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망 (3)

행복 (자본)

by sally

넌 행복하니?




"아니, 적어도 내 인생에서 그렇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내가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잖아 현재 내 형편으로선."

그녀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카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에 오던 눈이 금세 나무 위로 소복하게 쌓였다.



"생각해 봐. 엄마는 시각장애인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고, 아버지는 작은 회사 만년 부장으로 퇴임하자마자 친구 빚보증에 집까지 날렸어. 그마저도 산다는 게 비참한 건 아버지가 최근 대장암 수술하셨는데 장루 차고 경비일을 하신다는 거야. 그리고 아래 여동생은 얼마 전 이혼해서 3개월 된 아기를 안고 돌아왔잖아. 작년에 대학 졸업한 막내 남동생은 방구석에서 온종일 게임만 하고 있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편의점 야간일하면서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게 다야. 다섯 식구가 지금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거잖아. 우린 15평 임대아파트에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어. 너가 보기에 내가 행복하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니?"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어렴풋한 사물의 경계만 보이는 것처럼, 또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추상적이거나 신비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시야에 있어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잡고만 싶다. 하지만 손에 쥔 것은 푸석거리는 지푸라기였다.



지난날, 나는 인생의 행복이란 것을 찾으러 사막을 걸어 횡단하는 것처럼 방황한 적이 있었다. 물론 깨알글씨처럼 수많은 글로 이론상 행복을 찾아 나서기도 했으나 결국 서랍 속에만 놓고 아직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자신 있게 "이것이 사람의 행복이란 것이다."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내게 있어서 존재론적 행복은 미지수처럼 그 값을 알 수 없는 것이고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는(허무맹랑한), 이 땅에서 유한한 존재가 바라볼 수 없는 너무 멀고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개념일지 모르겠다.(마치 신의 낙원처럼)



나는 오래전 우스꽝스러운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어느 산속에서 나의 시선은 땅 속을 향해,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손은 단단한 땅을 향해 파헤치고 있었다. 땅 속에는 거대한 황금덩어리가 파도파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손에는 피가 나도 아프지 않았고 눈빛은 오직 황금덩어리를 향한 욕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뒤에 또 다른 내가 서서 욕망의 거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엉덩이 뒤로 쌓아둔 것은 황금덩어리가 아닌, 오물 같은 쓰레기가 탑을 쌓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꿈에 보았던 황금덩어리는 곧 물질론적 행복(자본)을 의미했고, 욕망에 의해 쌓아 둔 행복은 결국 손에 잡히지 않았던 신기루 같은 허상이었다. 꿈을 깨고 났을 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현실에 반한 나의 꿈은, 이루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대한 만찬의 욕망이었다. 소유할 수 없었기에 유한한 존재는 욕망에 심한 갈증을 느낀다.



몇 해 전 말기암 환자셨던 나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간병할 때, 자식들은 올 때마다 미안한 마음의 표현으로 어머니 지갑에 두둑하게 5만 원 신권으로 항상 채워놓았다. 어머니는 와상 환자로 안방 환자 침대에만 누워 티브 보시는 게 유일한 낙이셨다. 그중 가장 즐겨보셨던 것은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그 이유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에만 필요한 소식(小食)을 해야 했던 어머니에게는 보는 것만으로 대리만족을 하셔야 했다. 지갑에 들어있던 돈은, 어머니에겐 쓸모없는 종이조각에 나열된 숫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내 어머니에게는 명품옷도, 이 세상 최고의 만찬도 아닌, 단지 환자복과 미음 정도가 필요한 전부였다.





겨울 햇살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따스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땅에서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서랍 속에서 꺼내어 되새겨본다. 행복이란, 나 스스로를 학대하며 사랑하는 사람조차 힘들게 했던 욕망의 소유물이었을까. 그러한 것들이 과연 나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들이었을까.


행복은 꿈속에서 거친 땅을 파헤치며 나오는 황금덩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사람의 행복은 사람의 시선에서 보이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존재는 사라지면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떠나는 그들은 슬픔을 미리 예고조차 하지 않은 채, 우리가 눈물을 준비하기도 전에 사라진다. 생에 대한 이별은 그렇게 황망하게 다가온다.


내 어머니가 천상으로 가시던 날, 나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땅에 묻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에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사라지면 아무것도 할 없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손 한 번 더 잡아드리고 싶었고, 어머니의 그리운 눈빛을 한 번 더 마주치고 싶었고,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셨던 말씀도 한 번 더 들어드리고 싶었고, 얼굴에 주름을 펼치며 살아오신 한 맺힌 인생이야기를 한 번 더 귀 기울일 것을, 존재가 부재하니 그립고 그리운 것들이 차갑고 시린 이 겨울 날씨에 마음이 베이는 것처럼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서 창을 뚫고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을 바라본다.(세상에서 눈을 뜨는 것조차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본다는 것도, 유한한 존재가 햇살을 바라보는 것처럼 기적같은 일이고 눈부신 일이다.)

그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동네 앞 거리의 풍경, 흔한 산책길, 별 거 없는 일상조차 영원하지 않다. 사라질 것들(꿈에 본 황금덩어리)에 목숨을 다하여 지켜내려 한 사이,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간다는 것을, 유한한 존재인 나는 어리석게도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후회했다.


나는 오늘이란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원한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 살아갈 이유, 유한한 존재가 움직이며 찾아갈 마지막 행복이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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