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백성의 선교

by 차돌쌤

머리말

「하나님의 선교」: 성경 전체에 대한 선교적 해석학을 주장,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읽는 것이 가능하고 올바른지, 그리고 그렇게 성경을 읽을 때 무슨 이이 일어나는지 묻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성경의 하나님이 구원 및 자신과의 언약 관계로 부르신 이들을 대신해서,

☞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선교는 무엇인가?

→ 신구약에 걸쳐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세상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 주/주님(the Lord 또는 the LORD), 야훼(Yahweh)

서론

교리에 대해:

신학=도서관, 성찰, 논쟁, 가르침, 신조, 신앙고백

선교(선교사역)=행동하는 것, 실제적, 역동적, 결과, 선교 현장

☞ 신학은 선교로부터의 입력과 출력 없이 진행되는 반면, 선교는 신학의 안내나 평가 없이 진행될 위험이 있다.

☞ 선교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신학은 신학이 아니다. 신학적 기초가 없는 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1부 인생최대의 물음

1장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1. 선교인가, 선교 사역인가

하나님 백성의 선교(The Mission of God’s People)

선교(mission) 보다는 선교 사역(missions)이 더 익숙함-교회의 타문화권 선교 사역을 생각나게 한다.

가. 하나님의 보내심

모두 보내고 보냄 받는다.☞선교(mission): 매우 적절함, 매우 성경적임.

무슨 일을 하도록 보냄 받는 것인가?

• 요셉: 처음에는 몰랐으나 기아에 허덕이는 생명들을 구하는 지위에 있도록 보냄 받았다(창45:7).

• 모세: 처음에는 마지못해 했으나, 억압과 착취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도록 보냄 받았다(출3:10).

• 엘리야: 국제 정치의 향배에 영향을 끼치도록 보냄 받았다(왕상19:15~18).

• 예레미야: 하아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보냄 받았다(렘1:7).

• 예수님: 이사야의 말을 인용해,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자유를 전파하며,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억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도록 보냄 받았다고 주장하셨다(눅4:16~19).

• 제자들: 구원하고 치유하는 하나님의 통치 능력을 선포하고 나타내 보이도록 보냄 받았다(마10:5~8).

• 사도: 제자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보냄 받았다(마28:18~20).

• 예수님: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신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이는 많은 흥미로운 질문과 도전을 제기한다(요17:18; 20:21).

• 바울과 바나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제하도록 보냄 받았다(행11:27~30).

• 디도: 신뢰할 만큼 투명하게 재정을 관리 하도록 보냄 받았다(고후8:16~24).

• 아볼로: 교회 양육을 하는 전문적인 성경 교사로 보냄 받았다(행18:27~28).

• 수많은 익명의 형제자매들이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순회 교사로 보냄 받았다(요삼5~8).

나.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 백성의 선교(mission, 사명)는 무엇인가?

☞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이들은 실제로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 도대체 그것은 누구의 선교인가?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 자신이 사명(mission)을 갖고 계신다.

☞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서, 그분의 마음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선교는 세계적인 하나님의 세계적인 백성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해 세상에 선교를 두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교를 위해 교회를 두셨다. 선교가 교회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선교, 곧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다. 단수와 복수

선교(mission)라는 범주 아래에 다양한 선교 사역(missions)을 포함시킬 수 있다.

선교(mission)를 말할 때는 창조세계 전체를 위한 웅대한 목적 아래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일과 그 목적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모든 일을 염두에 둔 것이다.

2. 온 세상

가. 하나님의 선교 목표인 온 세상

나. 우리의 선교 영역인 온 세상

다. 우리의 선교 무대인 온 세상

3. 온 교회

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교회: 오순절에 탄생한 사도행전의 교회를 연상

☞ 성경 전체가 말하는 ‘하나님 백성’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사명(mission)일 가진 백성인지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 우리는 어떤 종류의 백성인가?

☞ 우리의 선교가 좋은 소식을 나누는 것이라면, 우리는 좋은 소식의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 우리가 변화의 복음을 전하려면, 우리는 그 변화가 어떤 것인지 증거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 복음은 단지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에 따르면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다. 우리 선교의 우선순위와 한계는 무엇인가?

예)우편배달부: 우편물 배달, 하수도 고치고, 쓰레기 버리고, 고양이에 먹이 주기

☞ 진짜 일과 부차적인 일

4. 온전한 복음

가. 당신의 복음은 얼마나 큰가?

성경은 아주 일찍부터 하나님을 ‘구속자’로 묘사한다.

나. 다른 이름은 없다.

선교는 충성의 문제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으로 시작하고 끝나야 한다.

☞ 우리는 바로 그분의 선교에 함께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경험으로부터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에 달려 있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의 유일성에서 나오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유일성 안에서 우리에게 최고로 계시되었다.

☞ 우리 선교의 근원이며(자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는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선교의 내용이다.

작성: 2019.7.8.

2장 자신이 속한 이야기를 아는 백성

1. 세계 선교와 성경 이야기

기독교 선교를 주제로 하는 수많은 책(설교)은 대위임령에서 시작한다.

☞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사도행전과 서신서들).

• 마태복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라고 가르치신다.

• 누가복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대와 땅 끝까지 가라고 명령하신다.

• 요한복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신다.

• 사도행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이야기이다.

☞ 세계 선교는 초기 기독교 실천의 제일가며 가장 분명한 모습이다.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 기독교를 맨 처음부터 선교적 신앙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 무엇이 예수님의 처음 추종자들로 하여금 세상에 나가 예수님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용기 있게, 거침없이 말하도록 했는가?

☞ 대위임령에 대한 순종

가. 그 이야기 알기

유대인: 자신이 속한 그 이야기를 알았다.

☞ 성경을 알고, 나사렛 예수 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렀음을 이해했다.

• 베드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서 열방을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가 하고 있는 일이다.

• 야고보: 아모스 9장을 인용하면서, 예언자가 내다본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확언한다.

• 바울: 성경과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 필연적으로 열방에 전파될 복음으로 이끄는 이야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예언자 아모스의 말씀 중 “앞으로 이루어질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신이 주님에게서 받은 명령과 연관시켰다.

나. 메시아와 선교

첫 번째 강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

☞ 지금까지의 그 이야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구약을 살펴보았다.

☞ 그 이야기는 이야기의 요점, 목표, 목적지가 되시는 예수님 자신에게로 이끄는 이야기였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나머지 제자들과 함께 두 번째로 구약을 살펴보셨다.

☞ 구약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구약이 이끄는 곳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께서 “기록되었으니”라는 말은 성경의 메시아적 의미는 물론이고 그것의 선교적 의의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 세계 선교에 대해서 말하면서, 예수님이 그것을 명령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2. 그 이야기를 전체로 보기

우리는 ‘교회의 선교를 위한 성경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당신은 실제로 성경 이야기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성경 이야기의 네 가지 주요 부분은 창조, 타락, 역사 속의 구속, 새 창조다.

가. 창조

성경은 창조에서 시작해서 새 창조로 끝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우주는 무엇인가? 우주는 어디서 비롯되었고,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실재하기는 한 것인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신인가, 아니면 단순히 나머지 동물보다 조금 더 발달된 동물일 뿐인가? 인생은 어떤 가치와 의미, 목적이 있는가?

☞ 성경이 제공하는 대답: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와 같은 인간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세계에서의 선교를 이해하는 데 깊은 함의를 지닌다.

나. 타락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반역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 육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물리적 환경에서 살다가 부패와 죽음을 당하고 만다.

• 지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지닌 합리성의 엄청난 능력을 자신의 악을 설명하고 변명하며 ‘정상화하는 데’ 사용한다.

• 사회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성적, 부모적, 가족적, 사회적, 인종적, 국제적)는 분열된다.

• 영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며, 그분의 선하심과 권위를 부인한다.


다. 구속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세계를 포기하거나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기로 선택하셨다.

• 구약

창세기 11장: 모든 인간의 마음이 죄로 가득함, 열방이 분열되어 혼란에 빠짐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 열방에 복을 주기 위한 것

최초의 대위임령: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과 약속

하나님의 계획은 아브라함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의 문제(죄와 분열)를 해결하는 것

은혜의 선물: 율법(율법 기준에 따라 살아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음)

하나님이 열방에 복을 주시고 온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약속을 지킬 것이며, 이스라엘을 통해 그 일을 하실 것이다(예언자들).

• 신약

신약은 우리에게 예언자들이 미래를 향해 가리킨 대답을 제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성육신: 도래한 하나님 나라, 성육신의 모델 및 원리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요한 선교적 명령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은 우리를 역사 속 구속 이야기의 중심점으로 인도한다.

출애굽 구속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으로 만들어 내었듯이, 부활절 구속은 오순절 성령이라는 종말론적 선물을 만들어 내고 교회를 탄생시켰다.

라. 새 창조

•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가 역사 속의 구속이라 일컬었던 성경 이야기의 한 부분에 대해 대단원의 막을 내일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의 요점(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의 구속과 갱신)이 궁극적으로 완성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심판의 실재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복음의 일부다.

정화하는 심판의 불과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반하는 악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것을 넘어서, 의와 평화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서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도 앞으로 추동된다.

※ 성경신학을 생각할 때

창조는 우리에게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와 원리를 제공한다.

타락은 저주받은 이 땅의 현실과 인간 및 사탄의 사악한 마수 속으로 우리를 떨어뜨린다.

구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 목적의 범위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특정한 역사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구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실제 반응의 종류를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보여 준다.

성육신은 몸부림치며 싸우는 우리 바로 옆으로 하나님을 모셔 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 대행하는 대리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참된 화해와 사랑과 소망과 평화의 능력을 경험하고 공유하게 한다. 또한 도저히 구속받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속죄와 구속의 사역을 추구하게 해준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인도와 힘을 공급하심으로써 우리가 일상생활과 사회 속에서 참된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와 함께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에 시선을 고정시키게 해준다.

새 창조의 원대한 희망은 현재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주 안에서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희망은 이미 드러난 미래의 모습으로 인해 현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형성한다.

3. 하나님의 선교

타락하고 죄악된 창조세계를 새 창조의 구속받은 세계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이야기다.

• 하나님의 선교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땅의 저주와 요한계시록 22장에 기록된 새 창조에서 그 저주가 종식되는 것 사이에 걸쳐 있다.

4. 요약

희생 치르더라도 좋은 소식을 전파하려고 결심한 이유?

☞ 성경 줄거리의 역동적인 취지를 분명하게 이해했기 때문, 그 이야기를 하나님 자신의 선교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그 이야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고전3:9)” 그 이야기의 마지막 위대한 막에 참여하는 것이다.

※ 생각해 볼 질문

1. 이 장을 읽기 전에, 구약 성경은 당신이 교회의 선교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가? 이 장의 내용이 당신의 견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서로만 인식하고 있었으며, 교회의 선교 시작을 신약, 즉 예수님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창세기 11장에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 죄로 가득하였고, 열방이 분열된 것이 나타난다. 최초의 대위임령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과 약속은 열방에 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브라함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의 문제(죄와 분열)를 해결하는 것이다.

2. 우리는 ‘복음’을 일련의 명제 또는 교리의 형태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이 장에서 요약한 대로, 성경 전체 이야기에 비추어서 어떻게 복음을 이야기 형태로 요약할 수 있는가?

☞ 성경 이야기의 네 가지 중요한 부분은 창조, 타락, 역사 속의 구속, 새 창조로 구성되어져 있다. 성경은 창조에서 시작해서 새 창조로 끝난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반역은 육체의 죽음, 악을 설명, 인간관계의 분열, 영적인 소외 등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세계를 포기하거나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기로 선택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가 역사 속의 구속이라 일컬었던 성경 이야기의 한 부분에 대해 대단원의 막을 내일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3. (목사, 리더, 선교 위원회 등을 포함해서) 교회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그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선교에 더 열심을 내도록 만들기 위해 당신은 어떤 제안을 할 수 있는가? 이 분야에서 더 나은 가르침을 제공한다면 우리의 선교 인식과 선교 헌신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 기독교 선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대위임령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나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대위임령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위대한 이야기 속에 동행할 수 있는 선교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

작성: 2019.7.10.

3장 창조세계를 돌보는 백성

성경이 시작하는 곳(구약)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 어떻게 끝을 맺는가 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또 내가 새 하늘과 재 땅을 보니(계21:1)

인간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다른 사람, 그리고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 죄가 관계를 손상시켰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

1. 정복하고 다스리라-섬기고 보존하라: 창세기1~2장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미 구속받은 새로운 인류에 속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최초로 인류에게 주신 명령에 따라 살 의무를 우리에게 확실히 강화하고 심화시킨다.

가. 창조세계의 왕: 창세기1:26~28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세계를 통치하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창조세계 전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자신의 왕적 권위를 인간의 손에 넘겨주신다(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창조세계에서 왕으로 처신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을 받지만, 하나님의 왕권의 특징과 가치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

나. 창조세계의 종: 창세기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하시고

☞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아바드: 섬기다, 섬기는 과정에서 힘들게 일한다, 일하다, 갈다, 경작하다, 인간은 창조세계의 종이며, 종 됨은 인간이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왕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샤마르: 어떤 것을 안전하게 지키다, 보호, 돌봄, 경계함, 어떤 것을 헌신적으로 보살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진지하게 대한다는 의미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환경을 섬기고 돌보도록 그 가운데 배치된다. 땅을 다스리는 요점은 우리의 유익이 아니라, 땅의 유익을 위함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선교의 첫 번째 차원은 우리가 나머지 인류와 공유하는 사명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피조물을 섬기고 돌봄으로써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위해, 영원히

생태학적 선교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

가. 창조세계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창조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의 찬양과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나. 인간의 삶과 창조세계는 완전하게 결속되어 있다.

사람=아담, 지면(흙)=아다마 ☞ 우리는 땅의 먼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다. 땅은 우리에게 제공한다.

하나님은 식량과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땅의 자원들을 주셨다.

라. 땅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는다.

구약 성경은 인간이 땅에서 처신하는 방법과 땅 자체의 상태 간에 강한 도덕적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마. 하나님의 구속은 창조세계를 포함한다.

우리는 저주받은 땅에 살지만(창3장), 우리는 또한 언약을 맺은 땅에 산다(창9장).

땅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그에게 자연세계를 돌보며 다스리는 분명한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왕권을 본받아 수행하는 과제였다.

3.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딤전1:15).

가. 만물이 십자가를 통해 화해되었다.

바울은 창조세계를 십자가의 구원하는 능력 가운데 포함시킨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뿐만 아니라 창조세계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천국에 가는 도중에 당신은 교제와 동료가 필요하다.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개인→교회→세상→천국, 이것이 우리의 궤도인데, 이 안에는 이원론이 작동하고 있다.

나.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좋은 소식

우리가 창조세계를 돌봐야 하는 것은 창조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것을 돌볼 명령을 우리가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창조세계가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궁극적 운영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우리가 세워야 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동기를 부여받는다.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는 창조세계를 포함한다. 우리의 선교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에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대행자로서 그 구속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창조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은 구속받은 인간인 우리에게 강화되는데, 이는 우리가 창조세계의 구속 또한 고대하기 때문이다.

4. 요약

우리의 신앙과 세계관에서 나온 훨씬 심오한 근거에서 창조세계를 돌본다.

※ 생각해 볼 질문

성경 이야기가 창조에서 새 창조로 전개된다면, 당신이 속한 교회의 선교 의제와 관련해, 온전히 성경적이어야 할 그 문제와 관련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2. 이 장은 예수님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풍요롭게 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 특히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예수님의 업적의 의의 및 범위와 관련하여 말해 보자.

☞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 세상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뿐만 아니라 창조세계를 하나님과 화해를 시키셨다.

3. 교회의 선교에 지구 보호가 포함된다는 사실은 환경 문제에 관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책임에 대한 당신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는 창조세계를 포함한다. 우리의 선교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에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대행자로서 그 구속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연을 훼손키는 것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역행하는 행동이다. 창조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를 돌보는 것이다.

4. 이러한 관점의 결과로 당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구체적인 행위나 관리 방식이 있는가?

작성: 2019.7.12.

4장 열방에 복이 되는 백성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선교사는 누구인가? 예수님, 바울

1. 열방 가운데서 믿음의 순종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롬1:5; 16:26)

“모든 열방”의 지평선은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복음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매우 좋은 소식이다.

좋은 소식이란 하나님이 열방에 복 주시기를 원하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소식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아브라함 안에 있는 것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8~29).

2. 창세기 1-11장의 암울한 맥락에서 살펴본 아브라함

창세기 1~11장: 우주적 질문 제기, 창세기 12:1~3(아브라함의 언약)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인간의 악함, 나라 간의 분쟁, 그분의 피조물 전체가 망가져 신음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의 시작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 백성의 선교의 시작이다.

3.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놀라운 소식-열방을 위한 복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복을 주다, 복

복 ☞ 죄와 반역 ☞ 심판과 저주

하나님 ☞ 아브라함 ☞ 모든 열방

가. 복과 창조세계의 선함

하나님의 복은 세 번 선포 된다.

①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셨다.

② 여섯째 날에는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 ☞ 생육함, 풍성함, 충만함

③ 일곱째 날에는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 ☞ 성화, 안식

수직적인 면: 야곱, 수평적인 면: 아브라함

나. 역사 속의 복과 희망

복은 선교적인ㄹ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신약에 답

우리는 열방에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복이 퍼져 나가는 역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역사다.

다. 복, 구원, 순종

구원의 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언약적 순종의 반응이 필요했다.

구약 성경에서 복이나 구원이 순종을 통해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의해 확립된 언약 관계에 기초한다.

순종은 복의 영역 안에 살면서 그 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4. 아브라함: 하나님의 선교와 우리의 선교

가. 하나님의 보편적 선교: 모든 열방

창세기 10장과 11장 앞부분은 열방에 초점을 맞춘다.

나. 하나님의 특정한 수단: 한 나라

창세기 12:1~3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구약 이스라엘의 자의식의 근원을 본다.

하나님이 한 사람과 한 백성을 선택하시는 사건이 모든 열방을 다루시는 전 세계적 맥락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 선교를 위한 선택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축복을 받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는 대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선택’은 많은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을 도구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모든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다.

라. 선교적 교회

아브라함의 후손은 누구인가?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 그의 믿음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롬4:16~17).

창12:1~3의 선교적 취지는 또한 교회론적이다.

5. 성경 신학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메아리

가. 이스라엘의 예배와 구원 앞으로 나아오는 열방

시편은 예배 가운데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노래하는 시다.

축복 선교에 대한 메시지: 시편22:27~28; 47:6; 67편; 72:17; 86:9; 87편; 96편; 102:15; 102:21~22; 117편

열방 선교 신학: 이사야19:19~25; 45:22~23; 56:3~8; 60장, 예레미야4:1~2, 아모스9:11~12, 스가랴2:10~11

나. 복음서에 나타난 아브라함

누가복음13:10~16, 몸이 꼬부라진 여자

누가복음16:19~31, 가난한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19:1~10, 세리 삭개오

사도행전3:1~26, 성전의 절름발이 남자

다. 바울의 복음에 나타난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바울의 복음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 다음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바울의 개인적 선교는 아브라함적 믿음과 순종을 모든 열방 가운데 복제해 내는 것, 하나님이 본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바울의 복음 신학과 선교 신학은 둘 다 아브라함적이다.

바울의 칭의 교리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라. 요한계시록에서 성취된 선교

요한계시록5:9~10; 7:9~10; 22:2

6. 우리의 선교 모델인 아브라함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이라는 특권뿐만 아니라 또한 열방에 대해 복이 되어야 하는 책임도 물려받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반응했던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

가. 떠나감

일어나 가라. 네 고향을 떠나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모든 땅과 백성에게 복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땅과 백성을 떠나야 했다. 아브라함이 떠나야 열방이 복을 받을 수 있었다.

바벨 이야기는 자신의 복의 수단을 찾아내려는 인류의 희망과 시도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 믿음과 순종

바울은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 믿음으로 인해 그는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다(롬4장, 갈3:6~29)

야고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며, 그래서 실제로 그 믿음의 진정성을 보여준다(약2:20~24).

히브리서는 실제로 두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물론 바울과 야고보도 공히 동의했을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이 말해 주는 영광스러운 복음은 하나님의 선교가 궁극적으로 모든 열방에 복 주시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믿음과 순종이 없이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복은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선교를 위한 궁극적 의제가 되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반응한 것은 우리의 선교를 위한 역사적 모델(믿음과 순종)이 된다.

7. 요약

우리는 성경적 용어인 ‘복’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풍성하고 포괄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복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만을 우한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그 복이 보편적으로 모든 열방에 도달하는 통로가 될 특정한 나라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가 어떤 나라 출신이든 상관없이 아브라함 가족의 일원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아브라함의 자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된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 생각해 볼 질문

1. ‘복’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보통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이 장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 ‘복’이라하면 세상적인 욕심을 채울 수 있는 ‘복’으로 간주한 적이 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세상에서도 잘되는 ‘복’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는 구원의 ‘복’을 추구하고 있음을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난 복이 죄와 반역으로 그리고 심판과 저주의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복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의해 확립된 언약 관계에 기초하며, 순종은 복의 영역 안에 살면서 그 복을 누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복이 되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묘사하기에 적절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참으로 그 자체로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의 선교 가운데 그 같은 아브라함적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도전받거나 개선될 수 있는 면이 어떤 것이 있는가?

☞ 바울의 선교는 지극히 윤리적인 내용을 지녔다. 전도를 넘어서는 선교가 있었다. 그것은 새로 태어난 공동체에 하나님의 도를 행하도록 도덕적 변화를 가르치는 선교였다. 이것을 아브라함 적이라고 한다.

3. 아브라함은 “떠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신이 당신의 나라를 떠나 해외 선교사로 가라는 부름을 받는 여부와 관계없이 “믿음과 순종”으로 아브라함을 따라야 한다면, 현재 당신이 처한 문화적・사회적 상황 가운데 어떤 요소를 “떠날” 필요가 있는가?

☞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모든 땅과 백성에게 복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땅과 백성을 떠났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떠나 모든 열방이 복을 받을 수 있었다. ‘난 어떤가?’ 난 떠남은 벌써 시작되었다. 믿지 않는 부모로부터 매일 떠나고 있고, 믿지 않은 세상 속에서 나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떠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떠남을 실천하는 것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떠남이 이루어지는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4. 교회의 선교에 순종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율법주의처럼 들리는가? 이처럼 비성경적 생각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논박할 수 있는가?

교회의 선교에 순종하는 것은 믿음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율법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인 믿음의 나약함과 세상적인 굴레에서 온전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의 근성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진정성을 닮는 우리의 믿음이 꼭 허락되길 기도한다.

작성: 2019.7.20.

5장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백성

1.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말씀

하나님의 백성이 아직 사라의 자궁에 잉태되지도 않았을 때, 그들이 열방에 복을 전하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이것이 좋은 소식, 복음이라고 말한다(갈3:8). 열방에 복을 전하는 것이 선포된 하나님의 선교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백성을 창조하신 이유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역사는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그의 후손을 통해 복이 땅의 모든 열방에 임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시작했다.

아브라함의 가족과 그를 따르는 아브라함의 온 집안은 의와 정의를 행함으로써 야웨의 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아브라함의 복을 물려받는다면 그의 사명도 함께 물려받는 것이다.

우리의 윤리와 하나님의 선교는 완전하게 묶여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축복의 약속은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을 다루는 한 가지 유명한 이야기에 실제로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소돔과 같은 세상에서 아브라함처럼 살도록 부름 받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2. 소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델

가. 열방의 불순종

소돔은 타락한 세상의 방식을 나타낸다.

창세기 18: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18:20~21).

☞ 부르짖음(제아카, 체아카): 억압이나 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스런 외침 혹은 도움을 바라는 외침을 뜻하는 전문 용어

☞ 창세기19장, 신명기29:23, 이사야, 에스겔

나. 열방 가운데서의 순종

바울의 선교는 지극히 윤리적인 내용을 지녔다. 전도를 넘어서는 선교가 있었다. 그것은 새로 태어난 공동체에 하나님의 도를 행하도록 도덕적 변화를 가르치는 선교였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적인 것이다.

3. 아브라함: 하나님 선교의 모델

가. 임박한 심판: 궁극적 축복

하나님은 특정한 악한 사회에 심판을 내리시는 도중에 멈춰 서서, 모든 민족에 보편적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자신의 궁극적 목적을 스스로 떠 올리신다.

나. 세상을 위한 약속

하나님은 걸음을 멈추고 아브라함과 사라와 함께 식사를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평원에 자리한 두 성위에 있는 언덕에 살던 이 노부부에게서 역사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 목적을 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과한 성경 신학에서 아브라함이 중심이 된다는 것을 독자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모든 열방에 복을 가져다주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이 아들을 갖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들을 가져야 하며 또 갖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아직 그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사명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선교 내용이다.

4. 야웨의 도: 하나님 백성의 모델

창세기18:19-우리는 선택(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심)선교(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사이에 윤리를 발견하게 된다.

☞ 여호와의 도, 의와 공도를 행함

가. 윤리 교육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선생이 되도록, 특히 야웨의 도를 가르치고 의와 공도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도록 선택했다고 말씀하신다.

나. 야웨의 도

길에 있는 누군가를 따르는 모습, 그의 발자국을 지켜보고 그가 가는 길을 주의 깊게 따라가는 모습이다. ☞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시사한다.

어떤 사람이 해준 설명에 따라 길을 떠나는 모습이다. ☞ 약도, 지시사항

율법 전체를 다섯 가지 단어로 요약하는 수사학적 수식으로 시작한다.

☞ 경외하라, 행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순종하라

이스라엘이 행해야 하는 야웨의 도는 무엇인가?

야웨의 도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선택하는, 자신을 낮추시는 사랑의 도였다. 이스라엘은 그 사랑에 회개와 겸손으로 반응해야 한다.

☞ 하나님이 다른 이들에게 해주시고 싶으셨던 것을 그들에게 해주는 것,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에게 해주신 일(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해 주시고 광야에서 음식과 옷을 공급해 주신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다. 의와 공도를 행함

sdq: 체데크와 체다카, 의(righteousness), 곧다

☞ 고정되어 있고,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을 하고 있는 어떤 것을 뜻한다.

☞ 규범, 기준, 그것을 가지고 다른 것들을 측량하는 어떤 것

☞ 정확한 무게와 치수는 ‘체데크의 저울추’: 공정한, 공평한

☞ 양들에게 안전한 길은 ‘체데크의 길’: 의의 길

☞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적용될 때: 올바른 것, 기대되는 것에 순응하는 것

☞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 우선순위와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

spt: 샤파트, 광범위한 법적 활동

☞ 바로잡다, 잘못되었거나 억압적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개입하여 고치다

☞ 사회와 창조세계 속에서 아주 잘못되어 버린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을 생각한 것

☞ 미슈파트: 소송 전 과정 혹은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법적 권리, 주장, 진술, 정의

☞ 미슈파트는 사람과 환경이 체데크/체다카에 따라 회복되기 위해,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언법(hendiadys): 두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복합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것, 예) 법과 질서, 사회 정의, 의와 공도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에게 야웨의 도를 가르치고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야 했다. ☞ 하나님이 그를 선택한 목적

아브라함이 목격하고 그 다음에 가르치게 될 야웨의 도는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억압하는 자들에 반대해서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이다.

라. 선교적 논리

창세기18:19의 세 개의 절

☞ 내가 그를 알았나니(내가 그를 택하였나니):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선택

☞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야웨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야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아브라함이 그의 후손에게 야웨의 도를 행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이유

☞ 선택, 윤리, 선교를 하나님의 의지, 행동, 바람이라는 하나의 순서로 연결시킨다.

윤리가 선택과 선교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1행)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나타내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2행). 그리고 그와 같은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함으로 인해 열방에 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선교가 실현될 것이다(3행).

※ 뒤에서부터 읽으면,

•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열방에 복을 가져오는 것(선교)

• 그것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의와 공도 가운데 야웨의 도를 따라 살도록 가르침을 받을 공동체가 세상에 존재함으로(윤리)

•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어떻게 생겨날 것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그 창시자가 되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에(선택)

※ 앞에서부터 읽으면,

• 아브라함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인격적 우정의 관계를 맺으신 사람(선택).

•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는가? 소돔의 길을 따라가는 세상에서 야웨의 도와 그분의 의와 공도에 헌신할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윤리)

• 무슨 목적이 있기에 아브라함의 백성은 그처럼 높은 윤리적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가? 열방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실 수 있도록(선교)

이 시대에 교회는 선교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아니다.

창세기18:19에 따르면, 하나님 백성의 삶의 윤리적 특성은 그들의 부르심과 그들의 선교를 연결시키는 중대한 연결 고리다.

성경적 윤리 없는 성경적 선교는 있을 수 없다.

5. 요약

세계 교회의 현 상태에 대한 불평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나 자주 교회가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분열되고 찢어지고 싸우는 교회는 분열되고 깨어지고 폭력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거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교회에는 좋은 소식이 있지만, 교회가 전하는 소식은 교회의 삶에 삼켜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하나님이 첫 번째 대위임령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과 예수님이 마지막 대위임령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이유다.

※ 생각해 볼 질문

1. 소돔과 현대 사회가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은, 당신이 세상의 필요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 분열되고 찢어지고 싸우는 교회는 분열되고 깨어지고 폭력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거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 교회에는 좋은 소식이 있지만, 교회가 전하는 소식은 교회의 삶에 삼켜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 교회의 선교와 경건한 윤리의 관련성은 당신의 삶과 교회의 삶에 어떻게 도전을 주는가?

☞ 이 시대에 교회는 선교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아니다. 창세기18:19에 따르면, 하나님 백성의 삶의 윤리적 특성은 그들의 부르심과 그들의 선교를 연결시키는 중대한 연결 고리다.

3.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에 의와 공도를 행함으로써 야웨의 도를 지키는 것을 ‘가르치도록’부름 받았다. 당신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은 교회의 선교 및 소명 의식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선생이 되도록, 특히 야웨의 도를 가르치고 의와 공도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도록 선택했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자녀들과 영적인 제자들에게 야웨의 도를 가르쳐야 한다.

4. 윤리가 우리의 소명과 선교 사이에 있는 개념이라면, 매일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 태도, 관계는 어떻게 변해야 하겠는가?

☞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선택하셨고,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야웨의 도를 행하도록 가르치셨고,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나타내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며,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함으로 인해 열방에 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선교가 실현될 것이다.

5. 교회가 창세기18:19의 마지막 부분(모든 열방에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 곧 전도)에 관심을 기울인 것처럼 같은 절의 중간 부분(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 곧 윤리)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심과 같이 우리를 선택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즉 선교를 실천했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나타내는 공동체(교회)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공동체로 인해 열방에 하나님의 선교가 실현될 것이다.

작성: 2019.7.24.

6장 구속적 삶을 살도록 구속받은 백성

• 당신은 구속받았습니까?(Are you redeemed?)

우리가 교회를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고 교회는 하나의 목적 곧 선교를 위해 구속받은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주로 구속받은 개인들의 무리로 간주되었다. 선교는 다른 사람들이 구속받도록 돕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애굽에서 구속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구속받은 백성인 그들은 그분의 선교를 위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었다.

1. 하나님의 구속을 경험함

당신은 구속받았습니까? 물론이죠. 어떻게 알죠? 출애굽 이야기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구속자로 행동하셨고 출애굽 사건 자체가 구속 행위로 불린다. 구속이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는 점과 구속이 실제로 이스라엘의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출애굽은 신약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취를 해석하는 중요한 방식의 하나(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행위를 출하하는 것)가 된다.

2. 구속자: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하는 친족의 대변자

‘구속하다’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출애굽 활동에 적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그들 문화의 요소였던 개념과 관습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을 타나내는 비유로 사용했다.

‘구속하다’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되사는’것을 의미한다.

가. 살인자를 재판에 회부함

나. 가족이 빚이나 종노릇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줌

다. 형제의 이름을 보존함

3. 출애굽: 노예화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구출

가. 정치적 차원

구속은 정치적 무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나. 경제적 차원

구속은 아주 강력한 경제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 사회적 차원

구속은 사회적 변혁이었다.

라. 영적 차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통해 구속하셨을 때,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속박 상태의 몇몇 차원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구속에는 분명한 영적 의도가 있고, 구속은 반드시 결과를 낳았다.

4. 출애굽: 총체적 모델

신약 성경이 출애굽의 궁극적 등가물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본다는 점을 인정하며 우리의 성경 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5. 십자가: 적대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구속의 결정인 십자가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분의 창조세계를 노예로 만드는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였다.

구약과 신약에서 구속은 하나님이 그분 백성의 위대한 대변자로 활동하셔서, 전능한 힘을 행하시고, 그 백성을 적대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비용 일체를 지불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6. 하나님의 구속에 반응하다.

가. 기뻐하도록 부름 받음

베드로가 대부분 이방인으로 구성된 독자들을 향해 출애굽기를 인용하면서 그들도 역시 출애굽 경험을 하였다고 말한 것은 참으로 성격적이고 이스라엘적인 것이다.

찬양과 실천은 모두 선교적 행위들이며, 둘 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에게 응답하여 행하도록 부름 받은 것들이다.

나. 본받도록 부름 받음

다. 노예 해방

라. 관대함

구속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특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셨을 당시 그들이 겪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향해, 구속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마. 구속화 희년

바. 용서와 빚

구속의 경험은 구속적 삶을 낳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선교적인 흐름을 만든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이와 같이 강력한 실천적 차원을 지닌다.

7. 사명을 띠고 구속적 삶을 살기

구속이 출애굽에서 시작되어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선교의 삶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백성은 세상에서 구속적 삼을 살도록 부름 받는다.

8.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음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를 우리가 관여하는 선교의 모든 차원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십자가를 총체적・성경적 선교의 모든 측면에 대해 중심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십자가 안에서만 죄책을 지진 죄인을 위한 용서, 칭의 및 깨끗하게 함이 있다.

십자가 안에서만 악한 권세를 격파시킬 수 있다

십자가 안에서만 사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사망이 궁극적으로 멸망한다.

십자가 안에서만 가장 다루기 어려운 원수까지도 화해시킬 수 있다.

십자가 안에서만 우리는 마침내 모든 피조물이 치유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은 이 세상에서 죄로 오염된 삶 전 영역, 곧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위한 좋은 소식이다.

9. 출애굽 및 희년 공동체로서의 교회

우리는 십자가를 출애굽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십자가를 출애굽의 성취로 본다. 십자가의 완전한 구속적 업적을 인류와 창조세계를 노예로 만들고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최종적 해방을 포함한다.

10. 요약

출애굽은 구약의 구속 모델을 제공하며 하나님이 구속자로 개입하실 때 그 구속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포괄적인지 보여준다.

신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탁월한 출애굽으로 제시한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능력을 이미 경험한 자로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출애굽과 희년에 표현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다양한 차원들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억압들에 관련시키고자 애쓰는 구속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것이 우리 역시 모세 및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어야만 하는 이유다.

※ 생각해 볼 질문

1.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출애굽의 완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신이 구속과 교회의 선교를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출애굽은 신약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취를 해석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행위를 출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은 이 세상에서 죄로 오염된 삶 전 영역, 곧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위한 좋은 소식이다.

2. ‘구속’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것(물론 그것은 옳고 또는 좋은 것이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돌아볼 때, 이 장에서 고찰한 바 있는 하나님의 구속(구출, 해방) 사역의 다른 차원들 중 어떤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가?

출애굽은 구약의 구속 모델을 제공하며 하나님이 구속자로 개입하실 때 그 구속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포괄적인지 보여준다. 또한 신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탁월한 출애굽으로 제시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의 첫 번째 경험은 구속인 것이다. 성경의 말씀과 생활 속에서 구속의 경험을 통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3. 또한 우리는 구속을 개인적인 것(구속받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구속을 구속받은 공동체로 생각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당신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당신의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긍휼과 정의를 반영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십자가를 출애굽의 성취로 본다. 십자가의 완전한 구속적 업적을 인류와 창조세계를 노예로 만들고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최종적 해방을 포함한다. 우리는 공동체는 십자가를 선교의 모든 차원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4. 이제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는 다른 사람들이 구속받도록 다른 나라에 선교사들을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반영자요 메신저로서, 세상 속에서 구속적 삶을 사는 것도 포함한다고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 대한 이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능력을 이미 경험한 자로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출애굽과 희년에 표현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다양한 차원들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억압들에 관련시키고자 애쓰는 구속적인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교의 중심으로 삶고 성경 속(출애굽)에서 선교의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작성: 2019.7.26.

7장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대표하는 백성

1. 그 이야기를 기억함

가.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이야기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구약, 그들은 누구였으며, 무엇을 위해 거기에 있었는가?

나. 이제까지의 이야기

출애굽기 19:3~6, 우리의 이야기의 일부분,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큰 이야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게 정체성, 역할, 세상 속에서의 사명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특권 및 책임감도 함께 제공했다.

출애굽기 19:4~6, 하나임은 뒤로 이스라엘의 최근 과거를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앞으로 모든 열방을 위한 그분의 미래 비전을 가르치신다. 또한 하나님은 현재 이스라엘의 책임을 가리키신다.

2. 과거의 은혜: 출애굽기 19:4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인해 애굽인들은 억압에서 벗어났다. 하아님은 그분의 긍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에 신실하게 행동하셨다.

은혜가 먼저 오고, 믿음은 그 다음에 온다. 그리고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것에 대한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난 반응으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세 번째 것이다.

율법은 은혜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동일한 기본 원리가 성경 신학, 윤리, 선교를 관통한다. 명령이 은혜를 뒤따른다.

3. 미래의 은혜: 출애굽기 19:5b

가. 특별한 백성, 그러나 유일한 백성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내 장자”였다.

야웨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셨던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특정한 한 민족을 속박에서 구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열방에 구원을 제공 하시는 것이었다.

나. 미완성 과업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고 또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열방을 복 주시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하신 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든 열방을 그분의 복의 영역으로 데려오는 장기적인 성경이야기를 상기시키시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역사적 구속 행위에 나타난 과거의 은혜와 더불어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에 나타날 미래의 은혜를 보게 된다.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속박과 죄에서 구속하신 백성이며(과거), 하나님이 땅의 모든 열방에 복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백성이다(미래).

4. 현재의 은혜: 하나님의 세상에 있는 하나님 백성: 출애굽기 19:6

어떤 종류의 백성과 나라가 될 것인가?

이스라엘은 제사장이 되고 거룩해져야 했다.

가. 제사장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침

하나님께 백성의 제물을 드림

제사장들이 야웨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 역시 그들의 주요한 특권이며 책임이었다(민6:22~27).

하나님 백성의 제사장직은 하나의 선교적 기능으로서 아브라함의 선택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열방에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는 것을 포함한다.

나. 거룩

‘거룩’이라는 단어(히브리어로 ‘카도스’)는 그 중심에 다르거나 구별된다는 뜻을 지닌다.

야웨께서 다른 신들과 다른 것처럼,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과 달라야 한다.

다. 거룩함: 주어진 사실

무엇보다도 거룩함은 주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별하시고, 열방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아브라함의 선택과 출애굽 구속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 내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성도’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사람들을 의미한다.

라. 거룩함: 주어진 과제

거룩함은 명령이었다.

신약에서도 거룩함은 소명이다.

마. 거룩함: 삶의 전 영역에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요구된 거룩함은 모든 영역(개인, 가정, 사회, 경제, 국가적 삶을 포함해서)에서 정직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레위기 19장은 출애굽기 19:6에 대한 가장 훌륭한 주석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레위기 19장 대부분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그런 거룩함이 철저히 실제적이고 사회적이며 대단히 현실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너희의 살의 질은 나의 성품을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 자신이 행할 일이다.”

5. 언약 순종

출애굽기 19:5 전반은 바로 따라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십계명과 언약 법전)에 대한 순종을 의미했다. 그 율법은 출애굽기 24장의 언약 체결식의 맥락 가운데 나온다.

은혜의 이중맥락(과거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모든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약에 대한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선교의 조건이었다.

구원의 은혜에 응답하고 선교의 은혜 가운데 사는 순종의 은혜다.

성경 전체에서 그런 것처럼 여기서도 순종은 궁극적으로 구원과 복을 열방의 세계에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성경적 거룩함 없이 성경적 선교는 없다.

6. 요약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과거의 은혜(출애굽에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역사적 구속 행위)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미래의 은혜(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만을 예배하는 이들의 다국적 가족 안으로 온 땅 모든 열방의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에 의해 전진하는 선교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려는 사람들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그 은혜에 응답하여,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가운데 보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거짓 신들의 타락한 추함 및 무력함을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 우리는 베드로가 묘사하는 것과 동일한 정체성, 동일한 사명, 동일한 윤리적 책임을 갖고 있다.

※ 생각해 볼 질문

1. 베드로는 출애굽기 19:4~6을 상기시키며 “열방 가운데서 선한 삶을 살라”고 말했다.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바리새주의나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별하시고, 열방으로부터 분리시켰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선택과 출애굽 구속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는 이 거룩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이 그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사람들인 성도인 것이다. 따라서 열방 가운데 선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의 삶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해하고 순종한다면 바리새주의나 율법주의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2. 이 장은 윤리적 순종을 강조했다. 하지만 주요 단어는 내내 “은혜”였다. 이 사실이 당신을 놀라게 하는가? 당신은 이제 어떻게 그 두 가지 진리(한편으로 은혜가 순종의 반응에 앞서지만, 다른 한편으로 순종의 방응은 필연적인 것이며 믿음으로 받게 되는 은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를 표현해 내는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은혜의 이중맥락(과거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모든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언약에 대한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선교의 조건이었다. 구원의 은혜에 응답하고 선교의 은혜 가운데 사는 순종의 은혜다. 성경 전체에서 그런 것처럼 여기서도 순종은 궁극적으로 구원과 복을 열방의 세계에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순종의 은혜 속에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목적, 즉 구원의 은혜와 선교의 은혜 속에 나의 삶을 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자녀들과 직장에서 아직 그 은혜의 나타냄을 부족함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3. 레위기 19장에 요약된 거룩함은 선교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그 장에 수록된 명령 중 어떤 항목이 당신이 처한 상황과 가장 관련이 있고 도전이 되는가?

작성: 2019.7.30.

8장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끌어들이는 백성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에 헌신하고(4장), 야웨의 도를 지키고 의와 공도를 행하며(5장), 억압당하는 자들을 위한 총체적인 구속적 축복을 위해 일하고(6장), 세상 한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일에 헌신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7장).

1. 호기심을 불러일으킴-신명기 4:5~8

신명기 4장에서 우리는 폭넓은 관점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한 동기를 발견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순종을 공개 무대 위에 놓으며, 열방이 야웨 백성의 국가적 생활을 관찰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상상해 보라고 초대한다.

가. 분수 있음

이스라엘의 위대성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 가까이에 계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7절).

이스라엘의 위대성은 토라의 의에 근거한다(8절).

나. 비교할 수 있음

7절과 8절의 두 수사적 질문의 취지는 비교를 하게 하는 것이다.

다. 도전할 수 있음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살고자 애쓰면 열방이 그것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2. 모여드는 구도자들-왕상 8:41~43, 60~61

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14~21절)

솔로몬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도들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한 이 진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의 독특성으로 바뀌면서,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큰 나라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친구와 적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그들에게 풍부한 복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분이 약속하셨던 그 땅에서 안전을 제공하셨다.

나.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이방인(41~43절)

솔로몬의 기도는 열방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멀리 퍼져 나갈 것을 예상한다.

다. 가정

솔로몬은 간구를 드리면서 선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중요한 몇몇 가정을 한다. 그는 다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의 평판을 들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는 멀리서 사람들이 이끌려 와서 스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외국인들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들으실 것이며 또 실제로 그 기도에 응답하기를 원하실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나님은 예배와 기도를 불러일으키신다.

라. 내용

하나님은 그들이 무엇을 구하든 이스라엘을 위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결코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분의 약속이 새롭게 들렸다.

마. 동기

우리에게 선교의 가장 큰 동기는, 주의 이름(우리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미한다)이 땅 끝까지 알려지는 것이어야 한다.

3.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백성(60~61절)

4. 감탄할 만한 매력-예레미야 13:1~11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입기 원하신다.

하나님이 다시 한 번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드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5. 열방이 예배로 나아옴-이사야 60장

이사야 60장은 빛으로 시작해서(1~3절) 빛으로 끝나는(19~20절) 장이다.

이사야 60장은 하나님 자신의 빛,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의 빛, 그리고 세상이 그 안에서 살고 걷게 될 빛을 연결시키는 강력한 선교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신다(1~2절).

빛의 반대는 어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계시와 구속의 빛으로 오신다면, 나머지 세계는 여전히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세계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구속자와 구제주로 오셔서, 둘 모두를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사야가 상상하는 바다.

나. 세상이 하나님께 나아온다(3~16절).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하러 오시면, 열방이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나아올 것이다.

다. 열방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나아온다(4, 9절).

시온에 들어오는 이스라엘 자손은 누구일까?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열방의 백성들이다.

라. 열방이 선물들을 갖고 온다(5, 9, 11절)

예언자 이사야는 열방이 도처에서 그들에게 임한 구원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여 그들의 가장 귀하중한 선물을 가져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마. 열방이 예배하며 나아온다(6, 7, 9, 13절).

6. 세상에 평화가 온다(17~22절).

우리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1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것은 단순한 예견이 아니고 호출이다.

7. 사람들의 인정을 받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눈에 잘 보이는 매력적인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 빛은 ‘선행’으로 이루어진다. 또 그 윤리적 빛의 특성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로 끌어들여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 생각해 볼 질문

1.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삶이 질문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시는 반면, 오늘날의 교회는 의혹만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사람들이 당신의 삶이나 당신 교회를 지켜보면서 어떤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는가?

☞ 왜 교회에 모여 야단을 떨고 있을까?

2. 당신의 공동체와 관련하여 ‘외부자들’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찾고’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솔로몬의 기도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관계 맺으며 사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 외부자들=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 이스라엘을 옷처럼 ‘입으시는’하나님 이미지는,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중요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4.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묘사하시고 그들에 “그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마도 이사도 58~60장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사야 58장을(통째로, 그러나 8절과 10절에 주목해서) 읽고 그것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를 깊이 생각해 보라.

☞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나?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지만, 하지만 그 호흡조차 힘듦으로 인해 헛된 욕심을 부리는 나를 발견한다. 언제쯤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의 빛을 비추어 나의 외부자들(가족과 이웃)과 함께 진정어린 복음의 말씀을 나눌 수 있을까?

작성: 2019.8.5.

9장 살아 계신 한 분 하나님과 구세주를 아는 백성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그 만남이 일어날 때 당신의 삶의 상태에 따라 아주 즐겁거나 반대로 대단히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 주시는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속하시면,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구속적인 은혜를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면, 당신은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와 같이 해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면,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장소로 끌어들이는 빛 비추게 하기 위함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며, 당신도 다른 사람들을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성경 신학의 정의(定義)상 ‘삶을 위한 신학’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거기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을 알리는 데 까지 이어져야 한다.

1. 도전적인 상황들

상황이 갈등과 도전의 상황이었다(사상, 세계관, 종교적 열심히 충돌).

사도행전에서 그 갈등은,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며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와 같은 생각을 위험스러운 허튼 소리라고 거부했던 사람들의 갈등이었다.

신명기에서 그 갈등은, 이스라엘의 독특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요 주님이 되시는 야웨에 대한 신앙과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가나안의 다신론적 종교 및 문화 간의 갈등이었다.

가. 사도행전-우리는 다시 살아난 사람을 보았다.

이스라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복은 이제 오직 예수님께 대한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만 올 것이다.

복음은 일어난 어떤 것에 대한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좋은 생각이나 좋은 조언이 아니다.

나. 신명기-너희는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연설을 하면서, 그들이 역사적으로 목격한 사건들을 상기시키는 장면을 제시한다.

다. 구원

라. 계시

시내 산에서 야웨는 자신의 이름, 개인적 성품, 도덕적 요구, 언약적 헌신에 대해 계시 하셨다.

2. 단호한 주장들

가. 신명기-다른 신은 없다.

이스라엘이 매우 독특한 경험을 했던 것은 그들로 하여금 아주 중대한 어떤 것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정체성이었다.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구속(출애굽)과 하나님의 계시(시내 산)의 특별한 행위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한낱 산수의 문제(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는가?)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살아 계신 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였다.

우리는 야웨는 비교할 수 없는(그분과 같은 신은 없다) 분이라는 주장과 야웨는 유일하신(초월적 신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그분과 견줄 다른 신은 없다) 분이라는 주장이 결합된 것을 발견한다.

결국에는 모든 열방이 나아와 한 분 참 하나님으로 그분을 예배할 것이다.

야웨가 비교할 수 없는 분이 되시는 이유는 실제로 그분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 사도행전-다른 구주는 없다.

단 한 분 하나님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선교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예수님은 이제 모든 사람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는 위치를 차지하신다.

3. 완전한 충성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독특성(그분은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구현하셨다)과 야웨의 유일성(그는 주님으로서 야웨를 구현하셨다)을 구현한 분리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이 지식에 충성을 바치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 자신을 위해 계속해서 붙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타협 없이 알리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가. 사도행전-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셨다면,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그 분 자신과 화해시키셨다면, 그와 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 신명기-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은 지, 정, 의, 활기를 포함한 완전한 헌신이다.

한 야웨, 한 사랑, 한 충성 이것이 신명기의 도전이다.

한 야웨, 한 이름, 한 구주, 이것이 사도행전의 도전이다.

4. 요약

성경적 복음은 우리에게 나사렛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로 절정에 이르는, 독특한 사건과 부인할 수 없는 경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고 그분의 창조세계 전체를 구속하기 위해 행동하셨으며, 그와 같은 구원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하나님이나 다른 원천은 없다고 단호히 주장을 펼친다.

※ 생각해 볼 질문

1. “완전한 충성.” 당신의 문화적 상황에서 참되신 한 분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당신의 충성을 위협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교묘한 형태로 다가오는 혼합주의를 이제 알아보겠는가?

☞ 완전한 충성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충성을 위협하는 것이 많다. 특히, ‘돈’은 우리의 삶을 삼키 듯 모든 부분에 관여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돈’으로써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현실 앞에서는 늘 ‘돈’에서의 절망적인 패배의 연속된 삶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위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 일 것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고, 또한 현재도 삶을 공유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반감은 항상 존재하며 그들의 눈치를 보며 벼랑 끝에서 서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충성을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혼합주의’에 머물고 있고 때문일 것이다.

2. 이 장은 그리스도가 하신 주장들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해오는 것들에 대해 설령 위협을 받더라도 강력히 거절할 것을 요구한다. 당신을 유혹하는 포기의 압력들(문화적, 세속적, 또는 종교적)은 무엇인가? 이 장에서 공부한 본문은 그런 유혹에 저항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 성경적 복음은 우리에게 나사렛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로 절정에 이르는, 독특한 사건과 부인할 수 없는 경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고 그분의 창조세계 전체를 구속하기 위해 행동하셨으며, 그와 같은 구원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하나님이나 다른 원천은 없다고 단호히 주장을 펼친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 유혹들 속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3. 타종교에 맞서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충성을 바치라는 이 장의 도전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축복과 사랑, 긍휼의 마음을 나타내는 사람이 될 것을 권하는 앞선 장들의 요구와 어떻게 조화되는가? 종교적 다원성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리에 충성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가?

작성: 2019.8.14.

10장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백성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점을 설명하셨다.

삶과 태도, 행위, 신뢰, 용서, 사랑, 관대함, 예수님께 대한 순종,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파격적인 행동에 관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을 포함했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기 원한다면, 당신은 먼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신자로서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는 인간으로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모든 열방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백성이 되도록 아브라함 안에서 선택 받는다.

우리는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의와 공도를 행하도록 부름 받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우리 자신의 구속의 역학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대표해야 하고 세상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그분께 대한 믿음으로 끌어들이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우리의 예배와 증거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한결같은 충성을 바쳐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하나님을 알려야 한다.

증거, 좋은 소식

1. 하나님의 이중 문제

가. 무지한 열방

야웨는 살아 계신 유일한 주권적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모든 열방에 복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나. 눈 먼 이스라엘

열방의 희망은, 응답하고 순종하는 이스라엘의 타고난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와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능력에 달린 것이다.

2. 이스라엘의 이중 역할

가. 나의 증인

이스라엘이 하나남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잡혀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자신들의 언약 법이 요구하는 법정 정의의 기준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의 사법 제도는 거짓말하는 증인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나. 나의 종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 진행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선교 역시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3. 증거의 이중 목적

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 회복

증인들 자신이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증거하는 행위는 증인들에게 그와 같은 확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 하나님에 대한 진리 확립

다. 야웨만이 초월적인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이니라, 나는 하나님이니라. 이는 구약의 유실론에 대한 위대한 단어이다.

‘만들다’는 야웨를 주어로만 가질 수 있는 동사다.

라. 야웨만이 역사를 통제하는 주권자이시다.

야웨만이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우선 그분이 하시려고 하는 일을 알려 주셨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셨다. 그리고 나서 백성에게 해석하고 설명하고 가르치셨다.

마. 야웨만이 구원자이시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4. 신약에서 증인들의 이중 역할

제자들의 결점과 약점을 감수하시면서 그들에게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5. 역사적 예수에 대한 최초의 목격자들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그분을 알았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목격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을 다시 살리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증거라는 선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교다.

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계속되는 증언

6. 요약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주님이요 구세주인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아는 하나님께 온전한 충성을 바치는 것이 포함됨을 보았다.

사도들처럼 공개적인 법정에서 그리스도를 기꺼이 옹호하는 것도 포함된다.

증거하는 일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 뿐 아이라 증인 자신의 믿음과 이해를 강화한다.

‘종과 증인’이 되는 과제는 이스라엘, 바울,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순교까지 당한 모든 사람의 선교를 규정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우리의 선교를 규정한다.

※ 생각해 볼 질문

1. ‘간증하다’는 표현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흔히 사람들이 하는 간증은 성경이 의미하는 ‘증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진리를 증거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해 ‘간증’ 하려는 성향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종종 하나님을 왜 믿고 사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예수님보다는 ‘나’라는 자아의 간증 내용이 많다. 분명히 우리는 간증 속에 하나님을 증거하여야 한다. ‘나’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하는 것이 성경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2. 증거하는 일이 당신의 신앙과 그 신앙에 대한 이해를 강화해 준 경험을 말할 수 있는가?

☞ 증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나,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거룩한 계획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둘,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방법이다. 난 하나님을 증거하는 방법 중 두 번째를 선호한다. 직장 생활에서 혹은 사회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모범 또는 타인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본문을 독해 해 보니, 두 가지의 방법이 병행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필수인 것이다.

3. 법정은 때때로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증인’(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믿을 수 없는 증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믿을 수 있는 증인’은 어떤 사람인가?

작성: 2019.8.17.

11장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백성

우리는 ‘복음의 사람’이며, 온갖 가능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선교의 본질이라고 즐겨 말한다.

복음=좋은 소식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나쁜 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구약 성경을 읽으며 복음이 선포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1. 바벨론 포로들을 위한 좋은 소식

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사 52:7).

나. 하나님의 통치는 ‘샬롬’을 의미한다.

다. 하나님의 통치는 ‘선’을 의미한다.

라. 하아님의 통치는 ‘구원’을 의미한다.

마. 하나님이 돌아오신다(사 52:8).

바. 하나님이 구속하신다(사 52:9~10).

위로와 구속

누가 유익을 얻을 것인가? 모든 열방이다.

‘복음’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이다. 이스라엘의 복음은 모든 열방을 위한 복음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게 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열방에 위로와 기쁨을 전하기 위해 땅 끝까지 퍼져 나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은, 통치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정당한 기업으로 돌아오시는 하나님, 온 세계를 구속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다.

2. 예수님 안에 있는 좋은 소식

가. 예수님은 그때도 지금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최초의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평화를 만들과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이해한 이들 가운데서 발견된다.

복음은 하나님에 과한 좋은 소식으로, 그것은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이 될 모든 것을 성취하는 기초가 된다.

나. 예수님은 그때도 지금도 돌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복음은 하나님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우리에게 오셨고, 처음 약속처럼 돌아오셨고, 다시 오실 하나님, 자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그러나 회개하라는 부름에 응답하고 좋은 소식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관한 소식이다.

다. 예수님은 그때도 지금도 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 또는 ‘야웨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3. 바울이 이해한 좋은 소식

4. 복음은 성경에 비추어 본 예수님 이야기다.

바울에게 복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구원을 성위하기 위해 통로로 삼으신 나사렛 예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다.

좋은 소식이란, 성경에 약속되고 규정된 하나님의 통치가 이제 메시아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임했다는 것이다.

5. 복음은 구속받은 새 인류, 하나님의 한 가족이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시며, 화평케 하셨고, 화평을 선포하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의롭게 된다.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화목하게 된다.

우리는 용서받는다.

우리는 구속받는다.

우리는 입양된다.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

6. 복음은 온 세계에 소통해야 할 메시지다.

7. 복음은 윤리적 변화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좋은 소식에 대한 믿음과 함께한다.

‘믿음의 순종’ 이것은 주목할 만한 단일한 소유격 표현이다.

변화가 없는 곳에는 복음도 없다.

8. 복음은 변호해야 할 진리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특권을 지닌 한 인종 공동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자신들이 ‘의로운 집단’에 속했다며 권리를 주장하는 자들을 위협한다.

복음의 견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자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복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을 미천하게 살다가 수치스럽게 죽은 자의 인격 가운데 두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들의 구원이 그보다 고귀한 종교 판매처에서 나오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된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회개와 근본적으로 변화된 개인적・사회적 윤리를 요청한다는 사실은, 복음의 혜택은 원하지만 그 요구는 거부하는 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9. 복음은 우주를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리스도는 단지 좋은 소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좋은 소식이시다.

10. 요약

복음은 역사적이며 또한 교회적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인류라는 실체를 포함한다.

복음은 믿음과 순종이다.

복음은 귀에 들려야 하는 메시지이며 눈에 보여야 하는 삶이다.

복음은 개인적이고 우주적이다.

무엇보다도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 하나나의 약속, 하아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다.

※ 생각해 볼 질문

1. 이 장은 성경적 복음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어떻게 넓혀 주었는가? 그 결과, 당신이 성경적 복음을 표현하고 나누는 방법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 우리는 ‘복음의 사람’이며, 온갖 가능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선교의 본질이다. 복음은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열방에 위로와 기쁨을 전하기 위해 땅 끝까지 퍼져 나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은, 통치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정당한 기업으로 돌아오시는 하나님, 온 세계를 구속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나쁜 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2. 바울이 사용하는 복음이란 단어에서 어떤 요소가 오늘날의 교회에서 가장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 소홀한 점을 다시 강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시며, 화평케 하셨고, 화평을 선포하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의롭게, 구원, 화목, 용서, 구속, 입양, 생명, 성령이 계시다.

3. 복음의 본질이 ‘좋은 소식’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 소식이 진정 좋은 소식으로 당신의 공동체에 들리게 할 수 있는가?

☞ 좋은 소식은 그리스도의 삶의 소식이다. 이 좋은 소식을 공동체에 전하는 방법은 입으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삶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삶으로써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이 나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공동체 속에서 긴장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작성: 2019.8.25.

12장 보내고 보냄 받는 백성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의 선교는 복음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구원 받을 필요가 있다.

예수님을 부르려면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믿기 위해서는 그분을 들어야 한다.

바울이 내린 결론처럼,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을 통해 생긴다. 그리고 들리는 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바울의 요점: 듣고, 믿고, 부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고

1. 구약의 보내심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실 때, 그것은 흔히 그분의 구출과 구원의 대행자로 행동하는 것이거나, 누군가가 들을 필요가 있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구원과 계시

2. 구원하기 위해 보내심

가. 요셉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다른 사람들이 저지를 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일컬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 모세

요셉은 하나님의 백성을 기아에서 구원했고, 모세는 그들을 학살에서 구원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기에 구원하시고, 구원하시려고 보내신다.

다. 사사들

라. 장차 올 구원자

이사야는 바로 그것, 곧 애굽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날을 상상한다.

3. 말하기 위해 보내심

전달자들은 본질상 보냄 받는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활동했으며, 그들은 야웨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의 권위를 갖고 야웨를 대신해서 말한다고 주장했다.

가. 모세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의 주요 목적은 그분의 백성을 구출하는 것이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과제도 받았다.

나. 이사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은 통제하시는 하나님, 중시에 계신 하나님, 사명을 수행하시는 하나님,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 예레미야

이사야가 그 자신의 죄성을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져 주심이 필요했다면, 예레미야는 그 자신의 젊은이 특유의 부적합성을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져 주심이 필요하다.

예수님, 예레미야, 그리고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에 의해 보냄 받았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수용이나 사명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보통 반대되는 상황을 예상했다.

결과를 통제하는 것은 전달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 성령과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전부 열매를 맺는, 완전한 선교사다. 여기에 하나님의 궁극적인 바람을 완수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품은 보내심이 있다.

가. 구원과 계시를 위해 보내심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사명을 부여해 보내실 수 있지만, 주로 그것은 그분의 구출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거나 그분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변자가 되는 것, 또는 둘 다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내심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말씀하심, 하나님의 구원과 계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것의 최소한의 의미는 보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 권위 있는 보내심

보냄 받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의 임재와 권위를 구현한다.

모세의 권위나 사무엘의 사역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다. 보내심과 고난

하나님의 선택으로 보냄 받는 것은 커다란 영예와 책임을 짊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대개 고난, 거부, 박해, 때때로 죽음을 포함했다.

5. 보내시는 하나님

6. 성자와 성령을 보내시는 성부 하나님

예수님은 그냥 오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으셨다.

7. 성령과 사도들을 보내시는 성자 하나님

예수님은 구원 및 계시와 관련된 특정한 선교적 과제들과 함께 성령을 보내신다.

8. 예수님과 사도들을 보내시는 성령 하나님

예수님과 더불어 성령은 사도들을 보내시는 분이다.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보냄 받지 않은, 보내시는 분이다. 그분은 성경을 보내시지만, 그분 자신은 결코 “보냄 받지” 않으신다.

선교에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9. 사도들

가. 열두 사도

‘사도’라는 단어는 ‘보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순회 설교자가 된 사람들이라도 반드시 사도는 아니었다.

나. 첫 제자들

그들은 예수님에 의해 선택받고 부름 받았다. 그들은 스스로 정하거나 나머지 제자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다. 그들의 권위와 기능과 사역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권위를 가지고 예수님 자신의 사역을 복제하고 확장해야 한다.

다. 사도 바울

바울의 삶 전체는 모든 열방에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는, 이사야 52:7의 살아 있는 성취가 되는 것에 바쳐졌다. 그것은 베드로 및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사도가 된다는 것의 의미였다.

라. 사도적 우선 순위

10. 사도들: 다른 사람들

11. 선교사들을 보내고 후원하는 교회들의 특징

12. 요한삼서-이중적 신실함

진리에 대한 신실함과 형제자매들에 대한 신실함

가. 진리에 대한 신실함

성육신의 진리(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참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그분은 구약 이야기와 약속을 성취하셨다.)

십자가와 우리의 죄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의 진리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의 진리

구세주와 주님으로서 예수님의 유일성의 진리

선교는 진리에 대한 전폭적인 헌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는 진리를 행하는 교회다.

나. 선교사들에 대한 신실함

지역교회 연결시키기, 가르침, 지역교회의 리더십 세우기, 네트워킹, 편지와 소식 전하기, 자원 나누기, 질문 전달 및 답변 받아오기, 그릇된 가르침 바로잡기, 인내를 격려하기 등을 하는 사람들이다.

13. 보냄(요삼 6절)

‘프로펨포’라는 동사는 신약 다른 곳에서는 어떤 사람의 여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을 뜻하는 전문 용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승인을 기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14. 감(요삼 7절)

그들은 관광객이 아니다.

그들은 연설가처럼 그들 자신의 기술을 포함해서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팔아서 사는 상업적 여행객이 아니다.

그들이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충성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믿음의 행위였다.

15. 후원함(요삼 8절)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기독교적 교제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냄 받는 자들을 후원할 의무가 따른다.

보내는 자와 보냄 받는 자, 우리 모두가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 선교의 책임과 특권이다.

16. 요약

성경의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부, 성자, 성경의 관계 안에서조차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세상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 생각해 볼 질문

1. 당신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에 의해 “보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반드시 지리적이나 육체적인 집에서가 아니라, 그분의 명령 아래 살고 그분의 뜻을 행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라.

☞ 하나님을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것의 최소한의 의미는 보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냄을 받은 하나님 백성인 것이다.

2. 독특한 지위와 역할을 지닌 열두 사도와, 신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사도들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오늘날에도 사도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무엇이 되지 않아야 하는가?

☞ ‘사도’라는 단어는 ‘보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냄 받은 자로써 사도의 사명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사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3. 당신의 교회와 요한삼서에 묘사된 선교적 교회의 모습은 어떻게 닮았는가? 특히 “진리에 대한 신실함”“형제자매들에 대한 신실함”이라는 두 가지 도전을 생각해 보라.

진리에 대한 신실함




성육신의 진리,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 십자가와 우리의 죄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의 진리,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의 진리, 구세주와 주님으로서 예수님의 유일성의 진리, 선교는 진리에 대한 전폭적인 헌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는 진리를 행하는 교회





선교사들에 대한 신실함




지역교회 연결시키기, 가르침, 지역교회의 리더십 세우기, 네트워킹, 편지와 소식 전하기, 자원 나누기, 질문 전달 및 답변 받아오기, 그릇된 가르침 바로잡기, 인내를 격려하기




4. 당신의 교회가 선교에 사람을 내보내는 일을 할 때, 당신이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는”것을 목표로 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요삼 6절)

작성: 2019.9.14.

13장 공적 광장에서 살아가는 백성

우리는 순회 기독교 선교사로 보냄 받고 받아들여진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대개 일상 세계에서 일하고, 생활비를 벌고, 가족을 부양하고, 세금을 내고, 사회와 문화에 기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몫을 하며 산다.

1. 하나님과 공적 광장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똑같이 이분법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생겨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회적・경제적 삶의 공적 무대에 몹시 관심을 가지시는 분으로 그 무대에 관여하시고, 책임을 지시고, 많은 계획을 갖고 계신 분이다.

가. 하나님은 공적 광장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2장은 우리에게 일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최초 모습을 제공한다.

인간이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본질의 무엇가를 나타내는 일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니은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고, 땅을 돌보고 보존하는 과제를 부여하셨다.

일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의도였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는 일하시는 분인 하나님처럼 일꾼이 되도록 창조되었다. 이는 ‘문화 명령’이라고 불려 왔다.

나. 하나님은 공적 광장을 감독하신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공적 광장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독립적인 심판관이시다. 구약성경은 보시고 아시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인 야웨에 대해 되풀이해서 말한다. 이것은 가장 보편적인 위미에서 사실이며 모든 개인에게 적용된다.

다. 하나님은 공적 광장을 통치하신다.

‘시장’은 객관화되고 일종의 신적인 자율적 능력을 부여받는다.

성경은 운명론이나 결정론에 빠지는 것을 피한다.

이사야 19:1~15은 애굽 전체를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는다. 거기에는 애굽의 종교, 관개(물대기), 농업, 어업, 섬유 산업, 정치가, 대학들이 다 포함된다.

에스겔 26~28장은 거대한 무역 도시 두로에 대한 일관된 탄식인 반면에, 29~32장은 애굽의 엄청난 제국 문화에 대해 비슷한 파멸을 쏟아 붓는다.

라. 하나님은 공적 광장을 구속하신다.

인간 역사는 영원으로 가기 위한 대기실에 불과하다.

성경은 공적 광장, 곧 죄와 부패, 탐욕, 불의,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와 직장에서 사는 인간 생활을 제시한다.

신약 성경은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속에 비추어, 특히 부활에 비추어 이 비전을 진척시킨다.

주의 일은 종교적인 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하듯 하는 어떤 일을 의미한다. 노예들이 하는 육체노동까지도 그 일에 포함된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동등한 성경적 확산을 가지고 둘 다를 행하는 지속적인 긴장 가운데 살 것을 도전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2. 공적 광장에 선교적으로 참여하기

하나님의 백성은 창조된 세계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는다.

가. 국가를 섬기도록 배치됨

그들은 그 모든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부가 된 공적 광장의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정부와 사회적 유익을 위해 건설적이고 양심적으로 일했다.

그들은 자신의 진실성을 지켰다.

나. 정부를 위해 기도하도록 명령받음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선교의 한 차원으로서 기도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다. 도시의 안녕을 구하도록 명령받음

샬롬은 갈들 또는 전쟁이 없는 평화를 넘어서 전면적인 안녕과 복지로 나아간다. 샬롬은 삶의 온전함과, 구약 성경이 언약에 충실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으로 포함시켰던 그런 종류의 번영을 말한다.

신약 성경을 살펴보면, 고위직 시 공무원인 동시에 기독교 신자였던 한 사람이 있다. 에라스도다.

라. 일상적인 일을 통해 생계를 꾸리도록 명령받음

그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렬히 기대한다는 영적 이유로 합리화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선을 행하라’는 바울의 작은 권고를 그저 ‘멋진 사람이 되라’는 말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공적 봉서와 자선 행위

일을 하는 것은 선하다.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선을 행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 모든 것 또한 하아님을 버리고 선교사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자신이 맡은 자리로 돌아간 빌립보 감옥의 간수, 섬유업을 계속한 루디아, 고린도의 시장으로 자신의 사역과 바울의 사역을 돕는 일을 어떻게든 병행한 에라스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훌륭한 설교자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은 훌륭한 남편이요, 훌륭한 아버지요, 훌륭한 시민입니다.

3. 공적 광장에서 선교적 대결

가. 우리는 다르게 살도록 부름 받는다.

우리는 거룩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다. 그것은 다른 것,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하나님 백성의 구별됨은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적 도적은 물론 공적 도덕도 포함된다.

소금과 빛은 선교적(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이면서 대결적(부패와 어두움에 도전하면서, 그 둘을 변화시킨다)이다.

공적 관장에서 실제로 성도-하나님의 구별된 백성, 하나님의 대항문화-로 살아야 할 성도는 어디에 있는가? 직장에서 일하고 중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알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도덕적 진실성은 기독교적 구별됨에 필수적이며, 결국은 공적 무대에서 기독교 선교를 하는 데 필수적이다.

나. 우리는 우상숭배에 저항하도록 부름 받는다.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유지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된 세상이다.

우상은 우리 주위에 특히 공적 광장, 직장, 일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탐욕을 우상숭배와 동일시한다.

경력, 지위, 성공 같은 우상숭배는 모두 공적 광장에서 가장 우세한 신들 중 하나인 소비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공적 광장에서의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끊임없는 영적 전쟁으로의 부르심이다.

매일 사는 공적 광장이 하나님과 복음에 반대하는 영적 실체들을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다. 우리는 고난당하도록 부름 받는다.

이 세상의 신들이 지배하는 공적 광장에서 단순하게 살고 일하고 증거하면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계속하는 사람들, 자신의 성경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구분되는 윤리적 기준을 따라 살기로 선택하는 사람들, 가이사나 맘몬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고난을 겪게 마련이다.

충실했기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

바울에게 고난이 닥치라는 것은 그가 위임받을 때부터 작정된 사실이었다.

고난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고백하는 자들에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 선교의 불가피한 대가였다.

바울의 고난은 그리스도 안에서 최고 절정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세상에 알리는 도구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4. 결론-공적 광장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개인적 메시지

한 손을 뻗어 사랑과 기도로 당신을 껴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기란 불안하고 스트레스 많은 일일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인 동시에 사탄이(일시적으로) 찬탈한 세계, 게다가 당신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세계인 공적 광장으로 매일 출근한다.

당신은 현 세계의 다니엘이다. 적어도 당신은 다니엘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이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제자다.

당신은 세상의 공적 광장에 살면서 일하지만, 인생에서 궁극적 목표와 가치를 또 다른 원천, 곧 하나님 나라에서 발견한다.

당신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당신이 매일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그 일이 하나님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은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필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 지구 자원에 대한 청지기직에 기여한다면, 그 일은 창조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새 창조세계에 차지할 자리가 있다.

예수님은 당신이 결코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당신의 삶이 열매를 맺도록 하실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 생각해 볼 질문

1. 이 장 첫 부분의 발문에 나온 네 개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제 그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지 검토해 보라. 다음 주에 당신의 일터로 돌아갔을 때, 그것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2. 공직에서 일한 신자들에 대해 조사한 다양한 성경적 자료들은 어떤 식으로 세속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영향을 끼쳤는가?

☞ 우리들은 훌륭한 남편이요, 훌륭한 아버지요, 훌륭한 시민이다. 공적 광장에 선교적으로 참여하기(국가를 섬기는 것, 정부를 위해 기도하는 것, 도시의 안녕을 구하도록 명령받은 것, 일상적인 일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것)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남편으로 아버지로, 그리고 시민으로 열심히 생활하는 것이 공적 선교의 일부임을 알게 되어 선교에 대한 거부감이 최소화 되었다.

3. 선교에 관한 책이 한 장 전체를 할애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일에 대해 논할 것을 예상한 적이 있는가? 이 장을 읽고 난 지금, 그것을 포함시킨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당신의 이해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가?

4. “모든 것이 선교라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 이 장을 읽고 나서, 당신은 이제 이처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말”에 대해 성경적으로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5. 당신이 직장 생활을 하는 공적 무대에 실재하는 사탄적 악과 영적 전쟁에 대해 더 분별력을 갖도록 당신은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

☞ 나의 공적 무대를 생각 해 보면, 크게 세 장소를 이야기 할 수 있다. 교회, 직장, 가정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예배의 장이라고 하지만, 항상 전쟁 속에 있다. 예배 중에 집중하지 못함, 교회 안에서의 직분에서 오는 갈등, 봉사와 헌금에서의 차이 등으로 인해 항상 악과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 또한 직장에서는 세상적인 논리 속에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가정? 제일 안정된 장소로 여겨지지만, 사실 제일 개인적인 욕망이 가득한 공적 장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배우자와 자녀를 가장이라는 명분 아래 마음대로 하려는 악의적인 권위? 우리에게 주어진 공적 무대는 항상 악과의 전쟁 중이다. 따라서 항상 말씀 안에서 깨어 있지 않다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악의 손에 안에서 놀고 있을 것이다.

6. 그 같은 문제들을 좀 더 성경적으로 다루고, 자신의 신앙이나 윤리적 입장 때문에 공적 무대에서 분투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기 위해 당신의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작성: 2019.9.14.

14장 찬송하고 기도하는 백성

선교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즐거워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1. 선교의 목표로서 예배

모든 선교의 목표는 살아 계신 한 분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지닌 궁극적 잠재력의 만족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교회의 궁극적 목표는 선교가 아니다. 예배가 궁극적 목표다. 선교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그분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 과정에서 최고의 기쁨을 발견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간을 이끌어옴으로써 궁극적인 행복과 복을 구하도록 하나님을 몰아가는 역동적인 신적 사랑이다. 따라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의 그 구속적 사랑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는 모든 열방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끄는 것이다.

2. 선교적 찬송

가. 찬송하도록 창조됨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찬송하도록 이스라엘을 창조하셨다고 단언한다.

수평적으로 온 땅에 수직적으로는 모든 세대

나. 찬송하도록 구속받음

다. 에베소서 1:3~14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며 사는 것은 우리가 은혜로운 하나님이신 그분을 말과 행동으로 예배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도 그분을 알고 찬송하게 하는 것이다.

라. 베드로전서 2:9~12

그리스도인 신자들이 이제 드릴 수 있게 된 ‘신령한 제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열방 가운데서 ‘선한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의 일부로 ‘선포하는’ 예배와 찬송이다.

하나님 백성의 찬송은 선교적이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찬양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찬송을 선포하는 공적 예배는 전도하는 능력이 있다.

마. 찬송을 통해 증거함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는 구속자 하나님의 찬송을 선포하기 위해 구속받는다.

예배와 증거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3. 선교적 기도

가. 열방과 구별된 표시로서의 기도

이스라엘은 열방을 향한 가시적 모델로 존재하도록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의 기도 생활은 선교적으로 의도된 것이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그들을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체를 증거하는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는 열방을 향한 선교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나. 열방을 향한 축복으로서의 기도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는 열방을 향한 선교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다. 열방의 우상숭배를 전복하는 기도

다니엘은 자신이 충실하게 섬겼던 왕 외에 어떤 시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에 직면해서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다니엘은 그 요구를 전복시켰다.

그들은 하늘과 땅, 모든 열방과 그 통치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력하게 천명하며, 또 담대하게 예수님께 순종하기 위해 국가에 불순종할 것을 기도한다.

4. 기도와 선교 사역

가. 예수님

예수님의 지상 선교는 세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등장해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확언해 주는 사건은 바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고투하고 시험받으실 때도,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치유 사역에 몹시 바쁘셨지만 기도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선교를 위해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신 것도 심야기도 후에 이루어졌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환경에 낙심하지 않고 모든 일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복음 사역을 맡긴다.

나. 사도행전

오순절이 되기 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가서 자신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뒤에 제자들이 보인 첫 반응은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다. 바울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믿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도의 능력도 알고 있었다.

5. 영적 전쟁으로서의 기도

기도는 진리, 의, 믿음, 구원만큼이나 우리의 갑옷과 무기의 일부다. 그와 같은 기도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복음을 위한 싸움에 기도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6. 요약

찬송과 기도는 하나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 중 두 가지

찬송과 기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교에 관여하는 두 가지 방편이 된다.

찬송은 우리가 창조되고 구속받은 목적이며, 모든 민족과 창조세계가 하나님께 찬송과 예배를 드리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데서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을 발견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선교적 과제다. 또한 우리는 기도가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 백성의 표지로 나타나면서 선교를 뒷받침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선교의 한 차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 생각해 볼 질문

1. 이 장을 읽고 나서 당신의 개인기도 생활은(기도에 대한 이해와 습관 면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 기도는 개인적인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의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다. 찬송하고 기도하는 백성? 속에 나를 포함시키고자 한다. 또한 선교에 대한 열방과 구별된, 열방을 향한 축복, 열방의 우상 숭배를 향한, 등의 거룩한 기도는 선교사님이나 목사님의 몫인 줄 알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몫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2. ‘선교적 기도’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물론 이것은 필수적이다)을 넘어 어떻게 확장되었는가?

3. ‘예배드리는 것’과 ‘선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교회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공적예배를 ‘구도자 예배’로 바꾸지 않으면서도,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선교적 차원(공적 예배를 이해하는 방식과 드리는 방식에서)을 강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작성: 2019.9.14.

15장 이제까지의 여정과 앞으로의 여정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있는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기대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그들은 어떤 목적 또는 사명을 위해 존재하는가?

1. 성경을 통한 우리의 여정

우리는 땅만큼 광범위하고(우리는 땅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모든 열방만큼 폭넓은(우리는 열방을 위해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대행자가 되어야 한다.)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는 모든 열방이 정말로 복을 받아야 한다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망이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며 사는 아브라함의 백성(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를 포함한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았다(5장). 우리는 구속받고 하나님의 구속 행위의 포괄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구속적 삶을 살도록 부름 받는다(6장).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변화된 삶으로 세상을 하나님께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7~8장). 우리의 부르심의 이 모든 차원에는 선교와 관련된 급진적인 윤리적 차원이 있다. 우리는 선교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내가 종종 말하는 것처럼, 성경적 윤리 없이는 성경적 선교도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선교는 살아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충성을 요구한다는 점을 보았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그분의 계시 및 구원의 위대한 역사적 행위들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알게 되었다(9장).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알고 말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메시지의 핵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더불어 우리가 선포해야 하는 말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문제다(10장). 성경적 복음의 넓이를 조사한 결과 우리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소식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그분 자신과 화해시켰으며,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며,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말하기 위해 나아간다(11장).

우리는 선교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자신이 선교의 많은 다른 측면을 성취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신 역사 속 모든 이의 대열에 합류한다. 보내고 보냄 받는 것은 교회의 삶과 선교의 근본적인 차원이다(13장). 그러나 세상 보냄 받는 교회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미 세상 가운데 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이 그들을 두신 사회라는 공적 무대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은 대부분 인간의 사회적・경제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직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를 공적 세상 안에서 공적 세상을 위해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곳이며(몹시 타락했지만) 새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구속하실 곳이기 때문이다(13장).

우리는 교회가 존재해야 할 좀 더 근본적인 이유, 타락한 세상의 구속을 넘어 영원토록 지속될 존재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는 것이며 모든 열방의 백성들을 그와 같은 목표로 데려오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성취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찬송과 기도는 선교 사역을 위한 배경 음악이 아니다. 찬송과 기도 그 자체가 선교적 행동이며 하나님의 선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다른 모든 것에 통합되어야 한다(14장).

2. 세상

가. 창조세계를 섬김

하나님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생태학적 ‘선교사역’으로 부르신다.

나.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은 과부, 고아, 난민, 재소자, 정신이상자,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소유권의 흔적을 지닌 땅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피조물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의 근본적인 일부로 보아야 한다.

다.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은 선교에 대한 우리의 동기를 시험한다.

성경적 선교신학의 궁극적인 출발점과 종착점은 하나님 자신의 선교가 되어야 한다.

라.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은 자비와 정의의 성경적 균형을 구현한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준다.

의인은 자가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와 준다.

3. 사회를 섬김

가. 예언자적 과제

우리는 그저 목사로 부름받다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는다.

나. 목회적 과제

바울은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에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도록 목사와 교사들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사역, 선교로서 참으로 중요한 그들의 사역은 교회 담장 바깥에서, 세상에서, 직장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다.

4. 복음

가. 복음의 완전성을 회복함

나. 개인적/우주적

창조세계(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유지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된 하늘과 땅의 모든 것), 그 다음에 교회(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그 다음에 개별 이방인 신자(너희도)다.

우리가 구원받아 창조세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신 창조세계의 일부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교회는 영혼들이 천국에 이를 때까지 머무는 영혼을 위한 쉼터가 아니라,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인 하나됨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 주는 곳이다.

다. 믿음/행함

성경에서는 믿음과 순종이 분리 되지 않는다.

우리를 구원하고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기는 믿음은 필연적으로 순종을 통해 그 실체와 진정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믿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라. 선포/시위

복음은 말과 행위가 필요하다. 복음은 메시지와 증거가 필요하다.

마. 수위성?

복음전도는 특정한 우선권을 갖는다.

복음전도는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과 관련이 있으며, 구원의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일을 하는 것이다.

5. 복음의 종으로서 우리의 겸손을 회복함

가. 누구의 증언이며 누구에게 하는 증언인가

나. 매춘복음

6. 복음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

복음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는 것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서 더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

가. 복음의 진리

나. 복음의 유일성

성경 신학은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오직 그분 안에만 있는 구원에 대해 자신 있게 확언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친다.

다. 복음의 능력

7. 교회

8. 회개하고 돌아오라.

기록된 예수님의 첫 번째 명령은 “가라”가 아니라 “회개하라”였다.

9. 가서 제자 삼으라.

신약 성경은 제자들에 의해, 제자들을 위해, 제자 삼도록 기록되었다.

10. 땅 끝까지

1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교적 백성은 예배하는 백성이어야 한다.

선교는 야웨의 새 노래-주의 이름, 구원, 영광, 전능한 행위를 축하하는 새 노래-를 부리고 나서 함께 하자고 열방을 초대하는 것이다.

예배는 또 다른 일을 한다.

작성: 201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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