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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Nov 15. 2022

사랑의 말과 글

1.

  글을 쓴다는 것과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치다 타츠루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글쓰기와 사랑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는 ‘당치 않게 새로운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독자에게 언어가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바람의 강도가 언어 표현의 창조를 추동합니다.


  언어의 창조성은 독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그 간청의 강도로부터 나온다는 우치다 타츠루의 생각은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너무 당연하여 상투적이고 고지식하며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지는 이 문장이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실상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이며 어려운 실천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는 이 책에서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곤란한 자유』를 읽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책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내 말을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저자의 뜨거운 마음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해지는 언어'이다.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은 '언어의 내용이 아니라 언어를 전하고 싶은 열의'라는 뜻이다. 또한 이 말은 사회학자인 엄기호가 말한 상대방에게 '들릴 만한 말로 바꾸어 내는' 언어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언어'와 '들릴 말한 말' 모두,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서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태도이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새롭고 창의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간절히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새롭고 창의적인 표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또한 사랑의 마음이기도 하다. 누워서는 보낼 수 없는 문자, 몇 번씩이나 문장을 지우고 바꾸며 새로 고쳐 썼던 어떤 밤의 편지, 오래 가다듬었던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고백의 말,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사랑의 말이다.    


2.

  나는 글쓰기와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를 마치며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순간, 절실하게 마음을 전하고자 했던 경험, 그래서 새롭고 다양한 표현을 시도해보고 여러 번 문장을 고치고 바꾸었던 순간에 대해 질문했다. 그날은 노랗고 붉은 나뭇잎이 교실 창밖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 하늘을 떠도는 나뭇잎을 우리 모두 오래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지금 내가 가장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은 아픈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의 슬픔과 고통, 희망과 행복을 위해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디, 내가 마음을 다할 수 있고, 간절하고 절실할 수 있기를. 하여, 내게서 사랑의 언어가 태어날 수 있기를.


  수업 종이 치고 다음 수업을 기약하며 아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생각했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3.

  정겸이가 편지를 주었다. 단정하고 정갈한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몇 주 전, 하늘에 별이 많이 떠있다며 늦은 밤 연락을 드렸었죠. 선생님이 별을 보지 못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저는 그냥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걸요. 선생님은 제가 아는 모든 예쁘고 소중한 것들과 연결될 사람이에요. 그 모습을 오래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어요.


  정겸이는 '나아진 것 없는 글솜씨로 편지를 쓰는 일은 역시나 부끄럽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다음 문장에 이렇게 썼다. '그렇지만, 선생님, 오늘만큼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으로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어요.'

  그 '오늘만큼은'과 '최선의 마음'이 전해준 사랑의 언어를 마음 깊이 고맙고 따뜻하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랑 그대로 혼자 울고 있는 정겸이에게 나도 전해주고 싶다. 따뜻함을 전해요. 정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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