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은 우리 집 마당에 서서 그리운 것들을 바라본다.
정오의 햇살이 화사하게 비추던 날에,
대문 밖 낮은 담장 너머로 봄빛에 반짝이는 대추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너풀거린다.
파란색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화단에 풀꽃들과 그 사이사이 상추와 여린 채소잎들이 꼬물꼬물 자라나있다. 대문 왼쪽으로는 담장을 둘러끼고 작은 소나무와 대추나무, 라일락 나무가 있고 그 아래 수돗가 대야엔 라일락 연분홍 꽃잎이 물 위를 동동 떠다니며 수를 놓고 있다.
봄이 연둣빛 얼굴을 하고선 파란색 철제 대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문이 닫힐세라 설렘은 연분홍 꽃잎을 물고 바싹 뒤쫓아 들어간다. 한줄기 바람이 마당 한가운데를 휘저으면 라일락 꽃향기는 온 동네에 물결치듯 골목길을 휘감고 그리운 이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웠어, 옛 기억이 그리웠다고, 사무친 그리움이 손을 잡고 이마를 맞대니 라일락 꽃향기가 가슴속 애절함을 다시 불러 일으킨다.
4월이 오면은 그랬다.
열아홉 살 볼을 연분홍빛에 물들이며 라일락 꽃향기를 품었다.
이제는 그리운 내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련한 기억들만 남았을지라도 4월이 오면 라일락 꽃향기가 내 가슴 눈물꽃처럼 그 마당에 애절하게 피어오른다.
연신내 전철역에 내려 3분 거리에 있었던 우리 집은 마당이 있었던 풍경이 4월이면 향기롭게 펼쳐졌었다.
그것이 봄날 잠시 스쳐 지나갈 사랑처럼 그립고 아득한 것들이었을지라도, 심장의 아련한 움직임은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한계처럼, 사랑을 고백받은 첫 마음 같은 설렘과 함께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달이 품었던 아름다운 빛들을 내 심장 안에 모두 쏟아져 내리게 했던,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심장을 움켜잡아도 멈출 수 없듯 피어나는 라일락꽃의 향연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죽어도 죽을 수 없을 만큼의 황홀한 그리움이 그 땅에서 펼쳐지고 내 生의 때늦은 그리움조차 그 마당 안에서 모두 펼쳐졌다.
4월 라일락 나무에 꽃잎이 잠시 피었다가 지고 만 것처럼, 나의 어머니도 내 사랑을 모두 받아주시지 않은 채 바람결 따라 먼 길을 떠나가셨다.
고등학교 1학년때 경복궁역 근처 학교에 나 혼자 덜렁 배정받아 늘 걱정이 많았던 어머니는 내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연신내역에 도착하는 10시 20분이 되면 역입구에서 환한 미소로 나를 언제나 기다리셨다. 연신내역을 나오자마자 우리 집 마당에 핀 라일락 꽃향기가 내 숨으로 가득 차들어오면, 난 순간 심장이 떨려오면서 무언가에 이끌리듯 하나의 거대한 풍경속으로 마법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환상을 일으킨다.
그 기억은 온통 내 生이 향긋한 꽃잎의 물결처럼 가득차 올라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리운 것들이 내 심장 안에 물밀 듯 파도처럼 종종 밀려오곤 한다.
달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골목길 어귀부터 라일락 꽃향기에 취한 어머니와 나는 고운 발로 리듬을 맞춰 꿈속을 거닐 듯 춤을 추었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리운 어머니는 화단을 둘러싼 작은 돌에 앉으시어 달빛이 머문 마당을 바라보시며 시를 나지막하게 읊어주셨다. (시를 즐겨 쓰셨던 어머니는 어릴 적 꿈인 초등학교 선생님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시고 3년 전 내 곁을 떠나셨다.)
봄꽃의 향연이 늦은 밤 그렇게 펼쳐지면 마당 빨랫줄에 널린 가오리가 낮동안 태양의 정열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바싹 타들어 간, 그 단단한 육질의 모습으로 달빛과 어우러진 마당 한가운데의 풍경은 그리움의 절정을 봄날의 수채화처럼, 달빛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은은하게 그려냈다.
이제 풍경이 있는 마당은 어머니와 함께 사라졌지만 라일락 꽃향기와 달빛이 조화롭게 그려냈던 마당이 있던 그리운 풍경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 내 심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봄꽃처럼 설레는 것들을 쫓으며 따라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