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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23. 2022

"넌 봄날의 햇살 같아"

우리 애틋하고 강한 마음

1.

  어제 벼리(고2 학생)가 이른 아침 글을 보내주었다. 아마, 아이는 글을 쓰려고 밤을 새웠으리라. 벼리는 그런 아이다. 제목은 <나무를 닮은 사람>이었고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 학교를 떠난다는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나무 같아요. 숲을 이루고자 하는 나무 같아요. 그런데 다른 나무들이 모이지 않아 외로이 서있는 나무 같아요"-


  아이는 내가 연약하고 여린 사람이지만 도망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회피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심어질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나를 붙잡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내가 '깊게 뿌리내리기에 좋은 땅'이 아니고 '척박한 땅'이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에게 부끄럽고 죄송해서 나를 만날 때마다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고 했다. 아이는 내게 많이 미안해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 같이 숲을 이루어주겠다고 그렇게 선생님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숲은커녕 나뭇잎 하나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부끄러운 후회이자 선생님께 드리는 미안한 끄적임이다.-    


  그리고 벼리는 지난 한 학기 자신이 어떻게 매일 절망하며 학교에 다녔는지 썼다. 그럴 때마다 학교에 와야 하는 이유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도 고백했다. 글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벼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아주 작은 희망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 우리는 서로를 품은 숲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선생님에게 어떤 나무로 남을 수 있을까. 선생님이 끝없이 주는 진심 속에서 나는 나의 진심을 꺼내 들고 선물처럼 선생님께 드릴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누군가의 진심에 진심으로 응답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생활은 고달프고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힘겹지만 여전히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는 이 마음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눈앞의 내 일이 언제나 더 커 보이는 삶의 비바람 속에서도, 날카로운 말로 끝내 누군가를 무너지고 부서지게 하는 폭력의 마음들 속에서도 이런 마음을 지키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서로에게 이렇게 '애틋하고도 강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벼리와 내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고 결국 힘이 되어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의 갈망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느낌'을 주는,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은 어떤 갈망 같은 것을 알아차려주는 누군가를 마침내 만나는 순간, 평생 가는 우정이 형성된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의 고통의 맥락을 헤아리고, 그럼에도 각자가 꿈꾸는 갈망과 소망에 대해 알아차리고 자기 조건에서 부단히 당신의 희망과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자기의 기준과 시선으로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지 않고 당신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피는 것. 당신의 외로움과 결핍, 당신의 상처에 가까이 가려는 마음, 그러나 또 당신의 아픔에 닿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는 '진짜 우정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의 마음대해 이야기할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7월이 가기 전에는 '우리는 서로를 품은 숲이 될 수 있을까'라는 아이의 마음에 진심으로 답장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벼리와 나는 7월 27일 수요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아이는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2.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친구 최수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봄날의 햇살 같아.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영우의 이 말에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자신을 수연이 도와주어서 고마워하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수연이 지니고 있는 그러나 수연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어떤 존재의 결을 영우가 정확히 읽어준 것은 아닐까? 수연은 영우를 도와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어차피 일등은 우영우'가 싫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했다. 영우가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고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 모든 최수연의 마음 가운데 하나의 마음을 꺼내어 우영우가 봄날의 햇살로 이름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름이 불리는 순간 최수연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자신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수연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글썽해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을 네가 알아줘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네가 읽어주어서. 내가 그런 사람이고 그런 존재라는 걸 네가 알아차려주어서. 

 

3.

  <유퀴즈>에서 배우 김신영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또 직업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잖아요. 편견도 있고. 근데 솔직히 말하면 마음은 콜이었으나 제가 자신에게 선입견이 컸어요. 이 작품에 대해서 내가 폐 끼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봤을 때 분명히 에--김신영, 개그맨이었지 이렇게 될까 봐 선입견이 컸는데 그 선입견을 먼저 깨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사실 방패막이 돼주신 것 같아요. 진심으로.   


  그리고 김신영 배우에 대해 영화감독 박찬욱은 이렇게 말했다. 

"신영 씨는 이름만 들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이에요"

"인생의 여러 그런 감정을 다 갖춘 웃겼다 울렸다 하는 게 참 좋았어요"

"촬영할 때도 느꼈지만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고.... 마지막 무대인사를 하고 수고했다고 포옹을 하는데 아우 콧날이 시큰해지더라고요. 이젠 다음 작품을 외국에 가서 일을 해야 되는 관계로 자주 못 만날 같은데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보나 그러면서 애틋한 마음이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빨리 작품 끝내고 돌아와서 만나서 냉면 먹고 싶습니다."


"아, 신영 씨, 자기 속한 직업 세계에서 뭔가를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라는 책임감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어요.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짐을 좀 내려놓고 편하게 즐겁게 살기를 바랍니다."


4. 

  당신을 알아서 너무 애틋하고 당신을 알기에 더욱 강해지는 마음.

지금 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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