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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an 03. 2023

변하지 않는 마음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1.

  그럴 때가 있다. 휴지를 버리러 고개를 숙였는데 몸속의 눈물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흘러내릴 때가 있다. 이를 닦다 바라본 그날의 고단하고 남루한 표정을 지우려 고개를 젓다가 또 마음에 담아둔 눈물이 흘러내릴 때도 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이불을 몸에 두르고 겨울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행복해지고 싶다.

 

2.  

  중3 아이들 몇 명이 찾아왔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다'라고 했다. 한 아이는 적응하기 어려웠던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와서도 힘들었는데 한 친구 때문에 외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울었다. 다른 아이는 걱정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제 그 아이의 안부를 묻고 곁에 있어주지도 못해서 '예쁜 말'을 해주지 못하게 되어서 슬프다고 내내 울었다. 아이의 더할 나위 없이 예쁜 마음에 마음이 아팠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을 유일하게 좋아해 주었던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파 우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교장실에 있는 휴지를 모두 쓰고 여전히 글썽이는 눈동자를 하고 돌아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별은 너무 슬프고, 헤아릴 수 없는 상실감을 불러오지만 우리가 이별 앞에서 이렇게 아픈 것은 우리의 만남이 '진짜'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서로의 곁에 있어주었고 힘든 표정을 살폈으며 밥은 먹었는지 안부를 물어주고 혼자 있을 때 말없이 옆에 앉아주었으며 아픈 곳은 없는지 챙겨주었다. 진실한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그날, 이별의 슬픔 옆에 만남의 아름다움과 진심을 작게 놓아두었다.  


3.

  술을 마신 아이들과 사실을 확인하고 문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술을 마셨는데 마트에서 맥주를 산적도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혹시 그 마트가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는지 물었고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이것은 생존의 문제란다. 생존은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란다. 마트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분들에게는 하루 장사가 살아가고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일 거야"

  나는 아이들에게 학교의 룰과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자기 자신에게도 또 우리 공동체에도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보호받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서로를 지켜주는 일은 그래서 소중한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더 아름다운 가치를 위해서 우리는 내가 겪는 손해와 불편함을 이해하고 어떤 욕구와 이익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이 말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4.

  시인 고명재의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읽고 있다. 노란 개나리꽃 색깔의 표지를 열면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혀 있다.


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풀 한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과연 그런 것인가? 작년 12월은 그 '풀 한포기'에 대한 회의와 환멸의 시간이었다. 시의 시간에서는 사랑과 마음과 진리가 가능하겠지만 삶의 시간에서는 정말 그것들이 가능이나 한 것인가?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쓰기도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있는 거란다'가 세 번 반복되는 시인의 말을 오래 읽으며 나는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절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멀리 있는 당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때 나는 그 '풀 한포기'가 되어 주기 위해서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희망의 증거가 되어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당신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의 모든 발걸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5.

  시집을 읽는 눈동자와 휘몰아치는 마음의 분란, 몸의 고통이 함께 있어서 이 시집은 이제 62쪽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62쪽의 <몸무게>라는 시의 넷째 연과 다섯째 연을 계속 반복해 읽고 있다. 왜 그러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모르겠다.


그렇게 늘 오는 것이고 싶었다

풀을 밟고

오는

육중한 것이고 싶었다


그게 불안일지라도 비참해져도

이탈을 모른 채

너에게 정직한 땀을 뻘뻘 흘리며

네 턱에 닿는 눈빛만으로 여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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