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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 지겨워지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먹고 싶은 타이밍에 먹어야 맛있다.

by 김이름

많은 사람들이 치킨을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했었다. 혼자 살 때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단연 치킨이었다. 치킨 한 마리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영화 한 편 감상하던 순간은 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자 평생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일 거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치킨만은 지겨울 수 없는 음식이라고...


나는 가끔 조카에게 묻는다.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진심 그것이 궁금할 때도 있고... 때로는 형식적으로... 묻곤 했다. 조카에게 맛있는 걸 사줘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좋은 고모인 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조카는 늘 정해진 답처럼 치킨을 말했다.


그렇다.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이다.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고모와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으로 쿵작이 맞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조카와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더라도 내가 먹고 싶은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맛있다는 걸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치킨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날은 떡볶이나 피자가 더 당기는 날도 있다. 이번에는 떡볶이나 피자를 조카가 말해줬으면 하고 내심 바랐으나 조카는 늘 요지부동이었다. 언제나 오로지 치킨이었다. 가끔은 치킨을 원하는 조카의 마음을 외면하고 내 마음대로 음식을 주문할까도 싶다가도 이러면 나쁜 고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결국 치킨을 시켰다.


그때마다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진짜엄마였다면 아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이 흔쾌히 동의를 했겠지. 그런데 나는 가짜엄마라 이렇게 미련이 남는 건가?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결국 내 인생에서 치킨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심지어 조카가 좋아하는 치킨은 내가 좋아하는 치킨도 아니다. 나는 BHC의 순살뿌링클 치킨을 좋아하지만 조카는 굽네의 순살고추바사삭 치킨을 좋아한다. 순살이라는 공통점뿐 사실 전혀 다른 성격의 치킨이다. 물론, 순살이라는 부분도 공통점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뿌링클은 닭가슴살로 만들었고, 고추바사삭은 닭다리살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퍽퍽한 식감을 좋아하고, 조카는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우린 참 많이 다르다.


언젠가 중국집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오빠와 난 짬뽕을 시켰고, 조카는 짜장면을 시켰다. 그런데 짬뽕 위에는 짜장면에서는 만날 수 없는 왕새우가 한 마리씩 올려져 있었다. 오빠는 왕새우를 보자마자 조카 앞으로 놓아줬다. 그 모습에... 입맛을 다시던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그 왕새우를 먹으면 참 없어 보인다고 생각한 이유는 뭘까? 오빠는 아빠니까 저렇게 흔쾌히 양보를 하는데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나도 새우를 참 좋아하는데 말이다. 결국, 내 앞의 왕새우는 조카 앞으로 향했다. 배려가 넘치는 고모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 친구와 밥을 먹는데 주문한 파스타 위에 새우가 2마리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내 몫의 새우를 먹었고, 친구는 새우에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조카에게 양보해 줬던 그 왕새우가 생각나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들이라면 자식이 먹는 게 더 행복하겠지?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웃으며 너 다 먹으라고 나에게 새우를 양보해 줬다. 역시, 새우는 맛있었다.


얼마 전,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순살뿌링클치킨 쿠폰을 보내줬다. 갑자기 혼자 살던 시절이 생각났다. 치킨을 온전히 내 것으로 두고 영화 한 편 보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던 그 순간을 말이다. 아마, 다른 때였다면 메뉴를 바꿔 후라이드 치킨을 시키거나 해서 조카와 나누어 먹었을 거다. 그런데 유치하지만 이 쿠폰만은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조카를 위해 나름의 최선은 다하나 적어도 몇 순간만큼은 나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그러다 나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어차피, 이 시간 조카는 훨씬 맛있는 걸 먹을 테니 혼자서 내가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 먹는다고 해도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난, 아주 오랜만에 자유를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순살뿌링클치킨을 영접했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전에는 한 마리 시키면 2번에 나눠 먹곤 했는데 한 마리를 한 번에 다 해치워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동안 많이 배가 고팠나 보다. 음식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했던 배고픔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기꺼이 맛있는 음식을 양보한다. 물론, 나도 대부분 조카에게 양보를 한다. 하지만 가끔 나도 먹고 싶은 게 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내가 진짜엄마가 아니라서 이런 고민이 드는 건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아마 우리 엄마였더라도 나에게 기꺼이 양보를 해줬을 거다. 나에게 양보해 줄 때마다 엄마도 다른 음식이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면서 나에게 양보했던 걸까? 새삼, 궁금해진다.


가끔, 정말로 묻고 싶다. 전국에 계신 조카를 키우는 고모나 이모 그리고 삼촌들에게. 아니면, 손자를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당신들도 진짜엄마가 아니라서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느냐고... 먹고 싶은 게 다르면 어떻게 하느냐고... 각자 원하는 걸 하나씩 주문해서 먹는다는 뻔한 대답은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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