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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12. 2022

'당신은 맨발로 어디든 갈 수 있다'

1.

  새벽에 깨어 이불을 덮고 오래 앉아 있었다. 가을바람은 차고 풀벌레 소리는 작고 구슬펐다. 짧고 슬픈 꿈을 여러 번 꾸어서 그런가 잔 것 같지가 않고 내내 고단했다. 창밖은 안개인 듯 어둡고 희미했다. 문득 삶이 너무 아득하고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다.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질 때 사랑했던 것들이 모두 부서져 사라졌다고 느낄 때 그럴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불가해한 삶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보는 방법을 당신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

  아침이 밝아오자 안개가 걷히고 아주 작은 햇살들이 땅으로 내려왔다. 햇살을 손에 쥐고 상처받은 이들의 행복과 평화를 오래 기도했다.  


2.

  지난주 목요일 시 창작 수업시간의 주제는 '자유글쓰기의 원칙'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글을 쓸 때 가져야 할 태도 같은 것들이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 쓰며 사는 삶>에서 빌려온 7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손을 계속 움직여라

   2. 억제하지 말라

   3. 구체적으로 써라

   4. 생각하지 말라

   5. 마침표와 철자,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6. 가장 쓸모없는 것에 대해서 마음껏 쓰라.

   7. 급소를 건드려라   


  나는 이 원칙들을 하나씩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고 아이들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는 '디테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것의 디테일에 대해 많이 알게 된다는 뜻이고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언제나 생각과 감정을 직접 말하기보다 그때의 상황과 디테일을 그려 보여주듯이 쓰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레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병원의 경험을 통해 내가 알게 된 디테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이가 만들어 준 레고 케이크, "여름이 올까요?"라고 질문했던 아이, 비눗방울을 만들던 아이들, 청소시간과 점심시간의 풍경, 나는 병원에서는 누구나 무언가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일기 쓰기와 산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는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감히 아픔과 죽음 앞에서 다시 시작과 출발의 마음을 지녀보는 마음일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사람을 살리고 낫게 하일은 최고의 최선의 마음과 행동일 것이다.

  아이들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수업이 끝나자 고요히 책상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아이들의 침묵에 내가 오래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어떤 이야기에는 쉽게 말을 보태기가 어렵다. 나는 아이들이 내 슬픈 이야기에 따뜻한 침묵으로 답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꼈던 그 디테일들에 대해 쓰고 말할 것이다. 아이들이 찾아낼 사소한 사정들과 우리가 함께 공유할 디테일의 목록들에 벌써부터 조금 설렌다. 희망은 이렇게 찾아오기도 한다.


3.

  새벽에 나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넘기기 위해 시를 읽었다. 마침 어제 머리맡에 펼쳐두고 잔 시집이 있었다. 펼쳐진 시의 제목은 <사랑합니다>였고 어제 내가 시의 처음과 마지막에 밑줄을 그어 놓았나 보다.


"내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너는 말했다

남색과 노랑의 대비처럼"



"너는 말했다

아름다운 밤들이 모래처럼 쌓인

사막이 있을 거야


밤이 에나멜 구두처럼 반짝거렸다

맨발로 어디든 -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맨발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다. '내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러니 이제 당신은 맨발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밤들이 모래처럼 쌓인 사막이 있고 밤이 에나멜 구두처럼 반짝거리고' 있으니. 걱정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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