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랑주리와 카페
파리의 불랑주리(‘빵집’을 의미) 중에서도 가장 기대를 했던 불랑주리가 있었다. 숙소에서 거리가 꽤 있는 곳이라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파리에서 지하철을 처음 타보는 거라 나가기 전부터 무섭기도 하고 긴장도 됐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아침 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은 많았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조금 놀라기도 했고 좋았던 점 하나를 말해보자면, 자리가 없어서 일어서 있었는데 바로 앞에 앉아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나와 눈이 마주치니 활짝 웃으시며 미소를 지어주신 게 인상적이었다. 와인 잔을 부딪칠 때도 눈을 마주 보는 게 예의인 프랑스라는 나라의 사랑스러운 문화인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미소로 화답을 했다. 아침부터 작은 행동에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유명한 불랑주리답게 이미 입구 밖까지 줄이 서 있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있어서 기대가 됐다. 내가 갔던 불랑주리의 시그니처는 흑임자 패스츄리와 흑임자 에끌레어였다. 주문 순서가 되었을 때 영어와 불어를 섞어 주문을 했다. “봉쥬~ 원 세사미 페스츄리 엣(그리고) 원 세사미 에끄레허 씰 부 쁠레(영어에서 please 쓰는 거랑 똑같음)”
원래는 센 강에서 빵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공원에서 빵을 먹었다. 먼저 흑임자 에끌레어부터 먹었다. 첫 입은 “어라?” 싶은 맛이었고, 한입을 더 먹었을 땐 “오 맛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러면서 어떤 나라든 프랑스 디저트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에끌레어로 또 한 번 깨달았다.
오늘 갈 미술관은 피카소 미술관이다. 피카소는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이기에 가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프랑스 미술관답게 피카소 미술관 또한 미술관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많았다. 미술작품을 보러 가는 길도 특이했다. 긴 복도가 있었고, 그 복도에는 프랑스어로 적힌 문장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고, 미술에 대한 상식이 많이 없는 내가 생각하기에 피카소는,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의 색깔로 어느 곳에 얽매이지 않고 특이하게 잘 전달하는 화가라고 생각했다. 틀을 부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그래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화가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곳곳에 작고 큰 공원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피카소 미술관에 가는 길에도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래서 미술작품들을 다 보고 미술관에서 나와 그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파리지엥들이 빵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는 비둘기들이 빵가루를 쪼아 먹고 있었다. 나도 그 어디에 자리를 잡아 미술관에서의 일을 잠깐 생각했다. 피카소에 대한 나의 생각과 피카소 그림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다음은 어느 카페를 갈지.
바로 근처에 파리지엥들만 간다는 카페가 있었다.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그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카페에 앉을 자리가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을 주셨고, 나는 플랫 화이트로 주문을 했다. 주문을 프랑스어로 했더니 직원분이 프랑스어로 뭐라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잠깐 당황을 했다. 직원분이 그걸 아셨는지 나에게 “regular milk?(일반우유)” 영어로 다시 물으셨다. 그제야 알았다. 어떤 종류의 우유를 마실 건지 여쭤보셨다는 걸. 주문을 프랑스어로 했음에 그리고 프랑스어로 질문을 받았음에 만족을 했다. 비록 못 알아들었지만..
카페에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책을 읽는 사람들, 노트북 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한국 카페와 여느 다를 게 없었지만 프랑스 카페만의 소박하고 사장님의 감성이 잔뜩 묻어있는 프랑스 카페가 왠지 더 매력 있게 느껴졌다.
‘틀’ = 한계
내가 여행을 다짐했던 이유 중 하나인 이 ‘틀’. 나는 이 ‘틀’이 너무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나만의 틀 혹은 한계가 만들어졌다.
이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계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한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문제였다.
사회가 만든 틀과 그 틀을 벗어나면 실패자라고 인식하는 이 사회. 그리고 그 사회 안에서 애초에 도전을 포기해버리는 나를 보며 한심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그런 답답함이 이어지던 중, 나는 여행을 다짐했다. 내가 정한 경계 속에서 아무 조건 없이 자유롭게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냈고,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만의 한계와 틀.. 여전히 두렵다. 두렵지만 뛰어넘어볼 용기. 그 용기만 나에게 있으면 틀과 한계는 단지 경계선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한계는 뛰어넘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계는 나를 보호해 줄 어쩌면 보호선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굳이 나만의 한계를 한계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계 안에서도 나만의 자유를 찾아볼 여유 또한 가져야 한다.
그렇게 나를 응원하고, 더 나아가 누군가의 한계를 응원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