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우산이 없다면
매일 아침이면 습관처럼 날씨를 확인한다. 비가 오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조카에게 우산을 꼭 챙겨가라고 알려준다. 사실, 조카가 준비성이 철저한 편은 아니다 보니 빼먹은 준비물은 없는지 늘 잔소리를 여러 차례 하게 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몇 번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전화가 왔었다. 그때마다 나는 달려가 준비물을 건네줘야만 했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 날이 있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가서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런데 가끔... 이게 맞는가 싶다.
물론,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비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챙겨가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빼놓고 가면 솔직히 좀 짜증이 난다. 심지어 어떤 때는 전날 저녁에 우산을 꺼내서 가방에 미리 넣으라고 건네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믿으라고, 알아서 챙긴다고... 갈수록 말대꾸를 하는 통에 이제는 말만 해주고 행동을 하나하나 관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날도 아침에 어김없이 날씨를 확인했고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우산 꼭 챙겨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등교를 했고 학교 수업이 끝날 쯤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슬비도 아니었다. 당연히 우산을 챙겨갔겠거니 생각했던 마음과는 달리 전화가 왔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거다. 그땐 화가 났다기보다는 오늘은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려주고 싶었다.
한 번쯤 비를 맞아도 큰일 나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언젠가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날은 사실 폭우에 가까웠다. 학교가 끝나고 현관 앞에 엄마들이 우산을 가지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엄마를 찾아봤지만, 엄마는 없었다. 나는 당연히 비를 쫄쫄 맞고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엄마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지만,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평온하게 계셨다. 그래서 내가 왜 다른 엄마들은 다 우산 가져왔는데 왜 엄마만 안 가져왔느냐고 따져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것 같다.
한 번쯤 비 맞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라고...
가끔, 조카가 내 자식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점점 대답은 명확해진다. 분명, 달랐을 거라고. 그건 내 자식에게 더 잘해준다는 말이 아니라 어쩌면 더 엄격하게 대했을 거라고. 조카에게는 엄격하게 대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혹여, 안 된다고 하면 서운해할까도 싶고. 혹시, 조카를 위해 한다는 나의 말과 행동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건 괜찮겠지만 내가 조카에게 라면을 끓여줄 때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고... 조카가 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그나마 줄이고 줄여서 주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조카가 나와 살기 전엔 더 자주 라면을 먹었다는 걸...
그날 조카가 우산이 없다고 전화가 왔을 때 짧은 통화 중에도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우산을 가지고 갈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다. 오히려 조카가 집에 오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하는 게 잘하는 걸까. 왜 이렇게 미안해지는 건지. 그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하며 문 앞에서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몇 분 후 문이 열리고... 물에 젖은 몸으로 조카가 들어왔다. 걱정했던 내 마음과 달리 다행히 조카는 웃고 있었다.
그렇게 조카는... 난생처음 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