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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어 Nov 23. 2022

커피의 사회화 기능

커피가 있어야 솔직해지는 나



" 언제 커피라도 한 잔 해요." 이 것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무서워하는 내가 조금이라도 관계라는 것을 맺어보고자 나름 신경 써서 던지는 인사말이다. 정확히 언제 만나자고 말하기엔 아직 부담이 되는 사이일 때 이 인사말처럼 다정하면서도 부담 없이 건넬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그 '언제'가 특정한 어느 날로 정해지면 비로소 나와 상대방의 거리는 훨씬 줄어들고 그동안 숨겨두었던 나의 수다 본능이 폭발한다. 누군가와 친해지기에 가장 합리적인 시간 일명 '커피타임'이 너무 좋다.


 아이들의 등교가 끝나고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 커피 한잔 하자고 친한 사람들을 불러낸다. 몇 달 전부터 아파트 내에 커피숍이 생겨서 그곳은 나와 지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각자의 커피를 테이블에 두고 요즘 나의 생활은 어떤지 아이들의 공부, 끝없이 오르는 물가, 나날이 약해지는 체력, 앞으로 우린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지 답이 없는 이야기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고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좋다.


 5학년 사춘기 딸 때문에 아침부터 싸우고 나온 어느 엄마는 이야기를 하다가 울컥해서 눈물을 보이고 부끄러움에 애써 커피를 호로록 마신다. 갑자기 나타난 남편의 이석증을 걱정하며 한숨이 끊이지 않는 다른 엄마도 커피를 마시며 가슴 한구석을 달랜다. 나 또한 발목 인대가 늘어나서 깁스를 하게 된 둘째 아이를 휠체어로 등하교시키는 내 웃픈 상황을 이야기하며 커피를 들이켠다.



  우리는 모두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힘듦을 이야기한다. 커피의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자극해서인지 아니면 수다를 떨어서인지 그 순간만큼은 정신적인 피곤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다. 청량음료나 전통차를 마신다면 이토록 솔직한 이야기가 우리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레모네이드나 대추차를 마시며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겐 쉽게 그려지지 않는 어색한 풍경이다.






  솔직함을 끌어내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에는 '술'이라는 최종 보스가 있다. 그러나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술이 일단 식도를 통과하면 내 몸은 100미터 거리에서도 식별 가능할 독보적인 홍익인간으로 변해버리고 정신은 몽롱해져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술 마시며 친해진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술에 쥐약인 나는 정말 뼛속까지 친하지 않으면 술자리를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내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해지는 시간으로는 커피타임이 제 격이다.


술자리에서 느끼는 정신없음과 내 몸의 부끄러운 변화도 없이, 정리된 분위기에서  클래식이나 인디음악을 들으며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 술자리처럼 2차, 3차로 이어질 필요도 없고 술기운에 부리는 객기도 없으며 주사 부리는 사람도 없다. 대신 커피가 가진 중독성과 깊은 향에 취해 사람들과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이야기까지 다 쏟아낼 수 있는 마법의 순간이다.



 커피가 있기에 사람에게 다가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커피는 소심한 나 자신을 사회화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내일도, 오며 가며  알게 된 동네 주민과 커피타임을 약속해 놓았다. 같이 눈 맞추며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다가올 커피타임이 벌써 기대되고 미소가 지어진다.



 그녀는 또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커피#커피타임#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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