽으로 들어오던 햇살마저 사라진 것 같다. 원래부터 햇살은 없었던 것일까. 그동안 나는 복도를 뛰고 걷던 아이들을 햇살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학교는 긴 겨울잠을 자는 듯하다.

 

  출장을 가려고 교장실을 나오다 아라를 만났다. 난파음악제 연습을 하러 학교에 왔다고 했다. 나는 아라에게 방학 때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묻고 그림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라는 '그럼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 보였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각자의 장갑을 벗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개학하면 아라가 그린 그림을 함께 보자고. 긴 복도를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가 손가락을 걸었을 때 내 손이 따뜻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주 작고 작은 햇살을 볼 수 있었다.   


2.

  점심에 행정실 선생님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지난주보다는 춥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이곳은 바닷바람이 여전하다는 말, 5월까지도 춥다는 말과 함께. 작년에 심은 튤립이 언제 어떻게 피어날지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5월이 되어야 필 것이라고 했다. 이곳은 5월이 중요하다. 꽃을 심고 가꾼 사람은 꽃이 피어나길 기대하고 기다릴 자격이 있다. 꽃을 가질 수는 없으나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을 가질 수 있다. 땅에서 그의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이 마음에서 아름다움을 태어나게 한다. 우리가 언제 '기대'와 '기다림'을 가져보겠는가.   


3.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펄롱이 석탄 광으로 가지 말았으면 했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했고, 아내와 딸들과 크리스마스의 작은 행복을 누릴 만큼 안정적으로 살고 있었으므로. 자기와 가족을 더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펄롱은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에나멜가죽구두와 레몬 젤리 한 봉지를 들고 세라가 갇혀 있던 그 석탄 광으로 간다. 그가 '두려워하며 상상했던 그대로' 아이는 거기에 있었다. 펄롱이 아이에게 말한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타인에 대한 사랑, 용기 있는 결단,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마음보다 펄롱이 앞으로 겪게 될 일들, 그보다 그의 가족이 함께 감당해야 할 일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 한통속이야'라고 말했던 미시즈 케호의 말처럼. 그것은 나의 삶과 겹쳐 보였다.

  나는 한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슬픔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해야 했다. 지금도 완전히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다. '세라를 집으로 데려간 후 펄롱에게도 그런 슬픔이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121쪽 이후를 내내 생각했다.


4.

  그럼에도, 나는 펄롱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했던 그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펄롱이 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을 시작한 것인지. 소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120쪽) 



5.

  나는 얼마 전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을까요?" 나는 아이들을 향한 조언과 충고의 말들이 너무 많아 어떤 말을 보태기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해본다면 '곁에 있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언어이든 언어가 아니든 행동이든 행동이 아니든 함께 있겠다는 것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가장 무너지는 순간에.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채찍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야 한다고. 나의 삶이니까. 그것이 삶에 대한 의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6.

  클레어 키건의 또 다른 소설 <맡겨진 소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고,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딱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 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 든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97쪽)


  망설임 없이 달려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은 새끼손가락과 튤립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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