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남자를 보았을 땐 나는 무관심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슬픔의 시선은 온통 그 남자에게로 향했다.
말쑥한 옷차림(대체로 크림색 니트에 감색 면바지)을 하고 있던 그 남자는 비교적 큰 키에(185센티미터 정도) 얼굴은 계란형에 가까웠지만 약간 그보다는 길었고 그의 짙은 눈썹은 조금 먼 거리서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까맣고 굵었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 남자의 오므라진 입술은 얇았고 약간의 날카로운 콧날은 단정하지만 생을 향한 고독함이 숨겨져 있었다.
느티나무가 노란 가을색으로 물들 때 나는 그 남자를 전철역 입구에서 보았다. 그의 발 옆에는 카트에 회색 가방이 항상 놓여져 있었고 그 남자는 그곳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물건을 들고 무언가 애원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매번 지나쳤다.
퇴근 무렵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하자 나는 우산을 펼쳐 들고 전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그 남자는 행인들 틈에서 비를 맞으며 가방에 물건들을 넣고 있었다. 그의 가방 안에는 무릎보호대나 마스크 같은 생활용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행인들에게 물건들을 하나씩 설명해 가며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하자 작은 카트를 끌며 내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움직임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생각지 못한 그의 걸음걸이에 적잖이 나는 충격을 받았다. 왼쪽발이 허공에 떠 있는 그는 매우 심할 정도로 다리를 절었다. 그는 왼쪽 다리를 "ㄴ" 자처럼 접고 무릎이 거의 땅에 닿아야 오른쪽 발을 한 걸음 뗄 수 있었다.(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식으로 해야 겨우 한 걸음을 걸었다. 담벼락이 있었다면 왼쪽 발을 구부릴 땐 그의 얼굴이 안 보이고 오른쪽 발을 뗄 때는 얼굴이 보일 것이다.)
그가 성한 오른발을 움직일 땐 그의 키가 유난히 더 커 보였다. 그의 등 뒤 모습은 마치 사막에 홀로 있는 슬픈 사슴을 연상케 했다.
나는 그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을 때 거대한 생의 슬픔을 동반한 파도가 밀려왔다. 신은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을지라도 생명에 대한 예의에 나 스스로 비참해짐을 느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인생의 참담함에 어찌할 수 없는 회한의 눈물이 심장에 흘러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풀지 못한 숙제처럼 고민해 온 나는 여전히 사람을 향한 예의에 대해 신에게 항상 반문해 왔다. 지면에 펼친 그의 진리에 대한 논리를 떠나서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해 봄날의 싱그러운 새순을, 봄꽃의 설레는 마음을, 그렇게 내 안에 담으며 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는 눈물이었고, 이른 아침에 눈부시게 다가오는 봄햇살 같은 설렘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내가 그의 삶과 바꾸려고 산신령이 나타나 그가 가진 (금도끼가 아닌) 흙도끼를 나에게 줄 거라는 가정법을 생각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거절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그의 등 뒤에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의 파도만을 맞닥뜨리는 이 쓸데없는 인간이라는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른 무렵에 나는 분당에 있는 모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환우분들은 나의 애절한 기도와 소망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만남에서 최대 3주를 넘기지 못하시고 천상으로 떠나셨다. 그들의 숭고한 생명 앞에 나의 기도와 소망은 무색하리만큼 신에게 거절당했다. (그래) 난 어찌할 수 없는 눈물만 흘리며 넋 놓고 죽음의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하였던 (1.0 정도의 앞만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진) 유한한 존재였다. 삶의 원천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다섯 형제가 있다. 홀로 사색적이었던 나와는 달리 나의 형제들은 꽤나 유쾌했다. 그럼에도 우리 형제들이 큰오빠를 바라보는 시선엔 항상 미안하고 애절한 생의 슬픔을 담았는데, 그 이유는 큰오빠가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3년 전 지병과 함께 코로나로 천상으로 가셨던 내 어머니의 임종면회 때, 나는 큰오빠를 바라보던 이 세상 가장 슬픈 어미의 눈을 그날 보았다. 어머니는 끝내 큰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조차 못하시고 애절한 눈물만 흘리시며 마지막 눈을 감으셨다.
나는 이 땅에 슬픔을 그대로 묻어두고 싶지 않다. (큰오빠의 등 뒤에서, 그 남자의 등 뒤에서 넘어질까봐 어찌할 줄 모르는 그 슬픔들을 말이다. 어쩌면 그들 생의 아픔에 비해 난 이 글조차 감정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다만 사랑, 그 하나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고 싶다. 오롯이 사람이 짊어지고 갈 삶과 죽음의 유한한 것들 일지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안을 수 있는 사랑, 그 하나만을 남겨 두고 싶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눈물, 생명에 대한 예의, 신록의 오월처럼 그렇게 싱그러운 생명에 대해 숭고한 사랑을 내 마음 안에 품고 살아가길 원한다.
신이 먼저 사랑하라는 명령어가 아니라 참다운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유한한 눈물의 존재로서, 나는 거룩하고 존엄한 생명 앞에, 그 남자의 발아래 주저앉아 소망의 닻을 올릴 것이다. 그 남자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봄햇살 같은 마음이 그를 향하여 유한한 존재의 숭고한 눈물의 의미를 전달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럼으로써 나는 신에 항거하던 생과 죽음에 대한 반문을 스스로 그 남자의 등 뒤에서 해답을 얻어낼 것이다. 이 땅에 오롯이 하나 남겨둘 사랑, 이른 봄 홍매화 꽃봉오리 같은 우리의 인생에 모두 평등하게 쏟아지는 햇살처럼, 그 눈부신 흔적으로서의 의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