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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돼! 를 외치기 시작한 순간

서로에게 익숙해지기까지

by 김이름

조카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갈등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이전에는 모든 요구사항에 언제든지 좋다고 했던 고모가 같은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안 된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참 좋아했다. 부모님을 비롯해 다른 어른들은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셨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거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무리 내가 잘못한 행동이라도 잔소리를 듣는 게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한 번도 내가 듣기 싫은 말씀을 하신 적도 없었고, 언제나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제일 좋았다.


조카를 보면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이에게 올바른 행동을 가르치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아이에게 잔소리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럼 나만이라도 조카에게 무조건 오케이를 하는 사람으로 남자고 마음먹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게 아이를 버릇없게 키운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없었다면 더욱 냉혈인간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살 때 가끔 오빠가 조카를 나한테 맡길 때가 있었다. 조카가 우리 집에 오면 나는 늘 조카에게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걸 물었다. 그리고 며칠 내내 먹고 싶은 걸 다 사줬다. 물론, 게임도 하루 12시간씩은 했던 거 같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해서 롯데월드에 데리고 가고,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짱구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다. 나는 아이들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소리치는 광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에 대고 등장인물들에 소리치고, 손뼉을 치고, 함께 절망하고, 좋아했다. 조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은 당연히 건강에 좋은 음식일 리 없었다. 햄버거부터 피자니 치킨이니 온갖 기름진 음식들이었다. 그래도 내 입에서는 단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조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주었다. 그 덕분에 조카가 우리 집에 오는 걸 비교적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함께 산다고 했을 때도 조카는 좋아했다. 사실, 왜 함께 살게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고모가 함께 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다 할 줄 알았을 거다. 그러나 나는 함께 살게 된 후로는 더는 모든 걸 하고 싶은 대로 놔둘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조카에게 “안돼”를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자신이 기억하는 고모 모습과 함께 살게 된 고모 모습에서 조카는 적잖이 갈등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지 않는 짜증을 나에게 내기 시작한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지적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는지 어떤 때 조카는 화를 내기도 했다. 그땐 왜 고모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줄 순 없었다. 아직 어렸고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처음 한 1년 정도는 조카나 나나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걸 들어주던 고모는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누구보다 옆에서 지적하며 안돼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햄버거 대신 채소 듬뿍 넣은 비빔밥을 내밀고, 게임에 너무 집중하면 핸드폰 압수한다고 경고를 하며,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당장 분노 폭발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떤 갈등도 없이 관계를 맺은 건 아니다. 물론, 이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를 거다. 아마도 조카와 나만 느낀 부분일 거다. 물론, 조카에게 아직 물어보진 못했다. 달라진 고모를 어떻게 생각했느냐고...


가끔은 조카를 위해 해준 말이 상처로 남진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받아들이는 조카가 내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물론 망한 거다. 아직은 제법 착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언젠가는 저 녀석도 삐뚤어지는 순간이 올 거다. 그때의 난 더 크게 무장하고 단호하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깨갱 하며 조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분명한 건, 조만간 중2병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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