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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Feb 14. 2023

절망(絕望)

1. 

  졸업식에 오지 않겠다는 아이를 설득하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아직 학교에는 희망이"까지 말했는데 아이는 내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학교에는 희망이 없어요."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나도 학교의 희망을 말하면서 동시에 언제나 절망을 품고 있었으니까. 아이는 절망하고 있었다. 

  절망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마침내 선택하는 것이다. 아이는 졸업식에 오지 않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으리라. 그날 아이와 전화를 끊고 나는 나의 절망에 대해서 생각했다. 도저히 어떤 것도 기대하고 꿈꿀 수 없으므로 스스로 희망을 끊어내 버렸던 일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2. 

  딸아이가 앓고 있는 병을 교사들에게 전했다.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와 삶과 존재의 위기를 전하고 싶었다. 고통은 반드시 구체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함께 전했다. 교육의 영역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이들의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시급히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간절히 마음을 전했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내가 밥을 잘 먹지 않으니 아이도 밥을 먹지 않는 병에 걸린 거라고. 나는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는데 겉으로는 웃으며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했다. 


3. 

  농촌봉사활동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코로나로 몇 년 동안 가질 못했고 농활지의 상황이 안 좋아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했다. 3시간 가까이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우리는 결론을 맺지 못했다. 비평가는 많았으나 작가는 없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무수한 말들이 넘쳐났다. 그 순간 학교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 아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래, 이 절망의 순간들과 함께 이곳에서 스무 해를 보냈구나.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다음'을 말해왔다. '그래 방법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날 나는 오래 절망 속에 있었다. 


4. 

  좋은 친구와 연락을 하다 혼자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 방법 없이 삶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혼자라는 마음이 두렵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도 했다. 나는 떨면서 삶의 벼랑에 있었는데 친구는 따뜻한 방에서 평화롭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하지 못한 이야기와 끝내 침묵했던 마음이 있을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여전히 나의 선택 속에 이 사랑스러운 친구를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친구는 절망이 되지는 않았으나 나는 오래 아팠다. 


5.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와 <심장보다 높이>를 쓴 시인 신철규는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상처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증오해야 할 대상은 상처받은 사람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도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타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들이다.

  타인은 언제나 나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나를 타인의 자리에 놓지 않을 때, 타인의 눈빛과 목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때, ‘소통’은 거짓과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결핍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조금씩 버리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구원만큼 타인의 구원도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현실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위대한 거절’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더디게 쓰더라도 그만두지는 않겠다. 시 한 편과 한 편 사이에 열 길 낭떠러지가 있음을 잊지 않겠다.      


  아침의 겨울 햇살을 바라보며 이 글을 오래 읽어본다. 서둘러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천천히 나의 절망과 불행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는 아침이다. 나의 절망이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당신의 절망이 구원받기를 또한 간절히 바라게 되는 아침이기도 하다. 


  '더디게 쓰더라도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시인의 다짐과 '시 한 편과 한 편 사이에 열 길 낭떠러지가 있음을 잊지 않겠다'는 더 굳은 다짐을 나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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