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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31. 2022

사랑받지 못하는 슬픔,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

1.

  어제 시 창작 수업 시간, 개학한 지 2주가 되었고 비가 내리는 아침의 첫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고단했고 가라앉아 있었다. 너무 졸려 잠을 깨기 위해 손등을 세게 꼬집은 아이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너무 피곤하고 힘들지?"하고 물으니 아이가 내게 손등을 보여주며 말해주었다. 빨갛게 손톱자국이 남은 손등이 안쓰럽고 미안했다.   

  교실이 너무 고요해서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웃으며 "내가 오늘은 빗방울들과 수업을 할 것 같구나" 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제는 아이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은 경험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가을의 아이들에게는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을까? 지친 아침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사랑받은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은 이야기하길 주저하거나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약간 체념의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사랑의 시간을 물었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집에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답하거나 얼마 전에 생일이었는데 친구들 몇 명이 파티해준 것이 '그나마' 사랑받은 경험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 아이는 정말 외로운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말해서 수업을 하다가 말고 가서 살짝 안아주고 싶기까지 했다.  

   사랑하고 사랑받은 경험에 대한 질문을 다른 질문으로 바꾸어 이 수업의 어디쯤에서 아이들 앞에 다시 꺼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사랑받지 못하는 슬픔과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던 순간을 종이에 옮겨보고 다시 돌아가 그때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도 있었을 사랑받지 못한 슬픔과 이해받지 못한 마음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당신은 정확히 모르는 나의 마음들.         


2.

  가수 백아의 <테두리>는 섬세한 노랫말과 가만한 멜로디와 따스하고 슬픈 목소리가 어우러져 사랑의 마음이 혼자 커져버린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과 소용없는 다짐과 정리하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자신에 대한 미움을 아프게 전하고 있다.

  특별히 "왜 나는 마음마저도 노력하고 깊어진 내 맘만 초라해지는 걸"이라고 노래 부를 때, 마음까지도 언제나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서 또 사랑은 자연스럽게 깊어질 수밖에 없으니 깊어만지는 그 마음이 얼마나 초라할지 느껴져 울컥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사랑의 남루함으로 쓸쓸했던 시간들.....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하거나 정확히 이해받고 싶을 때 이해받지 못한 마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람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마음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고 정성을 다했던 발걸음들은 당신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런 마음들은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3.

  시인 이제니는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은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불러온다고 썼다. 아이들과 내가 거기까지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썼던 수많은 밤의 시들을 기억하고 있다. 아무래도 앞으로 계속 나는 밤의 시를 쓰고 지우고 쓰고 할 것 같다.   


"간신히 말해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자신의 마음일 뿐이다.

말하지 못하는 어떤 말들이 사랑받지 못하는 어떤 마음이 밤의 시를 불러들인다.

말하지 못하는 그것을 종이에 쓰면서 조금씩 시에 가까워진다."



추신:

백아의 <테두리> https://www.youtube.com/watch?v=R8axRrFIs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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