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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17. 2022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

1. 

   

         종시 終詩 

                       - 박정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시인 박정만은 1988년 10월 2일 서울 올림픽 폐막식이 있던 날, 봉천 7동 다세대 연립주택 1층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신림 7동 연립주택 3층 집에서 혼자 폐막식을 보고 있었다. 그는 1981년 5월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대학 동창과 술 한 잔 먹은 것이 다였다고 한다. 시인의 영혼은 그 고문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그는 현실을 잊기 위해서 현실을 견디지 못해서 술을 마셨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그는 300편이 넘는 시를 썼다. 시인은 세상에 시를 쏟아냈다. 그 무렵 그의 시 끝에는 시를 쓴 날짜와 시간이 함께 기록되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12월에 처음으로 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샀다. 그때 나는 시인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줄 몰랐다. 그의 시는 아름다웠고, 특히 소리 내어 읽기 좋았다. 그가 발표한 시집을 몽땅 사서 읽었고 밤늦게 옮겨 적으며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살짝 가지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집은 1988년 3월에 출간된 <슬픈 일만 나에게>와  1988년 11월에 출간된 유고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이었다.      


  나는 시 창작 수업의 어디쯤에선가 시인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수업시간에 두꺼운 박정만 시전집을 들고 가서 칠판에 그의 <종시>를 써 놓고 나지막하고 가만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왜 그는 죽기 전에 그렇게 많은 시를 썼을까? 그때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자고 한다. 고문도 죽음도 그의 시 쓰기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왜 박정만은 죽음 앞에서 시 쓰기를 선택했을까? 


  시를 쓰는 순간만큼 그는 새롭고 다른 존재이지 않았을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갱신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세계 속에서도 다른 세계를 꿈꾸고 지금의 나에 충실하되 거듭 미래의 나아가는 나를 생각하는 것, 어떤 역할 속의 '책무의 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 '자유와 해방의 사람'이 되는 것. 감히 시인의 슬픈 죽음 앞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소련의 작가 오시프 만델슈탐은 스탈린을 풍자한 시를 썼으며 비밀경찰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두 번째로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죽기 5분 전까지 입으로 시를 썼다고 한다. 그가 남긴 시의 일부분이다. 


당신은 모든 대양과 모든 장소를 빼앗아 갔다 

당신은 나를 한 평 감옥에 집어넣었다

당신은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당신은 내 입술을 남겨 두었고, 그 입술은 침묵 속에서도 말을 한다

                                                      

  당신이 내 입술을 남겨 두는 한 나는 침묵 속에서도 말을 할 것이라는 시인의 마음은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당당한 존재 선언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말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기도 하다.


2.  

  오래전 고3 학생이 자신이 쓴 <자기성장보고서>를 보내준 적이 있다. 자신의 성장의 역사를 기록한 글이었다. 거기에는 시 창작 수업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었다.  

 

  "봄이 되면 이 수업이 생각나고 그립다. 나는 자유로워졌고 단단해졌다. 나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결코 나를 작게 만들지 않았고 나를 곧게 세워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피고  안부를 묻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선생님은 좋은 글은 정확한 글이고, 아픈 글이라고 했다. 올해 초에 언니에 대한 글을 쓰다가 ‘너무 아픈 삶’이라는 문장을 ‘누군가 항상 해줘야 그나마 인간다워지는 삶’이라고 고쳐 쓰고 엉엉 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선생님이 한 말들을 내 속도대로 하나씩 지켜나가고 있다." 


  시 창작 수업이 자신을 어떻게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었는지 담담하게 기록하던 학생은 '언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울었던 기억에 대해 말한다. 왜 '너무 아픈 삶'이라고 썼을 때는 울지 않았는데 '누군가 항상 해줘야 그나마 인간다워지는 삶'이라고 쓰면 엉엉 울게 되는 것일까? 두 문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따뜻하고 뭉클하게 오래 생각해본다.  


  내일은 2학기 첫 시 창작 수업이다. 오늘 밤에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때묻지 않은 가장 처음의 마음과 모든 것을 품고 지나온 마음을 가지고 수업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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