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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Nov 14. 2022

시에 대해 시처럼 말하기

1.

  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는 시를 쓰고 나면 함께 모여 꼭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시를 쓰는 시간이 고백의 시간이라면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관계의 시간이다. 아이의 마음에서 일어난 작은 불꽃이 시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처음을 함께 하는 일은 언제나 떨리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새로 태어난 시의 첫 독자들이다.


  시혁이는 <죽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에서 죽어서 '아무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제로는 살아있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숨 쉬고 있고 존재하고 있고 향기를 내뿜어 세상을 채우고 있다'라고 썼다. 죽은 것들의 목록은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다리가 묶인 파리/ 나뭇잎 없는 나뭇가지/ 외로운 벤치/ 녹아내린 얼음/ 텅 빈 멜로디/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전에 쓴 것처럼, 이 시에 대해 다경이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밉고 싫고 두려운 모습이 시혁이의 시 안에서는 존재해도 될 것 같아서 괜찮았다고. 그래서 시혁이의 시에 자신은 계속 다경이의 무엇이라고 이어쓰기를 했다고. 내 삶의 목록이 쓸모없고 하찮은 것이 아니므로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도 괜찮은 거라고 다경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윤희는 지난 글쓰기에 썼던 '생일의 슬펐던 마음'이 아이들의 시로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시는 많은 일을 하지만 때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뜻밖의 문장에서 삶의 괴로움과 슬픔이 덜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날 윤희의 들뜬 목소리와 몸짓을 기억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윤희의 외롭고 쓸쓸했던 생일은 이제 외로움과 쓸쓸함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시로 위로받았던 새로운 경험이 덧붙여졌다. 슬픔의 옆에 따뜻한 위로와 치유가 놓였다.

  윤희는 일기장에 이렇게 써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생일은 슬펐지만 나는 아이들의 시로 따뜻하게 위로받았다. 나는 슬픔도 있지만 행복도 있는 사람이다.'


2.

  연우는 '나의 단어로 시 쓰기'에서 시를 세 편이나 썼다. 아이들은 연우의 시에 오래 머물렀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날 연우는 가장 부끄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자신이 쓴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느낌을 기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우리에겐 지금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 연우의 시에는 연우가 있었는데 가령, 이런 대목이었다.


  그 사람의 마음에도 먹구름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뒤/ 나는 그 먹구름에게서 비가 내리면/ 기꺼이 우산이 되어주겠다고/ 그 후엔 웅덩이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비가 언제 올지 몰라 우산을 펼친다/ 하늘은 맑다/ 우산을 뚫고 태양빛이 내게로 들어온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언제 내릴지 몰라서 미리 우산을 펼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것은 '기꺼이 우산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한' 사람의 마음이리라. 너무 늦지 않으려는 마음, 언제나 먼저 미리 가 있으려는 마음, 너의 고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약속처럼 하겠다는 마음이리라.


3.

  지금도 나는 삶이 허무하고 쓸쓸할 때 아이들이 썼던 시를 꺼내어 읽어본다.

  '나이제네눈동자색깔말할수있지' 라고 띄어쓰기 없이 단호하게 너의 눈동자의 색깔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고백을 쓴 가은이의 시를 읽는다. '갓 익어가기 시작한 방울토마토처럼 웃는다'라고 쓰면서 그 '입꼬리에 방울방울 걸린 미소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쓴 다경이의 시를 읽는다. '무대에 비친 작은 불빛 하나 그 불빛을 사랑하고', '온몸을 봉숭아로 붉게 물들일 수 있는' 배우 연우의 시를 읽는다.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문장,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해 줄 문장, 자신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해 준 문장을 찾는 일이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생의 비밀에 대해서 말해버린 문장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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