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추운 겨울이 되면 갱시기가 생각난다. 이름도 특이한 갱시기는 경상도지역에서 먹는 일종의 김치 콩나물 국밥이다. 이름이 너무 신기하고 소탈해서 잊히지 않는다. 어릴 적 외갓집에 놀러 가면 어른들은 얼큰한 갱시기를 한 냄비 가득 끓여서 먹었다. 특히 큰 외삼촌은 갱시기를 엄청 좋아하셔서 갱시기를 떠올리면 외삼촌 얼굴이 먼저 생각난다.
갱시기에는 멸치육수에 신김치와 콩나물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찬밥과 고구마, 떡첨을 넣어서 끓이면 점성이 생기고 단맛이 추가된다. 엄마가 마땅히 먹을 게 없을 때 끓여주던 그 갱시기가 생각나서 이번 설 연휴에 갱시기를 먹자고 엄마에게 말했다. 부지런히 재료를 넣고 정성스럽게 끓였는데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아.. 고구마 넣는 걸 깜빡했다고 한다. 고구마 하나가 빠졌다고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는데... 싱거운듯해서 국간장과 고춧가루를 더 넣고 간 마늘도 넣었지만 특유의 얼큰함과 걸쭉함, 칼칼함이 전혀 입안에 맴돌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아쉬운 마음에 급하게 다시다를 찾았지만 엄마집엔 다시다가 아예 없다.
짠맛만 남은 갱시기를 예전 그 맛을 떠올리며 애써 먹는데 허탈했다. 추억과 전혀 동떨어진 맛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맛이 덜한 신김치? 깜빡하고 빠뜨린 고구마? 마법의 가루 다시다?
미각이 둔해진 엄마의 요리 솜씨와 예전과는 다르게 변했을지도 모를 내 입맛... 게다가 세월이 변한 탓일지 모른다.
그땐 자주 먹다 못해 질려서 또? 갱시기야!라고 불만을 쏟아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또, 갱시기!'가 너무 그립다. 어떻게 그 맛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모가와 식당의 요리탐정이 실제로 있다면 20세기 내 배를 책임졌던 그 갱시기를 의뢰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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