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을 넘은 날
나는 게으른 편이고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가능한 최소한만 움직이고 가장 적은 노력을 들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찾으려 애쓴다. 결혼 후에 알았지만 성격이 급하기도 하다. 몸은 제자리에 있는데 마음은 앞서가고 바빠서 죽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일할 때는 이런 특성이 극대화된다. 더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순간은 남편이 하는 일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이다.
오늘도 그랬다.
남편은 이미 정리된 프로젝트에 뒤늦게 문제가 발견되어 상황 정리를 위해 고객사에 가야한다고 했다. 상황을 들어보니 가서 더 이상은 돈을 안받고 대응해주기 힘들다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얘기하는 순간에는 불편해도 그게 나중에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동조하고 미팅에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떻게 되었어?"
"잘 됐지~ 얘기도 명확하게 잘하고..."
"뭐라고 했는데?"
"오픈할 때 이슈가 우리 문제로 오픈 시점이 늦어진 게 아니라는 말도 하고, 앞으로 유지보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단 4월까지는 모니터링을 해주는 수준으로 하면서 공짜로 해줄테니 계약 진행은 어떻게 할 것인지는 4월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어."
"고생했네~ 근데 왜 더 이상은 60만원짜리 운영은 하기 힘들다는 말을 못하는거지?"
"......"
남편은 말이 없었다. 표정이 굳어진 것을 보니 마음이 단단히 상한 모양이다.
60만원짜리 운영에 관한 이야기는 덧붙일 필요가 없는 말이기는 했다. 미팅 건과는 상관없는 다른 고객사의 이야기인데 내내 못마땅함이 있던 건이라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뒷수습이 쉽지 않다.
뒷 말은 하지 않은 듯 태연하게 미팅에 대한 내용만 묻고 내 자리로 오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했다.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우리는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기준이 서로 다르다보니 해결 방식도 많이 다르다. 시간을 끄는 것보다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으로 서로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하지 말자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서로 여지를 가지고 최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면 다른 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주의다. 그 과정을 나는 잘 참지 못한다. 함께 일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방식이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하며 좀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간을 참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의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보니 우리의 대립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다름이 시너지가 되기도 한다. 나와 남편 모두 그 걸 알기에 선을 넘지 않고 외줄타기하듯 선을 지키며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선을 넘었다.
저녁에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것으로 남편의 기억을 지워야겠다.