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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02. 2022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요."

 1.

  목요일과 금요일은 학교 축제 기간이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생기가 넘쳤다. 코로나로 학교에 입학하고서도 5월이 넘어서야 등교하게 된 아이들이 벌써 고3이 되었다. 아이들은 음료나 팝콘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주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도 하고, 뜨거운 햇살 아래서 달고나를 만들기도 하고, 멋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졸업 전에 가을 햇살처럼 축제를 즐기는 아이들을 애틋하고 특별한 마음으로 오래 바라보았다. 문득, 이 아이들과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졸업식은 언제나 슬프지만 나는 특별히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난 후 맞이하는 3월이 훨씬 더 슬프다. 교정의 어딘가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오래 슬픔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10월이 시작되면 졸업식 축사를 미리 쓰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아이들과 헤어질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나는 내 마음 안에 있는 오래된 사랑의 문장들을 떠올려본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다.


"이제 작별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문득, 가장 처음 피는 장미꽃을 바라볼 때, 비 온 뒤 맑게 갠 푸르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릴 때, 돌이킬 수 없는 이별과 가슴 저미는 슬픔, 도무지 헤어 나올 길 없는 절망과 그보다 막막한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실해져야 할 때, 그럴 때, 이곳에서의 한 순간을 떠올린다면 우린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겁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꼭 다시 만납시다. 그때 우리가 각자의 길 위에서 얼마나 사랑하고 분투하며 살아왔는지 이야기해봅시다. 그리고 못다 이룬 우리의 꿈들 그래서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꿈들을 또 같이 시작해봅시다.

  

  눈을 감고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그때 저의 눈앞에는 언제나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주먹으로 눈물을 꾹꾹 찍어내고 일어섭니다. 씩씩하고 슬프게.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2.

  화요일에는 시 창작 수업 시간 첫 시 쓰기를 했다.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문학의 언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자신의 삶과 마음,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설명할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이 수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언제나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기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고통과 낙담, 희망과 행복에 대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기 언어와 목소리를 가질 수 있기를.

  니아 울프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펜으로 자기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게 문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크레파스의 뭉툭함에서 펜의 섬세함으로 가는 경험, 나는 아이들에게 그 예민함을 가르쳐 주고 싶다.

  우리는 다음 주에 함께 쓴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붉어진 얼굴로 화답했다. 오늘은 윤희와 정연의 공동 창작시를 여기에 남긴다. '언젠가는 결국 끝나게 될 음악'이어도 '언젠가는 결국 풀리게 될  실'이어도 우리가 '여름을 닮은 무화과를 베어' 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바느질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나는 당신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릇처럼 화분처럼 가방처럼 운동화처럼 여전히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말을 듣겠다. 오래된 약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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