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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16. 2022

 開學, 마음을 열어 당신을 사랑하기

1.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왔다. 저마다의 시간들을 표정에 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고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아이들은 다시 만난 기쁨과 반가움을 나누고 있었다. '開學'처럼 아이들은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간직한 채 마음을 열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듣고 싶었던 좋은 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시 창작 수업을 신청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고, "무슨 힘든 일 있었니?"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먼저 "저 힘들어 보여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고, 고3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마음 모아 신청했는데 내가 개설해주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아이도 있었고, 시끄러운 교실 책상 위에서 세상모르게 잠이 든 아이도 있었고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아이들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작은 선들이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시간이 흩어져 사라지게 두지 말고 그 시간이 각자의 향기로 깊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활동과 일과 공부가 자신의 삶과 내면의 힘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한다. '자유의 삶'과 함께 '은유의 삶'도 가르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우리가 마음을 열 때 가능하다. 잘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유연하고 열려 있다. 굳어진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개학은 그래서 마음을 열어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배우고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2. 

  고2 태현이가 교장실에서 포스트잇에 무언가 적고 있었다. 홈베이스 정리를 하다가 노트가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는데 누군가의 시 창작 수업 노트인 것 같아서 가져왔다고 했다. 첫 장을 열어보고는 더 읽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교장선생님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아이는 정성스럽게 노트의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거기에 담긴 깊은 마음의 풍경을 존중해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1학기 시 창작 수업 시간에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선한 마음은 언제나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나는 두 손으로 아이가 건네주는 노트를 정중히 받았다. 그리고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노트의 첫 장을 열자마자 누구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단정한 글씨체로 '4년도 더 된 일이다' 이렇게 문장이 시작되었다. 작년 시 창작 수업을 들었던 정겸이의 노트였다. 아마 첫 글쓰기 시간에 첫 발표자로 이 글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노트가 내게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네가 쓴 글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겠노라고 말했다. 아이는 부끄러워했지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3. 

  가을과 겨울의 2학기, 우리의 시간에 왜 미움과 권태 같은 것이 없겠는가? 갈등과 다툼도 오해와 짜증도 있겠고 슬픔과 좌절, 원망과 무기력, 그에 못지않은 생명과 갈망도 있을 것이다. 삶의 모든 것들은 학교 안에 그대로 있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그 삶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고 끈질기게 살아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르치는 일에 삶이 묻어나게 해야 한다. 삶이 없는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은 대화도 만남도 관계도 배움도 성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벼리가 교장실에 다녀갔다. 아이는 마을 서점에서 일하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피하지 않고 부딪치고 맞닥뜨리면서도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연습 중이라고 했다. 더 이야기하면 오열할 것 같다고 하며 그만 가보겠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아이는 내가 안전해서 울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벼리에게 계속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4. 

  졍겸이의 노트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가 낙서처럼 적혀 있었다. 작년 수업시간에 우리는 그 책의 문장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죽고, 사물들이 파멸하여 오랜 과거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에도, 오직 냄새와 맛만은 더 연약하지만 더 활력 있고, 더 비물질적이며, 더 끈질기고 더 충실하여마치 영혼과도 같이상기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오래도록 계속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계속 살아남아 있는 관계와 감각,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물해주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다. 오늘은 개학날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당신들에게도 마음을 열어 사랑을 전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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