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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23. 2022

아침의 시집

1.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시 창작 두 번째 수업이다. 오늘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한다. 그런데 비가 오니 예정에 없이 시를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장실 서가의 시집들을 둘러본다. 

  대학 때 서울역에 철도문고라고 작은 서점이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역이나 시청역에서 갈아타야 해서 근처의 서점들을 자주 들렀었던 것 같다. 그때의 서점들은 작았고 서가와 서가 사이가 좁았다. 나는 책에 파묻힌 느낌이 좋았고 언제나 책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서점의 서가 앞에 서서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모르는 세상의 아름다움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고 설레곤 했다. 그 여정 끝에 사랑스러운 책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할만한 책이 얼마나 더 많이 있을까?' 우연히 좋은 노래를 만날 때도 그랬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으니 내가 모르는 좋은 노래가 얼마나 많을까?'하고. 책의 세계는 언제나 내가 아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 나보다 크고 넓고 높은 어떤 정신과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무튼 그날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저녁 무렵에 배고픈 마음으로 철도문고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시집을 읽으며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정말 그날 꼭 사고 싶은 시집이 있었다. 그럴 때가 있다. 손에 들고 어딘가로 가져가서 그날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 있다. 가슴에 가져다 대고 싶은 책, 가방 속에 꼭 넣어두고 싶은 책, 외투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만지작 거리고 싶은 책, 머리맡에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펼쳐놓고 잠이 들고 싶은 책, 밑줄을 너무 많이 긋고 싶은 책, 밑줄 그으면 안 될 것 같은 책, 그날이 아니면 안 되는 책, 꼭 그날이어야만 하는 책이 있다. 

  너무 간절해서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언제나 간절하고 절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집을 사면 집에 갈 차비가 없었다. 서울역에서 신림동까지 걸어가는 건 너무 무리였다. 나는 그 시집을 들고 한참 동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날 나는 결국 그 시집을 샀고 걸어서 집에 갔다. 그날은 짧고 이제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언제나 이런 아름다움들이다. 지혜와 선과 아름다움을 곁에 두는 사람은 언제나 지혜롭고 선하며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짧지만 오래 지속되고 따뜻하며 강하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그 힘을 믿고 이 여름의 언덕을 명랑하게 넘어가길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     


2.

  아이들에게 읽어 줄 시를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서투르고 부족하고 부끄럽더라도 이 글은 오늘 아침에 '발행'하고 싶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오늘은 시 창작 수업 두 번째 시간이다. 두 번째...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한 다음 날이다. 사랑한다고 말한, 사랑의 첫 마음을 가진 그다음 날이다. '처음'의 마음 못지않은 '다음'의 마음이 두 사람의 사랑에 단단한 힘과 따스한 용기를 가지게 한다. 이제, 삶의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비 내리는 아침, 무너지고 부서진 지난밤의 마음을 끌어안고 아침의 시집을 펼친다. 당신에게 이 아름다운 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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