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철원 Aug 21. 2022

시 창작 첫 수업  
'삶에 이름을 붙여주기'

1.

  수업을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떨었다. 오래 수업을 해도 모든 수업은 수업이다. 설렘과 떨림함께 있다. 아이들과 늦여름과 가을, 겨울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종이 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과 내가 수업의 공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우리가 수업의 공기와 분위기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수업에서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카프카의 문장을 읽어주었다.

  "그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그 삶이 우리에게 온다. 그것이 삶이라는 마술의 본질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간다고 해서 삶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나의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무수히 많은 내 삶의 모양과 색깔들에 이름을 정확히 붙여주었을 때 비로소 그것이 내 삶으로 오게 되는 거라고. 우리가 얼마나 다채로운 색깔의 존재인지,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모양의 존재인지 잊지 말라고 했다. 우리의 내면은 결코 얇고 납작하고 뭉툭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이름 붙여주기에 대해 물었다. 아이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나는 너무 당연하다고 했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것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 다만 떠오르지 않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없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여기에 있는데 아직 떠오르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 수업이 끝나기 전에 우리 모두  말할 수 있게 될 거라고도 했다.   


  그래서 시인 김행숙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것을 시에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면서 우리는 새로워진다." 나의 바깥에 절대적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있어서 그걸 머리를 써서 찾아내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내가 확실히 알고 있던 것인데 실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나'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가 된다. 그 시절의 나를 아픔 하나로만 기쁨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슬픈 웃음과 환한 눈물을 이해하게 된다.     


2.

  아이들은 내게 너무 아름다운 말을 쏟아냈는데 따뜻하고 뭉클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대신 아이들이 많이 울어주었다. 그건 슬픔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진짜 이야기여서 그렇다. '진짜'에는 콧날이 시큰해지고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생이 죽는 꿈을 꾸고, 깨어나자마자 동생을 찾고서는 그 앞에서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후 동생을 안아주었던 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폭우로 인한 죽음들, 미래에 대한 불안, 나의 깊고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만 받는 부모님에 대한 아픔, 이전에는 표현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이유, 수업 시간에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의 불편함과 어려움, 비 오는 날 하늘을 올려다보지는 못하니까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을 바라봤던 시간, 처음은 언제나 서투르고 부족하고 부끄러워서 빨리 잊으려고 했는데 이제와 보니 이름을 제대로 붙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아이.......


  이렇게 말하고 나니 아이들이 한 말의 마음과 영혼이 모두 사라져 버려서 미안하고 안타깝다. 아이들의 말에 담긴 표정과 공기를 잘 전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아이들은 미소를 띠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자신의 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 다시 나의 이야기를 덧붙여 돌려주었다. 때로 아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그렇게 해주었다. 진실한 대화란 언제나 이면의 마음이 오고 갈 때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모두 이 수업의 첫 작가이면서 동시에 첫 독자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가장 먼저 말하고 누구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 사람들이라고.      


3.

  나는 아이들에게 십대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유난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많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하여 아득하고 막막한 시간, 그래서 때로 자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간, 게다가 자신이 느낀 것을 실어 나를 적절한 언어를 찾기 어려워 답답해하다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마저 부정해버리는 우리 십대의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 나만 이방인 같은 외로움, 불안한 마음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제대로 똑바로 말하라고 한다. 어물어물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바른 자세로 바르게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침묵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말하고 있으니까. 어른들은 아이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내가 이 말을 하자 어떤 아이가 봄눈처럼 울었다. 나는 왜 우니 하고 물었다. 아이는 내 말에 위로받아서 운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더 묻지 않았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순간에 아이가 어떤 마음을 느꼈을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날 수업이 끝나고 교실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계속 울 것 같았고 교장실로 돌아와서는 결국 오래 울었던 것 같다. 나와 당신과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와 당신과 아이들의 어린 날의 시간들, 그 시절 우리 모두가 너무 아프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4.

  나의 시 창작 첫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목요일 첫 수업 이후 오래 아팠다. 약을 먹고 병원을 다녀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 시인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2학기 수업은 내내 많이 아플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잘 아파보고 싶다.


5.

  무엇보다 당신의 첫 수업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모든 처음들에 사랑과 용기가 깃들길 기원합니다. 하늘 가득한 하이얀 구름, 여름 한낮의 버드나무, 마당 가득한 아이들의 동그란 비눗방울, 저녁의 붉고 따스한 노을, 비 오는 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 물푸레나무가 있는 저녁, 전화기 너머의 풀벌레 소리, 밑줄 그은 책, 옛날의 노래와 오늘의 영화.

  이제 눈물 흘리는 일은 없기를.

  마지막 매미 소리를 따라 여름은 멀리 사라져 갑니다. 머언 나라에서도 편지할게요. 부디 우리 행복해져요. 처음인 듯.


  



작가의 이전글 작별(作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