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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30. 2022

가을의 기도

1.

  시인 이문재는 시 <오래된 기도>에 이렇게 썼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시인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오른손을 외롭게 혼자 두지 않는 왼손의 마음과 누가 더하고 덜할 것 없이 같은 사랑이기 때문에 맞잡을 수 있는 두 손의 마음과 힘껏 가슴 앞에 모아 심장 가까이 가져오는 마음이 간절한 기도일 거라고 비 오는 가을 아침에 생각했다.

  하여 시인은 이 따뜻하고 다정하나 씩씩하고 용감한 사랑의 기도를 이렇게 끝맺고 있다.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고.  


  나는 가을이 오고 있는 어젯밤, 밤을 지새우며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우리를 위해 오래 기도했다.


2.

  지난주 목요일의 시 창작 수업, 우리는 진실에 가까운 말은 정확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진실들에 대해 물었다. 준휘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죽음을 자주 생각해요." 그때 교실에는 어떤 고요와 정적이 흘렀는데 그럴 때가 있다. 우리가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두 발을 떨며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아이는 가을처럼 깊어진 표정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뒤에 앉아 있던 시우가 그 아이의 팔에 자신의 오른손을 살짝 올려놓았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왜 준휘의 팔에 손을 올려놓은 거예요?" , "어떤 마음이었어요?"  아이는 말했다. 자신도 죽음을 생각하는 그 마음을 잘 안다고. 그리고 아이는 또 오래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두 아이는 쉬는 시간에 같이 나가서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종이 치고 나서야 같이 교실에 돌아왔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는' 오래된 기도의 순간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그렇게 당신을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깨어있던 가을의 밤들과 당신이 이제는 불을 끄고서도 눈을 감고 잘 수 있도록 오래 기도했던 봄과 여름과 겨울의 밤들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기 전, 나는 다경이에게 오늘 수업의 마지막 이야기를 청했다. 수업 시간, 아이가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쏟아지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이렇게 말했다. "저도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는데요.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면 죄짓는 것 같고 무언가 잘못하는 것 같았어요. 나만 이상한 것 같고 독특한 것 같고, 죽음은 저에게 금기어였는데 준휘가 수업 시간에 죽음이라고 말하는 순간, 죽음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어요. 괜찮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경이를 따뜻하게 오래 안아주었다.

  그렇게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감히 아이가 그날 수업에서 자유를 선물 받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자유를 위해 당신이 "선생님, 이제 자유예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과의 수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이어가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3.

  그날의 수업에서 연우는 자신의 진실이 연극에 있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왜 연극인 거예요?" 아이는 연극이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볼 수 있게 해 주어서라고 답했다. 수업 시간, 나는 여기에서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직 '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연우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봐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이가 말했다. "저는 저를 싫어하거든요." 내가 물었다. "왜요?" 아이가 답했다.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연우가 연청(학교 연극동아리)에서 공연 연습을 하는 걸 볼 때마다 연우의 마음속에서 불길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고. 사랑받아본 적이 없다고 느껴서 자신을 오래 싫어해 온 아이에게 연극은 자신의 진실이었다. 연우를 위해 당신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오래 생각했다.  

  그날 연우의 이야기를 듣고 느낌이 어땠는지 옆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우연히도 같은 연청에서 함께 연극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는 같은 동아리에서 연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는데 자신도 연우를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이렇게 이 수업은 계속 연결되고 있다.    


4.

  시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고요와 소망이 어우러져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과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이 함께 느껴지는 시다. 오래전부터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 혼자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는 시이기도 하다. 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문장을 비 오는 가을 아침, 당신을 위해 기도하며 읽어본다.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함께 가꾸어가길 눈물처럼 기도해본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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