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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Dec 04. 2022

당신에게 희망을.

1.

  작가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글이 진척되지 않을 때마다 파리의 지붕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하지 마, 너는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헤밍웨이는 우리가 읽었거나 들었던 진실한 문장은 반드시 있기 때문에 그 문장을 시작으로 그다음, 그다음을 써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수업 시간에 이 글을 읽어주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문장의 목록들에 대해서. 언제나 아이들과 나는 오래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헤밍웨이의 말처럼 진실한 문장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하고 아름다웠던 순간과 사람과 경험을 가지고 내일과 그다음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름다움은 짧지만 긴 시간의 고통과 불행을 이기는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이 아픈 이후로 나는 진실한 문장을 말하고 쓰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당신의 치유와 행복을 위해 분투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면 뭉클해진다. 나에게는 가장 진실한 순간들이었으므로.

  어제 당신의 쓸쓸하고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짧게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눈부신 겨울 햇살을 바라보며 또 짧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의 희망과 행복이 당신의 우울과 불안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2.

  지난 목요일에 아이들은 백지 위에 시를 썼다. 시를 쓰는 어떤 특별한 방법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우리는 다만, 송경동의 시 <말더듬이>를 읽었고 특별히 '세상엔 말하지 못한 슬픔들이/ 오지 않은 말들이 더 많다는 걸 배웠다'는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직'이라는 말은 언제나 '언젠가'를 품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오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아서 '언젠가'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기다리게 되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아이가 커튼 사이로 들어온 겨울의 노란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혼잣말하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당신의 '언젠가'를 오래 생각했다.


  백지위에 굵은 글씨로 다경이는 이렇게 시를 썼다.      


상사병


우리는

사랑해서 죽고

사랑해서 죽지 못한다.


너에게 상처주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

사랑하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켜내고 싶다.

나의 세상을, 계속 사랑으로만 채우고 싶다.


너와 약속했던 영원을 잊을 수 없다.

사랑하는 내가 방울방울 피어오르길 바란다.

나의 세상을, 계속 사랑으로만 채우고 싶다.


우리는

사랑해서 죽고

사랑해서 죽지 못한다.    


  다경이는 시를 낭송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울었는데, 아이의 눈동자에 맺히는 붉은 눈물방울을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더 아름다워지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다. 아이의 아름다움과 진심을 지켜주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다경이의 시에는 미사여구나 비유나 상징이 없었다. 시는 간결하고 정직했으며 단호하고 씩씩했다. 다경이는 삶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결국 삶과 죽음 모두 공통적으로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랑해서 죽고 사랑해서 산다'라고 다경이는 시에 썼다. 사랑하는 나를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사랑으로 계속 자신을 채우고 싶은, 그래서 사랑하는 자기 자신이 방울방울 피어오르길 소망하는 이 작은 아이의 부서질 것 같은 희망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나도 따라 간절하고 절실하게 기도했다. 실패와 패배의 비정한 순간에도 이 아이의 꿈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수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며 내내 당신을 생각했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수업시간에 어린 당신을 향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여덟 살의 당신을 위해, 그 시절의 당신의 상처와 고통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 위해, "아가야,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네가 너를 아프게 하지 말아라. 너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렴."이라고 말하기 위해.      


3.

  당신에게 진실한 문장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나날들이다. 좀처럼 낫지 않는 병에 대해 당신은 '실망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겠다'라고 말했다. 친구들과의 따뜻한 만남 후에 갑자기 찾아온 깊은 우울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픈 것에 대해 당신은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전할 말을 생각하고 있다.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은 언제나 '언젠가'를 품고 있으니까. 어쩌면 '아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원'일 수 있지 않을까? 끝나지 않는 다정하고 따뜻하고 씩씩하고 강한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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