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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10. 2022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1.

  함께 나누어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 같은 책을 사서 동시에 함께 시작하고 싶은 책이 있다. 그 마음은 책의 이전과 이후까지 책의 모든 시간과 책이 아닌 시간까지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애틋한 기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에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책을 이미 당신이 읽었거나 당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읽었거나 당신이 약속을 까맣게 잊었거나 어떤 사정으로 만나기로 한 시간에 당신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의 인연은 그렇게 우연하다. 그럼에도 같은 책을 함께 나누어 가지려는 마음은 당신과 어떤 세계를 공유하고 당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사랑하며 미래를 계획하려는 간절한 노력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2.

  시인 진은영의 새로운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었다. 포장을 뜯고 시집을 펼쳐 시인의 말을 읽는 순간 나는 왜 이 시집을 당신과 함께 읽으려고 했는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렸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2022년 8월 

진은영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언제나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불행의 면면과 감각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하여 불행한 사람은 함께 있어도 외롭고 모두가 즐거워도 쓸쓸하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불행만 준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겪은 '한 사람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고 행동하는 사람도 함께 주었다. 시인은 그렇게 슬픈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노력했나 보다. 나는 그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시집은 사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은 당신을 지키고 보호하고 기억하기 위한 일이고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돌보기 위한 일이며 결국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 되게 하기 위한 가장 실천적인 행동이다. 

  시집의 문장들은 사랑을 향해 있다. 그러나 사랑은 나른하게 희생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니라 당신의 아픔을 위해 정확한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사랑은 네가 아플 때 왜 나를 먼저 찾지 않았느냐는 마음이 아니라 네가 아플 때 너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깨어 있으려는 책임이다. 당신의 고통과 함께 있으려는 마음은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3.

  이 시집의 마음에 대해 조금씩 가을 내내 이야기하고 싶지만 오늘은 그중 하나 시집 첫 번째 'Ⅰ. 사랑의 전문가' 앞에 있는 존 버거의 문장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에 있는 문장이다. 

이 소설을 누군가에게 주려다 그만둔 적이 있으나 시집을 읽고 나서는 이제 줄 수 있을 것 같다. 


' 나는 당신에게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을 찾고 있어요'

                                - 존 버거    


4. 

  오늘은 추석이다. 명절이 되면 이성복 시인의 <시에 대한 각서>가 언제나 떠오른다. 시인은 이렇게 썼다. '고독은 명절 다음 날의 적요한 햇빛'. 

  떠들썩한 사랑의 확인도 필요한 시간들이 있겠지만 당신의 '적적하고 고요한 마음'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더 절실한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명절에는 쉽게 판단하지 않고 쉽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당신이 거기에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모처럼 동그란 달처럼 조용히 간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가을의 추석에는 우리에게 고독이 필요하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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