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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26. 2022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

1.

  얼마 전 시 창작 수업 시간 글쓰기 주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였다. 오늘 글쓰기 주제는 누구의 마음에 불꽃을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쓰는 아이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2학년 4반에 매달린 풍경이 가을바람에 맑은 소리를 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청아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를 떠올리는 아이 들의 표정이 너무 깊어 뭉클했다. 

  가장 먼저 글을 읽게 된 아이는 첫 문장을 읽자마자 울고 말았다. 아이는 그날의 상처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때 읽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우선 다른 아이들의 글을 읽고 나서 다시 읽어보자고 했다. 수업을 마치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다시 부탁했다. 아이는 읽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날은 생일날이었다. 복도를 지나갈 때 친구가 오늘 생일이니까 맛있는 거 먹어야지 하고 말했으나 아이는 이런 날일수록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엄마가 데리러 왔다. 하지만 엄마는 동생이 먹고 싶어 하는 케이크를 사러 늦은 밤 빵집에 갔다. 아이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늦은 밤의 식탁, 생일 노래도 축하한다는 말도 없이 가족들은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읽고 나서 아이는 아무 말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 너무 서글프게 울어서 나도 따라 눈물이 날뻔했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상처로 오래 남는다.

  엄격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면서도 혼자 몰래 아이가 기대하고 기다리고 소망했을 생일날의 풍경과 마음을 오래 생각했다. 말하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다.    


2. 

  다경이는 채식을 하기로 했다. 채식을 결정하자 난처한 일들이 생겼다. 여러 사람과의 식사자리가 점점 불편해졌고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했다. 다경이의 생일은 마침 최근이었다. 생일날 아침에 다경이의 할머니는 다경이를 위해 고기가 없는 미역국을 끓어주셨다.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말도 너는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는 말도 미역국에는 고기가 들어가야 맛이 난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애틋한 손녀를 위해 말없이 고기 없는 미역국을 끓이셨다. 그리고 손녀는 할머니의 사랑에 울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다 담을 없고,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할머니의 미역국'에는 있었다. 

  시는 당연하고 분명히 그래야 하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다경이의 마음으로 다경이를 바라보셨다. 나는 여기에 시가 있고 시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경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왜 눈물이 글썽였는지. 아이는 다경이의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렇게 어떤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나는 아이들이 펜을 놓고 공책을 덮고 있으면 가만히 바라본다. 그럼 아이가 말한다. "저 다 썼어요." 그럼 나는 이렇게 물어본다.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그때 아이는 순간 멈칫한다. '아!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다.' 나는 아이의 표정과 함께 이렇게 말해준다. "아가야, 이야기에는 끝이 없는 거란다."


3.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일보다 먼저 기억에 남는 식사를 떠올려본다. 따뜻함도 슬픔도, 즐거움도 아픔도, 위로도 쓸쓸함도 함께 있었을 우리의 모든 식사들이 떠오른다. 바람 쌀쌀해진 이른 가을 아침, 따뜻한 밥과 뜨거운 국과 맛있는 반찬을 당신에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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