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밥보다 아침잠을 자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습관이 안 되어 꼭 탈이 났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아빠를 위해 아침밥을 차렸지만 굳이 먹지 않는 나에게 아침밥을 먹을 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하긴,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로 달려가기 바빴던 나에게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이런 나와 달리 조카는 꼭 하루 3끼를 모두 챙겨 먹는다. 점심에 배 터지게 먹고 소화가 덜 되어 저녁을 굶는 나나 오빠와는 달리 조카는 저녁밥을 따로 먹어야 했다. 주말에 늦게 일어나 곧 점심시간이 다가온다고 해도 아침밥과 점심밥은 엄연히 별개였다. 그렇게 난 조카와 살기 시작하면서 내 생활패턴 대신 조카의 생활패턴에 맞춰 아침밥을 차려야 했다.
사실, 나는 10년이 넘게 밤낮이 바뀐 올빼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통 새벽 늦게 잠을 자서 오후쯤에 일어나는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생활패턴을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오랜 시간 굳어진 습관은 언제나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결국, 새벽 4-5시쯤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잠시 일어나 밥을 챙기고 다시 잠을 자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안 깨고 쭉 자는 게 소원인 적도 있었다. 주말이 되어 오빠가 집에 있을 때면 내가 아침을 차리지 않아도 되었지만 조카는 습관처럼 내 방을 찾아 아침밥을 찾았다. 오늘은 주말이니까 아빠한테 차려달라고 해!라고 해도 요지부동. 그렇게 나는 어느새 조카의 아침밥을 책임져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조카의 질문이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오늘 점심밥이 무엇이냐 묻고, 점심시간에는 저녁밥이 뭐냐고 묻는다. 물론, 저녁시간이 되면 다음날 아침밥이 무엇이냐고 묻곤 했다. 그 질문이 서서히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메뉴를 매번 생각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1번 먹은 음식은 2번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 내내 김치찌개나 카레라이스만으로도 충분히 잘 버티는데 조카는 한번 먹으면 금세 실증내고 다른 음식을 찾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뭐 먹냐고 묻는 말에 항상 똑같은 대답을 했다. 밥과 김치만 먹을 거야. 물론, 그렇게 먹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처음에는 온갖 정성을 쏟는다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맛난 밥을 차렸고,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점심식사를 대령했으며 위치추적기를 보다가 학원에서 나오는 중이면 얼른 저녁을 차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숟가락을 들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금도 저녁밥은 그렇게 현재 진행 중이다.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나면서 조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거나 식빵에 잼을 발라먹을 줄 알고 나서부터는 나를 찾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에 밥 정도는 데워먹을 줄 알게 되고, 아침에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일어나서 찾아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의 아침이 한결 편해진 부분은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도 남아있었다.
진짜엄마들은 아침이면 따뜻한 밥과 국에 맛있는 반찬들로 아침밥을 차려주겠지?
아침밥을 거르고 학교에 가면 하루종일 엄마 마음이 불편할 거야라면서...
그런데 나는 아침 한 끼 굶는다고 별일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진짜엄마가 라면을 먹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짜엄마인 내가 라면을 먹일 때면 왠지 그래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정성을 쏟아서 만든 음식을 조카가 맛없어할 때가 있다. 또는, 밥 차리는 게 너무 귀찮아서 대충 차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린아이에게 섭섭하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먹지 마!라고 하고 싶기도 하다. 한 끼쯤 굻어도 돼!라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자주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것도 같다. 사실, 그게 진짜엄마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자식 입장이었던 나도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고 특별히 섭섭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에 먹을 음식으로 크림파스타를 준비해 두었다. 소스를 만들어두었으니 면만 삶아 넣으면 된다. 아침은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주로 먹고 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국을 데워 밥을 챙겨주기는 한다.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오니 저녁만 신경 써서 준비하면 되는데 그 하루의 한 끼를 준비하는 것도 나에겐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가끔 귀찮게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나에게 밥 챙겨주는 것이 귀찮은 적이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끔, 정말로 묻고 싶다. 전국에 계신 조카를 키우는 고모나 이모 그리고 삼촌들에게. 아니면, 손자를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당신들도 진짜엄마가 아니라서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느냐고... 아이의 밥을 매끼 어떻게 챙기느냐고... 또, 반찬투정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훈육차원에서라도 먹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엄마가 한 말은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한 말은 상처로 남으면 어떻게 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