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Ⅰ+Ⅱ

by 차돌쌤

‘로마서 강해Ⅰ’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가 2017년 3월 4일이다. 벌써, 2개월을 훌쩍 넘겼다. 로마서 강해는 긴 마라톤을 하는 것 같았다. 일순간에 독해해 낼 수도 없고, 총 28장으로 이루어진 예배였기에 말씀과 목사님의 기술이 쉽게 읽혀 내려갈 수 없게 만들었다. 때론 문장 속에 계속 줄을 긋고 있었고, 때론 읽다가 졸기를 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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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신약의 중요한 부분으로, 가장 순수한 복음이며, 단어 하나하나가 암송할 가치가 있고, 매일 영혼의 일용할 양식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희망하는 그리스도인은 매일 묵상해야 할 말씀이다. 하지만, 로마서는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의도적으로 등한시해 왔다. 왜냐고 묻는다면? 생활 속에 적용하기에는 나의 신앙생활이 아직 건조하기 때문인 듯하다. 로마서 강해를 책을 읽는 중에 나의 생활이 점검되었다. 이는 다른 도서를 읽을 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기도 하였다. 장별로 제공되는 말씀에 대한 적용은 바로 삶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용기의 부족으로 매일 독서로 끝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웠다.

처음부터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난 그리스도인 인가?’하는 딜레마였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고 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 난 매번 예수님은 자의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의 방식대로, 나의 의지대로,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나는 왜 매번 고뇌하며, 사랑에 굶주려 있는가? 그것은 독서를 하며 느낀 점 중에 하나로, 난 사람의 인정, 사람 속에서의 사랑에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있나? 난 분명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교회서만 집사로 통하고 있지만, 사회(직장)에서는 그저 착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알려 주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활 속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매일 묵상, 기도하는 생활, 말씀 읽기, 차별된 삶, 삶의 목적 등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많은 의무 속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라도 여겨졌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율법에서 벗어나고 나서 로마서에서 감격과 기쁨을 기술하였다. 하지만, 우리 아니 나는 하나님의 율법 속에서 실행하지 못하는 죄인으로서 계속된 고뇌를 하고 있었다. ‘법에 따라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율법 아래 인간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 아래 율법?’ 나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율법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위해 율법이 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삶이 어렵다. 하지만, 나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이 만들어진다고 역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율법은 구속이 아니라, 은혜며 사랑인 것이다.

로마서를 책을 읽으면 매번 주어지는 말씀 속에 깨달음도 컸지만, 삶 속에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바울은 이 서신서를 작성하면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선교 여행을 하면서, 본인의 글을 통해 준비된 성도를 원하였고, 공동체 삶 속에서 구체적인 적용의 예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신학적인 논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성장하기를 추구한 듯하다. 그럼 나는?

로마서를 통하여 한 번도 말씀의 전체적인 맥락과 생활 속에서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우선 두꺼운 로마서 강해는 독서의 의지력을 실험하게 하였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돌파해야겠다는 의지를 줌과 동시에 생활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믿음의 2세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하는 또 하나의 삶의 도전을 나에게 던져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생활하여, 그것을 나의 자녀들과 믿음의 동역자에게 바울처럼 편지를 쓸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17.05.14.

로마서 강해Ⅰ을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심 하나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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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Ⅰ~Ⅱ’는 우선 내용적인 면에서 광대하고, 독자에게 인내가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도서인 듯하다. 솔직히 도서의 내용의 흥미보다는 과제의 하나로써 읽어야 하는 힘듦이 아마도 더 힘들게 했음을 인정한다. 책을 덮고, 며칠간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쁜 일정이기도 했지만, ‘로마서 강해 Ⅱ’의 내용이 정리되지 않고, 그냥 멀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담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다시 자리에 앉아서 ‘로마서 강해 Ⅱ’의 책장을 넘기며, 정리하려 한다.

‘로마서 강해 Ⅱ’의 첫 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며 사시기를 기도하며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된 당신께 이 책을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음을 오늘에서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의 구속?, 율법에서 해방?,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비교할 수 없는 영광? 이 세 가지를 목사님께서는 ‘로마서 강해 Ⅱ’를 통하여 독자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줄인다면 ‘우리가 살아 있는 원인’이 아닐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예수님의 구속을 당연시하여, 그가 가야 할 길로 그냥 여기며 그 구속의 의미를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는데도, 예배 혹은 신앙생활의 구속 속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두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서 매일 감사해야 할 삶이 언제부터인가 지쳐서 언제 이 삶이 끝나나 하며 푸념하면서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의 자기 동족의 구원에 대한 근심으로 시작하여 이방인과의 비교를 통하여 계속해서 사고의 변화를 위해 외치는 연설문인 듯하다. 바울이 근심한 이유는 우리의 이 나쁜 삶의 습관이 사망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주신 은혜(특권)는 하나님의 은혜로 양자 됨, 영광, 언약들, 율법 제공, 성전 제사, 약속들, 선조들, 육신 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서 탄생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왜? 은혜(특권)의 삶 속에서 살지 못하는 것일까?

바울은 또한 3가지 명제를 제안하였다. 첫째, 이스라엘과 모든 비이스라엘을 구분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인 것처럼, 이스라엘 안의 육적인 이스라엘(명망)과 영적인 이스라엘(구원)을 구분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둘째, 하나님의 선택의 유일한 토대는 인간의 선행과 전혀 관계없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다. 셋째,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적인 의지대로 원하는 자를 선택하셔서 은총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긍휼에 있어서 절대 자유로우신 주권을 행사하신다. 따라서 아무도 그것을 요구할 수 없다. 이러한 긍휼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상속할, 영광의 공동 상속자라는 진리와 우리는 진노의 그릇들에 대해 교만하거나, 긍휼의 그릇들로서 하나님께서 당연히 차지할 것을 차지한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

복음을 받아들임에서 시작된다. 때라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

(보내심-전파함-들음-믿음-고백함),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복음을 듣고, 들어서 알고 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순종하지 않고 있다.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은 듣고 알면서도 그것을 완고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나와는 다른 양 모르는 체 하는 것은 아닐까? 믿는 사람은 복음보다는 자신의 삶에 안 믿는 사람은 예수보다는 세상의 쾌락에 더 빠져 있다.

바울은 인정만 해 주는 사역자가 아니라 충고도 해 주는 사역자였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 주면서 회상시킬 것은 회상시키는 사역자, 사역훈련을 통하여 계속해서 ‘사역’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진정 하나님 앞에서의 ‘사역’은 무엇일까? 난 어떤 ‘사역’을 하는 것인가? 혹은 난 ‘사역’을 정말 감당하고 있는 것인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위선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자신 안에서만 맨 도는 일상을 ‘사역’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구속을 통하여 율법에서의 해방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난 진정한 ‘사역’의 길을 떠나야 한다? 진정한 ‘사역’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 중심일 것이다. 그 기준을 가지고 ‘사역’의 의미와 행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인가? 힘든 사역훈련의 여정 속에서 이 문제의 답을 찾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의 중심의 ‘사역’을 통하여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싶다.

2017.07.19.

‘’로마서 강해Ⅱ‘을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사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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