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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abbit Listened

Sl•Mi

by 지개인

In the quiet, Taylor didn't even notice the rabbit. But it moved closer, and closer.

Until Taylor could feel its warm body.


웅크린 채 앉아있는 테일러의 곁으로 다가가 앉는 토끼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저자의 메세지가 토끼를 통해 표현된 것이겠죠. 염려스러운 토끼의 눈빛과 테일러를 향해 쫑끗 세운 두 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모습입니다.


처음 테일러를 지켜볼 때와는 달리, 곁에 가서는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게 꼭 붙어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앉아있으려고 다가간 토끼의 한발 한발에는 꼭 그만큼의 배려가 묻어 있었겠죠.


아무말이나 하지 않고,

과장된 몸짓으로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우스개 소리로 잊으려 하지 않고,

없던 일인 척 하지 않고,

정리해서 지우려 하지 않고,

나의 괴로움으로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아도


토끼로 인해 테일러는 위로를 받습니다.


토끼는 섣불른 공감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 방식으로 해결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다려주었습니다.

테일러의 울퉁불퉁했을 마음이 천천히 무뎌지기를.

비록 서툴고 오래 걸릴지라도, 테일러의 방식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을 지켜봐주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떠나지 않고, 지친 테일러의 곁에 남아주었습니다.


토끼가 한 건 어쩌면 '가만히' 있어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쉬운 일을 우린 왜 해내지 못하는 걸까요.


결국 시간은 흐를테고 그 속에서 견뎌야 할 이도, 극복해야할 이도 '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설프기만 한 도움을 쉬이 거두지 못합니다. 멋대로 넘겨짚은 마음과 어줍짢은 조언은 오히려 혼란만 더해 줄 뿐인데도 말이죠.


가민히 듣고 싶다는 건 그만큼 알고 싶다는 것이고,

곁에 있는다는 건 이해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걸로 충분하겠지요.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누군가를 진정 위로하고 싶다면,

나의 기분보다 늘 '너의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하겠지요.


테일러를 감싸안은 토끼의 두 팔에서,

질끈 감은 두 눈 에서,

가민히 체온을 나누는 기댐에서,

'공감'과 '위로'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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