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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

by 지개인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은 담담했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것만이 순리라는 듯이.

아직 막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가끔 되바라지고, 깜찍할 정도의 발칙함을 지녔던 그 시절의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 또한 나를 예뻐 여겼다.

온 가족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택시에서 설핏 잠이 들었나보다. ‘이제 다왔다. 내리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괜히 자는 척을 하고 싶었다. 거짓으로 잠든 나를 거뜬히 들쳐 업는 그의 등이 넓어서 좋았고, 그리고 따뜻했다. 나와 동생을 매달고 빙그르르 돌리던 그의 두 팔은 내 엉덩이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분명 내가 잠들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도 그는 업고 가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내려놓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내 행복감을 더해줄 뿐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배운 것이 많아지는 만큼 그를 멀리했다.

그의 외출에 맞춘 전후의 의례적인 인사를 제외하면 딱히 우리 사이에 대화랄 게 거의 없었다. 대화가 없어지는 만큼 생략되어도 좋을 낱말들이 늘어갔다. ‘어떻게’, ‘얼마나’, ‘왜’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명사로 이루어진 질문은 간단했고 그 간결함은 나를 노력하지 않게 했다.

‘밥 먹었나?’, ‘응’. ‘학교 잘 갔다왔고?’, ‘응’. ‘별일 없고?’, ‘응’.

가끔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를 아주 좋아했다고.

그리고 자주 원망했다.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그날 알게 되었다. 서로에게 데면데면했던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녹아있었다는 것을. 가슴을 죄어오던 웨딩드레스의 압박감, 분주하던 예식장의 공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어색한 축하,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버진로드 위에 섰다. 서로의 손을 잡고서.

그제야 붙잡고 싶었다. 나의 아빠를 놓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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