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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20. 2022

나의 예술 선생님들 2.

고3 예술 수업을 마치며

1.

  <에세이 만드는 법>(이연실 지음)에는 '다른 사람이 쉽사리 안 하려 하는 책, 고생길이 훤한 책이라도, 어떤 사람과 삶이 소중하다면, 애틋하고 유일하다면, 일단 끌어안고 같이 헤쳐나가 보자.'는 문장이 있다. 1학기 예술 수업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가장 아쉬운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다.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 개별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 아이의 유일무이함을 아이와 함께 발견해가는 것, 애틋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 그리고 아이와 함께 그 모든 아이의 역사를 끌어안고 같이 시간을 통과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교사 스스로 자신 내면의 작품을 꺼내어 보여줌으로써 아이를 납득시키고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세계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아이도 교사의 세계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와 '함께 해결하기' - 수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같은 배를 타는 것과 같다.

  

2.

  준호의 예술은 <탕춘대성>이었다. 준호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이어주는 '탕춘대성'의 특징과 역사를 설명하며 이 성이 원이 아니라 직선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야기의 말미에 준호는 이 성은 지키기 위한 성이고 자신도 마음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 성과 자신이 닮아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우리에게 여러분들도 각자 마음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있지 않냐고 물었다. 한양을 지키는 탕춘대성의 성곽에서 우리 모두 삶에서 지키고 싶은 간절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읽어낸 준호의 마음은 예술의 마음이고 예술의 상상이다. 공유회를 마치고 어떤 아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성을 보면 나는 지금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것 같다고.     

    

  준호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준호가 스케치한 탕춘대성을 오래 바라보며 나도 내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준호의 <탕춘대성> 스케치

3.

  이랑이는 발표하기 부끄러워했다. 대신 모두에게 자신의 글과 작품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저를 제일 잘 감출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그림으로 제가 숨기고 싶어 하는 제 상태(?)를 네 컷 만화로 그렸어요. 어떠한 제목도 순서도 없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주인공에 대해,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처럼, 그냥 저에 대해서 또는 비슷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욤...언젠가 용기가 나면 말로 설명해볼게요."


  용기가 나면 말로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지만 이랑이는 이미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기를 이해하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려는 이랑이의 태도는 작품 그 자체가 되었다. '자신을 제일 감출 수 있으면서도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이 역설적 표현, 자신을 감추면서도 표현하고 싶은 이랑이의 마음이 더 깊어지고 더 다채로워지고 더 덩어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자, 이랑아!'

  이랑이의 예술은 자신감 부족이 아니라 자기를 기만하지 않고 척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과 틀에 억압받지 않고 남 탓, 세상 탓하며 삐뚤어지지 않으면서 가장 순수한 상태의 자신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가장 용기 있는 예술일지도 모른다.  


이랑이의  네컷만화

4.

  나영이의 예술은 <기억의 집>이다. 원래 나영이는 자신을 버티게 해 준 사람들의 특성을 모아서 하나의 가상의 사람으로 만들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집을 구상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힘든 순간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나영이의 특별한 마음이고 그 아이의 개성이다. 나영이는 계획을 바꿔 글을 쓰고 프린트한 후에 그 종이로 집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문장으로 만든 집인 셈이다. 그리고 거기에 <기억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이 집에 대한 구상은 독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주신 '책은 글의 집이다'라는 문장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나영이는 책이 사람의 집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다.  그리고 글로 집을 지어보기로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 속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감사해하며 그다음을 꿈꾸어 보는 아이의 간절함이 느껴져 한동안 먹먹했다.   


나영이의 '기억의 집'과 '내게 선물해준 집'

5.

  지금 내 삶을 돌아본다. 아침이 저녁처럼 고단하고, 날카로운 비판과 평가 속에서 괴로워하고, 아쉬움과 후회로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숨을 내쉬고, 아픈 몸과 잠들지 못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높고 단단한 벽 앞에서 절망할 힘조차 없이 주저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나와 아이들에게 수업은 표현할 있어서 존재할 있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예술 선생님인 아이들, 그리고 또 다른 예술 선생님인 이 수업을 함께 만들어간 동료 선생님께 마음은 고개를 숙이고 영혼은 무릎을 꿇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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