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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구원하소서

by 영원

1. 엄마, 괜찮아. 살거야.


2021년 8월 말.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아빠가 재발암으로 돌아가신지 3년 5개월 만이다.

그 전까지 엄마가 유난한 가슴 통증을 느끼고, 동네 영상의학과에서 6개월 단위로 사진을 찍고, 6개월 전만해도 지방이 뭉친거라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통증을 참아내고 그래서도 안돼, 다시 사진을 찍었을 때, "왜 이렇게 빨리 (암이)발전했지?"라는 무책임한 말에 무너지고... 당뇨때문에 주치의 병원처럼 다니던 병원에서 어떡하냐며 울고, 놀란 의사가 지역 대학병원 아는 의사에게 엄마를 부탁해 조직검사를 받을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겨우 알게 된 때는 조직검사 결과일인 그 해 8월 말. 엄마는 대기실에서 "뭐가 됐든 암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간신히 뱉었고, 나는 "뭐가 됐든 괜찮아. 괜찮을거야"라는 영혼이 빠져버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 치고는 어려보였던 의사는 "결과가 좀 안 좋아요. 유방암인데, 2기에서 3기로 가는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층에서 층으로 연결된 건물과 건물을 오가며 추가된 검사 경로를 표기한 종이 하나 든 채, 다른 한 손은 그 사이 환자가 되어 버린, 얼빠진 엄마의 손을 잡고 검사 순서를 하나씩 통과했다. 가던 길에서, 보였던 혈액종양학과 앞에서 잠시 멈췄는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픈 아빠와 함께 다녔던 그 익숙한 공간 앞에서 엄마가 잠시 섰다. "여기가 아빠랑 늘 다녔던 곳이야."


약 두어 시간 암 판정을 받는 엄마의 보호자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나는 그 지점에서 처음 무너졌다. 이런 시간을 둘 만 견디게 한 것, 죽음을 등진 병을 둘 만 감당하면서 이 길을 걷게 한 것...아니 말로 할 수 없고, 차마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마음도 사치스런 그 자리의 시간에 생각했다. "아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했던 후회를 똑같이 하지는 않을게."


엄마는 아빠가 치료받고 또 세상을 떠났던 그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원을 해야 한다면 어디로 할 것인가. 답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병원이어야만 한다가 어니라 자식들 중 유일하게 같이 살며 간병할 수 있는 내가 사는 서울의 어느 병원이어야 했다.


조직검사 단계에서 취소하더라도 예약을 미리 했어야지...안일함에 자책하며 이른바 빅5 병원은 모조리 예약했다. 사실 3곳 정도 진료를 받아 본 다음 치료할 병원을 결정하겠다는 나의 야심차고도 이론적 계획은 당사자인 엄마의 상태에 따라 무산됐고, 가장 먼저 예약이 잡힌 그 병원에서 엄마의 치료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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