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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13. 2022

당신의 고통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

1.

  시인 진은영은 10년 만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발간에 맞춘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혼의 의미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맹세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즈음에 썼습니다. 사랑은, 완벽한 사랑은 없고 사랑의 태도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존재에 대한 성실한 태도가 사랑인 것 같아요.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하게 그 사랑이 전달되는 경우는 관계에서 쉽지 않은 것 같거든요. 우리는 항상 사랑할 때 정확하게 사랑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험들이 가득한데 그러한 때 그 사람 곁에 있고,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용호의 문학공간] "당신의 등에 풀어놓을 사랑의 민달팽이"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 수업이 결국 사랑의 다른 말들이었다는 걸 여러분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고통과 함께 하는 마음, 사랑을 지속하는 마음,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마음이다. 시인의 말처럼 완벽한 사랑이 없다면 사랑의 태도가 중요할 텐데 그것을 시인은 성실함으로 표현했다. 내가 견뎌야 할 삶의 각양각색의 힘겨움 앞에서도, 내가 너를 정확히 사랑하는데 실패할지라도, 제대로 너를 돕고 있는 것이 맞는지 회의하면서도, 일꾼처럼 농부처럼 성실하게 당신 곁에서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시인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어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긴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에도 나는 변함없이 너의 곁에 있겠다는 마음이 사랑이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사랑은 사랑한 다음 날이 정작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옛날에 어떤 아이가 친구가 힘든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옆에 있기만 하는 자신이 어리석은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야기해주었다. 곁에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곁'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둥과 번개가 쳐도 비바람과 눈보라가 불어도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성실하게 존재하는 일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2.

    시인 진은영은 같은 인터뷰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사는 일이 부서지기 쉬운 소중한 것을 동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금이 간 소중한 것을 안 부서지게 잘 운반하기 위해서는 조심스러운 우편배달부처럼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다 깨져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가 있잖아요. 그때 그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고 부서짐 자체를 거두어주는, 이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아닐까요."

 [조용호의 문학공간] "당신의 등에 풀어놓을 사랑의 민달팽이"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오래 울었다. '부서지기 쉬운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했던 나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우냐고 묻지 않고 그냥 너의 울음을 내가 잘 받겠다는 마음, 우리가 함께 그 무너지고 부서진 마음을 끌어안아보자는 태도, 서둘러 희망과 행복을 말하기보다 제대로 너의 절망을 이해하고 함께 해보려는 마음, 무수한 좌절과 낙담에도 늘 다시 시작하는 각오와 다짐,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는 나의 생각이다.

  내가 바닥에서 당신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더 가질 수 있기를 가을이 오고 있는 밤에 다짐해본다.     


3.

  작년에 어떤 학생이 이런 문자를 보내준 적이 있다. "선생님의 쓸쓸함, 슬픔, 그런 것들이 무한한 사랑에서 오는 게 한 편으로는 가슴 아팠어요."  그 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무한한 사랑이 쓸쓸함과 슬픔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당신의 고통 앞에서 그 고통과 함께 하려는 마음, 고통의 곁에 있으려는 작은 마음은 쓸쓸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거기에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우리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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