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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어 Feb 09. 2023

대중교통 공포증 탈출

9살과 성장 중


 방학 한 달이 지나니 그럭저럭 버티던 오전 시간이 힘들어졌다. 방학중 방과 후 활동도 끝나서 오전에 외부활동이 없어진 9살 아이는 tv리모컨을 손에서 놓을 줄을 몰랐다. 더는 안될 것 같아서 아이와 함께 잠실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일단 가자고 계획은 세웠는데 덜컥 걱정이 앞섰다.


 아이와 함께 하는 대중교통엔 일종의 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포비아(ft. 유아)라고나 할까.

 아이가 4,5살 무렵 서울에 있는 아빠의 직장 어린이집을 다녔다. 등원은 아빠와 함께했고 하원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날들도 제법 있었다. 주로 버스를 이용했는데 별로 승객이 없던 버스에 날이 갈수록 승객이 많아졌다. 어린아이를 태우고 의자에 앉히고 조용히 시키기 위해 사탕을  손에 쥐어주며 맘충소리를 듣지 않고자 초긴장 상태를 내리는 순간까지 유지했다. 내릴 땐 한 손에 아이를 안고 교통카드를 찍으며 간신히 하차계단을 밟는다. 이 무서운 일련의 과정들은 나를 공포감에 들게 했다. 어린 유아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얼마나 사람을 겁나게 하는지 겪어보지 않은 자는 모를 일이다. 급하게 버스를 모는 기사는 내리기도 전에 문을 닫고 출발하기도 했다. 6살부터 집 근처 유치원을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어져서 공포증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공포에 맞서고자 아이를 믿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스스로 버스에 카드를 찍기로 했다. 버스가 다가오자 아이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서 카드를 찍었다. 내릴 때도 카드를 찍고 기사아저씨에게 인사를 깍듯이 한다. 잠실몰과 빈센트발의 전시를 관람하고 지쳐서 쉬는 찰나에 집에 갈 땐 지하철을 꼭 타야 한다며 강조했. 근처에 아빠의 차가 있는데도, 자기는 지하철이 중요하다고 얘길 한다. 아... 5호선 천호역에서는 빈자리가 없을 텐데...

 장애인석 앞 손잡이를 꼭 잡고 서서 비어있는 한자리를 망설이던 할아버지께 양보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서울이 어디야?라고 묻는 천진함에 웃음이 나왔다. 하남은 어디야? 왜 이리 작아? 교통카드로 정말 편의점에서 과자도 살 수 있는 거야? 재잘재잘 얘기하는 녀석이 귀여워서 양갈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의 우려와 달리 아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예전처럼 힘들다고 징징대는 모습도, 지루하다고 짜증 내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엔 더 먼 곳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녀오기로 약속마저 했다. 사소하지만 나름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내가 잊고 있던 시간 동안 녀석은 많이 성장해 있었다. 언제 크나 한숨이 나오다가도 제법 자란티가 날 땐 뭔가 모를 뿌듯함도 느껴진다. 몇 년 뒤에 중2병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래서 두렵기에 지금의 모습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진다.









#대중교통#9살#방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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