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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18. 2022

삶을 받아들이기

1.

  누군가 왜 대안학교 교사가 됐느냐고 물으면 나는 잠시 말을 잃게 된다. 큰 뜻도 높은 신념도 멋진 계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에 잘 응답하고 싶었다. 그것이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상처와 슬픔을 예고하고 있더라도 내게 주어지는 것들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조금 노력했던 것 같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지금은 미처 내가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과정이 그다음의 무엇으로 연결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 일을 계속한다면 나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을 거야. 근데 이 상처가 내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가진 의미를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렇게 하면 그다음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언제나 그런 뜻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지만 분투했던 시간들은 여전히 애틋하고 눈물겹게 남아 있다.     


2.

  첫 학교를 그만두고 성남의 한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던 적이 있다. 수업을 설계하고 디자인할 시간을 주셨고 아이들 앞에서 직접 시강도 했다. 남고였고 아이들은 내 질문에 잘 호응해주었다. 따뜻하고 순수했다.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물으셨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는 내가 두려워서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내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고 내가 어떤 교사보다 잘 가르치고 있고 따뜻한 교사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상황과 고통과 갈망보다 나 스스로 만족하며 내 생각과 감정에 취해있었다. 내 관심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던 셈이다.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가르쳤던 것이다. 그 시절의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의 빚을 여전히 조금씩 갚아가고 있다.


  나중에 면접에 참여했던 선생님께 들었다. 시강할 때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점, 면접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한 점이 인상 깊었다고 하셨던 것 같다. 채용시험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도 덧붙이셨던 것 같다.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고 그 관계가 지속되기는 더욱 어렵지만 그래도 그런 순간은 참 따뜻하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5반 담임으로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1년을 같이 보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오래 지속되는 만남이었다.      


3.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야 할 때도 필요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해 응답하는 태도도 때로 소중하다. 내게 오는 파도를 뚫고 거슬러 나아가기보다 서핑하듯이 파도의 결을 따라 파도를 타고 함께 움직여주는 것. 우연을 향해 열려 있고 애매모호함 속에서도 잠시 머물러 있어 보는 것. 내 앞의 언덕을 받아들여야 언덕 그다음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시작하고 출발할 수 있다면 우린 그다음으로 연결된다.

  글을 쓸 때 단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 문장에 기대어 앞과 뒤 어디에서든 다음 문장을 이어 쓸 수 있지만 한 문장도 시작할 수 없다면 우린 백지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 너무 볼품없고 맘에 들지 않는 문장이어도 우선 써야 한다. 문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4.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해내지?' 막막하고 아득하고 버거운 슬픔이 차올라서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을 때, 그때 조용히 말해본다. 다시 추스르고 정돈하고 의자를 앞으로 힘껏 당긴 후 손뼉을 한 번 치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방법이 있을 거야.',  ‘그래, 내 삶을 더 사랑해보자.’


  오늘은 시 창작 첫 수업이었다. 나는 첫 수업 시간, 아이들의 말과 표정과 눈물과 미소, 그 모든 것들을 오롯이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떨리는 삶을 끌어안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고 더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어루만지고 품어주고 싶다. '괜찮다. 모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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