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시간 전 크라잉넛이 내가 사는 동네에 왔고 그야말로 무대를 찢고 가버렸다. 집 근처 잔디광장 특별무대에 그들이 온 것이다. 2007년 펜타포트 이후로 처음 본 것인데 전혀 낯설지 않고 매일 봐온 것만 같다. 스무 살, 그들을 쫓아다니며 말 한번 걸어보려고 어슬렁 거리던 내 모습이 본능적으로 살아났다. 캡틴락에게 물을 건네고 좋아한다고 겁 없이 떠들던 치기 어린 내 모습말이다. 사실 2000년 크라잉넛의 공연은 그다지 훌륭한 게 아니었다. 악기 소리도 그랬고 보컬도 악에 받친 분노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 젊음과 거침없는 무대가 좋았다. 한 명 한 명 눈 맞추며 연주하는 캡틴락이 좋았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리숙하고 귀여운 모습은 반전이었다.
언제였을까. 어느 대학교축제에서 공연이 끝나고 쉬고 있던 캡틴락에게 사인을 받으며 내 이름을 얘기하며 날 기억해 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는 "저희 공연 보러 주말에 드럭으로 오세요. 오시면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인사를 건네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주 주말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에, 그것도 홍대를 찾아갔다. 캡틴락이 내게 한 약속을 지키기를 바라며 꿈의 장소 드럭으로 돌진했다. 특유의 퀴퀴한 공기와 가득 찬 사람들의 냄새와 함께 크라잉넛의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그들을 따라가며 캡틴락에게 생수를 건넸다.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많은 팬들에 둘러싸인 그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고 첫 서울 상경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일주일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내가 있던 청주에 또 행사를 하러 왔다. 이번엔 캡틴락에게 말을 붙여보리라 또 겁 없이 그에게 갔다. 진상 같은 거침없는 내 모습 때문인지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매점에 같이 가자고 했고 그와 함께 둘이서 짧은 길을 걸었다.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내가 뭐라도 된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는 내가 고른 아이스크림을 계산해 줬다. 맛있게 드세요라며 씩 웃어주던 모습 때문에 한동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나의 20대 초반을 가득 채웠던 그들을 오늘 다시 보다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젠 분노보단 함께 즐기며 노래하는 보컬에, 너무나 멋진 연주까지 갖춘 공연의 대부가 되어있었다. 그 시절 내가 보는 눈이 정확했었구나 다시 한번 느끼며 미친 듯이 즐겼다. 이젠 슬램도, 제자리 점프도 못할 만큼 떨어진 체력이 아쉽지만 내 안의 본능은 다시 살아났다. 20대의 말 달리자와 40대의 말달리자가 이리 다를까.
40대에 듣는 밤이 깊었네는 20대의 그것보다 두 배가 서글퍼졌다.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 (드럭에서 늘 같이 공연하던 레이지본은 아직 홍대에 있을까..큰 푸른 물이 아직도 기억난다 )
어쨌거나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나를 또 미치게 하는가
오래오래 보자
크라잉넛
캡틴락
경록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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