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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구원하소서 2

나도, 엄마도 잘 살 수 있을까?

by 영원

내일이면 딱 2년이다. 진단을 받고 전원하기로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날이 21년 9월 2일. 예약했던 모든 병원 중 가장 먼저 일정이 잡힌 C병원. 첫 진단 내용이 오진이길, 병의 기수라도 낮아지길 바랐지만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검토된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삼중음성...예후가 안 좋은데..."라는 이미 알고 있고, 보호자나 환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 한마디를 더 얹었을 뿐이었다. 치료 일정을 잡고 엄마와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8월 말, 엄마가 살던 지역의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엄마는 그 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병원은 아빠가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 그 병원과 엄마의 악연이 있었다. 사실 그보다도 내 입장에서는 전원을 한다면, 내가 있는 서울로 하고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그런 상황이 마련된 것도 어쩌면 행운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조직검사 받은 걸 안 직후부터 예약을 잡았어야지, 뭐 하고 있었냐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을 하며 떨리는 손으로 이른바 빅5병원 예약을 잡았다. 그 전까지 나는 내 집에 엄마의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바로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와 동생이 지내던, 내 서재 겸 창고로 마련했던 방을 모조리 치우고 엄마 침대와 장을 주문하고 배송받고 조립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다.


충격받을 사이도 없었다고 여겼지만 사실 충격을 인식할 수 없었다. 엄마를 살려야 했고, 아빠가 아플 때 엄마와 동생에게만 미뤘던 탓에 짊어졌던 죄책감을 더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 방을 청소하면서 생각했다. "나 괜찮을까, 아니, 우리 괜찮을까."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고 애틋한 모녀였지만 그 사랑이 독이 된 관계. 그걸 알아차리는 데 30여 년이 걸렸고 아직은 나만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던 그 모녀가 매일 함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괜찮을까.


하지만 나는 오래 그 생각에 머물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촘촘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아니 아주 긴박한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닥치고 있었으니까.


암진단을 받자 마자 얼이 빠지고 걸음 조차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아빠가 치료 받던 혈액암센터 앞에서 오래 그곳을 바라보던, 갑자기 쪼그라지고 한없이 약해진 나의 엄마, 그렇게 고통스러운 병을 앓기엔 너무 억울한 내 엄마가 나의 삶에 들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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