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옛적에

by sally

아주 오랜 옛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어여쁜 소녀가 있었어. 그녀는 긴 생머리에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항상 내게 다가왔었어. 하루 종일 일을 할 때도 거의 말이 없었더랬지. 난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했어. 가끔 그녀는 마른 입술을 열며 짧은 미소로 내게 답해줬어.


어느 날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어.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어. 그녀의 동생이었어. 그리고 며칠 후 그녀의 부모님이 슬픈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어.

우리 아이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갔어요. 어여쁜 미소를 마지막으로 남기고요.

그녀가 내게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은 사무실 열쇠였어.



난 가끔 봄날, 나비를 보면 수줍게 미소를 지었던 그 소녀가 생각나. 삶이 너무 슬퍼 나비가 되었던 소녀를 말이야. 화창한 봄날 길을 가다가 그녀의 나비를 보았을 때, 난 가만 풀밭에 쭈그리고 앉아 그리운 표정으로 그 소녀를 바라보아. 그녀는 풀꽃 사이를 몇 번 선회하다가 이내 곧 높고 높은 봄 하늘로 날아가버려.


나는 봄날이 되면 그 아이를 그렇게 가끔씩 만나고 있어. 아주 오랜 옛날, 수줍게 나에게 미소를 지었던 그 소녀를 말이지. 그 소녀를 위한 눈물이 아직 내 안에 가득 고여있긴 하지만 난 울진 않아. 그건 그 아이가 봄날이 되면 가끔 내 곁에 가벼운 나비가 되어 날아오기 때문이야.


살아간다는 것은 가끔 나비가 되어야 할 것처럼 꽤나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봄날 풀밭에 앉아, 지고 말아야 할 꽃을 바라볼 때면 충분한 그리움의 시선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영원하지 않기에 마지막 이별처럼 애절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곧 우리네 인생이란 거야.



오월 잔바람에 흔들리는 토끼풀꽃 사이를 선회하는 나비를 볼 때면, 삶이란 참으로 아련하면서도 아름다운 거라 생각해. 슬픔 속에 아름답고 그리운 것들이 우리 삶에 무던히 여린 토끼풀처럼 그 생명이 흔들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생명에 대한 그리움으로 늘 살고 싶은 거야. 그런 그리움이란 아주 오랜 옛날 옛적, 나비가 되어버린 그 소녀에 대한 애절한 슬픔의 시작으로부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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